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44
며칠 전부터 핸드폰이 지문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핸드폰 잠금 해제부터 소소한 앱들의 로그인을 지문 인식으로 해서 들어가곤 했는데, 지문 인식 기능이 작동되지 않아 패턴 인식으로 들어갔더니 왠지 조금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핸드폰을 두 개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위에 말한 지문 인식에 문제가 생긴 예전 핸드폰이고, 다른 하나는 예전 핸드폰의 약정 기간이 끝나고 가족 전체가 새로운 핸드폰으로 바꿀 때 교체한 핸드폰이다. 새 핸드폰이라고 하기에는 2년이 넘었기에 나중 핸드폰이라고 칭해야겠다.
지난겨울, 갑자기 핸드폰이 먹통이 되었다. 핸드폰이 유심칩 인식하지 못해서 서비스 제한 상태가 되었다. 와이파이 지역에서는 인터넷이 가능했지만 전화나 문자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기로 한 저녁이었고, 친구의 일정이 변경되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친구가 우리 동네로 오면서 연락을 한다는 내용의 통화를 조금 전에 마친 상황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핸드폰이 끊겼다. 핸드폰이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있었는데, 물어볼 게 있어서 통화를 눌렀다가 연결되지 않는 걸 발견한 거다!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싶어서 유심칩을 꺼내고 다시 넣은 후 여러 번 종료와 다시 시작을 반복했다. 간간이 되기도 했지만 상단의 막대기는 늘어났다가도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애를 태우며 사라져 버렸다. 컴퓨터를 이용해 찾아보니 유심칩에 문제가 있으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시간에 유심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지만 일단 친구와의 연락이 더 중요하니 PC 카톡으로 친구와 연락을 취했다. 카톡이 좋은 게 전화기가 없어도 통화를 할 수 있는 보이스톡 기능이 있다는 거다. 해외에 있는 친구와 연락하거나 통화를 할 때도 보이스톡 기능은 유용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재빠르게 용건을 말하고, 위치를 확인했다. 차를 주차할 장소와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하고 연락이 되지 않더라도 이따가 만나자고 말하고 보이스톡 종료.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어렸을 때는 친구 집이나 엄마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기도 했었는데, 핸드폰을 처음 사용하던 예나 지금이나 핸드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건 비슷한데, 이상하다. 이리도 불안하다니.
무사히 친구를 만났다. 모든 약속에는 장소와 시간이 있으면 되고,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만날 수 있다.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거다. 조금 늦어지면 기다리면 되는 거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으면 된다.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빨리빨리 문화가 더 자리를 잡게 된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 빨리 연락해야 하고, 빨리 전달해야 하고, 빨리 정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연락이 늦어지거나 확인을 하지 않고 있으면 초조해지고 조급해진다. 상대가 집중해야 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 꺼졌을 수도 있고, 집에 핸드폰을 두고 나왔을 수도 있는데 상대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자꾸 나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다.
특히 카톡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과의 연락이나 정보 전달이 수월하지 않게 된다.
요즘에는 업무를 PC 카톡을 이용해 전달하거나 단톡방을 통해서 의견을 교환하는 경우도 많고, 모임에서 공지도 대부분이 카톡의 단톡방을 이용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교보문고에는 '바로드림' 서비스가 있는데, (교보문고의 '바로드림' 서비스는 서점에 도착하기 최소 1시간 전에 책을 미리 주문하고 서점에 도착하면 '바로드림' 코너에서 바로 책을 수령할 수 있어 정해진 책이 있고 서점에서 책을 둘러볼 충분한 시간이 없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편리한 서비스이다.) 책을 '바로드림'으로 주문하면 상품 준비 완료 및 확인 연락이 카톡으로 온다. 도서관에서도 대출 관련 안내(전자책, 상호대차, 희망도서, 예약도서 등등)라든지 반납 안내 등도 대부분 카톡으로 온다. 간혹 문자로 오기도 하지만 상당량의 정보를 카톡을 통해서 받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예전 핸드폰을 나중 핸드폰으로 바꾸고 나서 핸드폰에 카톡을 깔지 않았다.
