- 라라 소소 36
매 순간순간 사람은 감정을 느낀다. 감정을 느끼고 그게 어떤 감정인지 생각하고 판단하려 한다.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지만 처음 자신의 판단, 그게 맞다고 대부분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는 고집이 굉장히 센 아이였다. 한번 어떻게 하겠다고 말을 꺼내면 그렇게 계속 밀고 나갔는데 그게 엉뚱한 것으로 표출되는 고집이어서 엄마를 종종 힘들게 했다. 가령 서울을 벗어난 친척 집에 가서 하루를 자고 와야 하는 상황인데도 낮에는 재미있게 놀고서 밤에 잘 시간에 갑자기 집에 돌아가자고 조르는 거다. 나를 설득하다가 두 손 두 발 다 든 엄마는 결국 방에 들어가서 주무셨고 나는 고집스럽게 거실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온몸이 모기 밥이 되었던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무슨 일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성에 차지 않는 일이 생겨서 식사 도중에 밥을 안 먹겠다고 수저를 내려놓고 방에 들어가기도 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배는 고픈 법이다. 어린이 방에 먹을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배가 고프면 슬쩍 나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먹을 걸 찾아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굶기도 했다. 그날 이후 내 방에는 늘 약간의 비상 간식이 비치되곤 했다.
쓸데없는 것에 고집을 부리는 마음은 내 판단을 바꿀 수 없다고,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마음에서 비롯된다.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고 잘못 판단하거나 틀리게 혹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걸 깨달았을 때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 또한 쉽지가 않다. 어릴 적에는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생각하는 거,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경험치가 적다 보니 판단의 폭도 좁을 수밖에 없는데 어린이의 마음으로는 깨닫는 데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어른이 되어서 다양한 경험이 쌓이고, 지식과 상식이 풍부해진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하는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깨달음과 인정, 받아들임은 중요하다. 어릴 적에 현명한 어른의 도움을 받는 다면 커서도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아직 발달이 부족하기에 1차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아기들이 배가 고프면 울고 소리를 지르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거다. 이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불편함을 울며, 소리 지르며, 발을 구르며, 표현하기도 한다.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 감정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지 못해서 더 그렇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신이 느낌 감정을 올바로 배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울고 있으면, 아이가 느끼고 있는 그 감정에 대해서 물어보고, 어떤 상황인지 생각해 보게끔 도움을 주는 게 좋다. 그러면 그게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고 조금씩 정리가 되어간다. 대놓고 같이 화를 내거나 다그치거나 무시하거나 아이의 단순함을 미끼로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려버리면 당장은 잠잠해질 수도 있으나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또다시 어쩔 줄 모르게 되어 버린다. 이론이 이렇다면 어른인 나 스스로에게도 적용하면 좋을 텐데 자신에게는 가혹하게 대한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실생활에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슈퍼바이저가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상담 심리를 공부하면 내 마음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드러나면 아픈 걸 알기 때문에 끄집어내고 싶지 않아 하고, 숨기고 무마시키려고 모른 척 넘어가려 하기도 한다.
나쁜 감정이 올라오는 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 그렇지만 겉으로 모든 걸 다 드러낼 수는 없다. 테스토르테론은 우리의 충동성을 부추길 수도 있다. 화가 나거나 무언가 해소해야겠다고 싶을 때에는 일단 그 상황에서 벗어나보자. 사무실에서 화가 났다면 잠시 편의점에 라도 다녀오면 된다. 환기는 매우 중요하다. 자신을 그 상황에 계속 몰아넣으면 아무것도 아닌 다른 일로 폭발할지도 모르고 애굿은 데에 불똥이 튀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감정을 표현하고 알아가는 교육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고 그 감정에 대한 질문으로도 잘 이어지지 않는다. 표현하기보다는 집어넣기에 바쁜 교육을 받아서 인 것 같다. 상황을 피한다고 감정을 감추라는 얘기는 아니다. 잠시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갖음으로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 거다. 불필요하거나 예상치 못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 감정에 이름을 한번 붙여보자. 내가 어린 시절 타인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을 부린 것처럼, 잘 알지 못하는 감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다른 감정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눈뜨고 정신이 들기도 전에 친구와 30분이 넘게 통화를 했다. 그녀의 상황을 주의 깊게 듣고 감정을 정리하게 도움을 주고 대화를 나누면서 내 어린 시절과 나의 경험들이 떠올랐다. 자신을 몰아가거나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 나는 글쓰기에 치유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치유로서의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지만 주변에 추천은 해주고 싶다. 아무런 말이라도 일단 글로 뱉어내면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고,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는 걸 느낄지 모른다.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 <진주의 결말>에 글쓰기가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쓰고 지우는 게 나온다.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쓰고 쓴 글에 줄을 그어 지워나가는 것. 어떤 생각을 남기고 어떤 생각을 남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 물론 이 소설 속의 글쓰기는 조금 다른 결이기는 하지만,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의 감정 상황에서는 이 방법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신에게도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