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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Jun 19. 2024

언니가 한 말, 기억할게.

- 라라 소소 35

 언니 이름으로 부고 문자가 왔다.


 문자를 확인했을 때는 수업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잠시 휴대전화로 눈을 돌렸는데 반짝이며 문자가 들어온 거다. 부고 문자였는데, 언니 이름이 쓰여 있었다.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끝내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었다. 어린 학생의 눈에도 내 표정과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졌나 보다. 서둘러서 어색하게 수업을 끝냈다.




 오랫동안 익숙해 있던 봉사 공동체에서 용기를 내어 다음 단계의 봉사로 넘어가서 처음 하는 봉사에서 언니를 만났다. 그전에도 오가며 얼굴을 본 적은 있지만 함께 봉사한 적은 없어서 눈인사 정도만 했지 말을 건네거나 살뜰히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다. 낯선 공동체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다. 특히 나처럼 내향인은 조용히 자신이 해야 할 몫만 하기에도 에너지가 소모되어 다른 봉사자들과의 친교는 생각도 할 수 없다. 언니는 부드러운 외모와는 다르게 마냥 상냥하고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짧고 직선적인 말에 단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상처를 주는 사람도 아니고, 은근히 챙겨주고 무심한 듯 신경 쓰는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다. 상대의 말에 깊숙이 빠져들어 공감도 잘하고 눈물도 많다. 무엇보다 툭 던지는 말에 유머가 담겨 있었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봉사자는 많지 않았고, 장소는 계단이 여러 군데 있고 공간별로 이동도 잦아 봉사자들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더 많아야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한여름이라 땀도 많이 흘렀다. 봉사자들은 준비 기간 동안에는 공동으로 함께 하지만, 봉사에 들어가면 각자 속한 팀에서 주어진 몫을 하곤 한다. 둘 뿐인 우리 팀은 언니가 장이었고 내가 유일한 팀원이었다. 언니는 경험 봉사자답게 손이 야무졌고 나는 언니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되었다. 새로운 공동체이기에 오랜만에 장이 아닌 팀원으로 봉사하는 자리이기도 했고, 이전 공동체는 동생들이 대다수였는데, 이번에는 언니들, 오빠들이 많아서 마음으로는 더 편안했던 봉사였다.


 한번 봉사를 시작하면 두 달여의 준비 기간, 3박 4일간의 본 연수 기간, 내가 봉사하는 연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연수가 끝나고 나서 하는 마무리 모임까지 총 3달 정도가 걸린다. 우리가 들어가는 연수의 봉사가 끝나고 나서 언니와 나는 마무리 모임을 위해 준비해야 할 작업이 남아있었다. 따로 만나서 작업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나누면서 더 가까워졌다. 언니는 수학을 가르치고 나는 영어를 가르친다. 그런 공통점에 대화거리가 더 많기도 했다. 봉사 기간이 끝나고 나면 봉사자들과 자주 연락을 취하거나 약속을 잡거나 하는 편은 아닌데 언니와는 하루의 스케줄이 비슷해서 종종 만났다. 오랜 기간 이론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고 실습도 해야 하는 자격증 과정을 같이 이수하기도 했다.



 언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언니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언니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언니는 귀찮아하거나 밀어내지 않았다. 내가 더 잘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질투가 나기도 했고 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언니에게 서운하기도 했다. 나의 좁고 비뚤어진 마음. 내가 너무 힘들 때, 집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언니는 멀기는 하지만 언니 집에 가자고 했다. 우리 집은 강북인데 1호선 맨 끝 쪽 의정부 가까이에 있고 언니 집은 일산이라 3호선 맨 끝 쪽에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가면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차를 타고 외곽으로 빠지면 한 시간도 안 걸려 갈 수 있지만 나는 차가 없으니 전철 타고 버스 타고 걸어서 가는 수밖에. 떡볶이도 먹고 언니 방의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큰 책장에서 책도 꺼내 읽고 궁금한 책은 빌려오고 두 권 있다는 책은 한 권 받아오기도 했다. 언니 침대 헤드 보드에는 시집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언니가 잠든 사이 시집 한 권을 꺼내어 조금씩 읽고 생각하고 이것저것을 노트에 끄적이기도 했다. 언니랑 책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하나 더 있었구나. 오래전 기억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코로나는 나의 자존감뿐 아니라 내가 맺고 있던 그리 많지 않은 고리들을 거의 사그라져 버리게 했다. 모든 건 코로나 핑계를 댈 수 있다. 코로나가 지났어도 회복이 잘되지 않았다. 언니는 나한테 엉뚱 발랄함이 매력이라고 했었는데 움츠러드는 건 점점 심해졌고 나의 내향성은 소문자 i에서 특 대문자 I로 바뀌기까지 했다.


 몇 달 전부터 언니 생각이 종종 났다. 작년 말에 보자고 말만 하고는 약속을 잡지 않아서 만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언니한테 연락해 봐야지 생각만 하고는 자꾸만 미뤘다.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하자, 이거만 하고 나서 하자, 주말에는 꼭 하자...


 멍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장례미사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가는 건 당연하지만 실감이 나지 않아서 머리가 멍해졌다. 눈앞에 무언가가 끊임없이 왔다 갔다 했고 시선을 한 곳에 두기 어려워 자꾸만 눈을 깜박였다.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마구 뒤엉켜서 뭉텅 거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언니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쓰기 시작했는데 잔소리하는 언니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몸이 약한 나에게 언니가 자주 했던 말. ‘아프지 마라.’, ‘기본 아픈 거 말고 추가해서 더 아프지는 마라.’, ‘잘 좀 먹어라.’, ‘밥은 먹었니?’, '괜찮은 거야?'. 나는 골골하며 계속 살고 있는데 언니는 왜 아팠던 거야. 그렇게 예수님을 먼저 만나고 싶었던 거야. 예수님 만나서 좋아? 이젠 잘 먹을 수 있는 거지. 이제 안 아픈 거지.


 장례미사를 드리는 동안 언니의 영정사진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울 언니 예쁘네. 사진은 분명히 언니가 골랐을 거다. 자세히 보면 포근함이 느껴져서 언니가 좋아하고 즐겨 입는 도톰한 니트의 소매 끝이 보인다. 언니는 한겨울에도 패딩을 입지 않았다. 니트와 스웨터와 코트의 묵직한 따뜻함을 좋아했다. 자꾸 눈물이 맺히는데도 눈을 깜박이지 않았고 눈물이 흐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습관처럼 기도문을 읊조리며 언니만 바라봤다. 언니의 모습이 눈에 담기기를 바랐다.


 언니는 예수님을 사랑했다. 그래서 더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 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아프고 슬퍼하는 건 싫어하겠지만 언니는 분명 언니가 좋아하는 밴드 오빠들의 노래가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흐르는 하늘에서 통증 없이 고통 없이 가볍고 기쁘게 예수님 곁에서 미소 짓고 있을 거다. 얄미운데, 언니가 참 보고 싶다.


힘내서 살자, 우리.
힘들면 또 보고 힘 다 나면 또 보고 매일 봐 계속 봐.


언니가 한 말, 기억할게. 계속 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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