평소에도 늘 핸드폰은 무음이고 대부분의 알람 기능은 꺼 놓아서 확인이 느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한 번에 몰아서 확인할 때면 너무 많은 정보와 연락에 휩싸여 집중력이 흐려지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해서라는 핑계를 속으로는 대고 있었다. 카톡으로 연락을 하는 친구나 지인들에게는 탭을 가지고 다니고 탭에 카톡이 깔려 있으니 필요할 때마다 모바일 핫스팟을 사용해서 확인이 가능하고, 급하게 연락해야 하거나 답을 신속하게 받아야 되는 일이 생기면 문자를 보내달라고 양해를 구해 놓았다. 카톡 프로필에도 핸드폰에 카톡이 없으니 문자나 이메일, 혹은 디엠 연락이 조금 더 빠를 거라고 써 놓았다. 초기에는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연락이 하루 이상 걸리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친하거나 나를 배려해 주는 사람들과는 문자로도 연락을 잘 주고받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아니, 멀어지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잊히기 시작했다. 카톡의 위력은 이렇게 대단했다. 나만 모르고 있던 일을 물어보았을 때, 너는 카톡 안 하잖아,라는 대답을 듣고 사실 크게 상처를 받았다. 나는 카톡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바로’ 확인하지 않을 뿐인데 그렇게 생각했구나. 조금 불편하더라도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으려는 의지가 있는, 혹은 확인이 늦더라도 카톡으로 틈틈이 말을 걸어주는 이들과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혹은 카톡을 잘 안 하니까 카톡으로라도 연락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분류되면서 나의 관계도 조금씩 더 단순해지게 되었다. 카톡 보다는 문자나 디엠으로 대화하고, 급하거나 단체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는 지금 카톡에 들어올 수 있냐고 물어오면 카톡에 들어가는 생활을 일 년이 넘도록 했다. 사람들도 이런 나를 이제는 익숙하게 여기고 그냥 그런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카톡을 안 하지는 않았다. 봉사하는 단체가 여럿 있고, 그로 인한 단톡방도 많이 있다. 내가 장으로 있는 단톡방에서는 종종 공지를 올리기도 하고 사람들과 소통도 해야 한다. 그런 몫에서 지금은 벗어나지는 못하니까 또 내가 해야 할 몫이니까 신경을 쓰고 있다. 카톡의 여러 기능을 이용해서 우선순위가 정해지기도 했다.
핸드폰이 먹통이 된 상태로 무사히 친구를 만난 그다음 날 서비스 센터를 찾았을 때, 유심칩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핸드폰에서 유심칩을 읽는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수리하려면 수리비가 조금 비싼 편이라 십만 원이 넘게 든다는 얘기도 들었다. 약정 기간이 끝나가고 새로운 기종도 출시되고 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보상받으며 핸드폰을 교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했다. 새 핸드폰으로의 교체라는 건 너무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었지만 고민이 많았다. 십만 원 넘게 수리비를 지출할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새로운 약정을 걸고 초기 몇 달 동안은 비싼 요금제를 사용해야 하는 신형 핸드폰으로의 교체도 부담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사용했던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통신사 이동을 했던 터라 유심칩이 충돌되겠지만 그럼에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예전 핸드폰을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예전 핸드폰은 거의 30분간 나중 핸드폰의 유심칩을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되는가 싶더니 나의 간절함이 받아들여졌다. 고마운 예전 핸드폰.
통신사와 기기를 변경하면서 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 핸드폰은 반납하지 않았다. 전에 쓰던 그 상태로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종종 필요할 때 꺼내 쓰기도 했는데, 기타 튜닝을 할 때나 녹음이 필요하거나 자주 들어가지 않는 은행 앱에 들어갈 때나 가끔 쓰는 앱을 사용할 때 등이다. 매일 필요한 앱을 제외하고는 쓰던 앱들은 거의 다 그대로 남겨 두었다. 카톡이 당연히 남아 있었다.
예전 핸드폰을 다시 쓰게 되면서 카톡 접근이 탭이나 PC를 사용할 때보다 훨씬 쉬워졌다. 하지만 프로필에 카톡을 다시 사용한다고 바꿔 올리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어차피 나의 부재와 나의 느린 답에 익숙해져 있을 테니까. 연락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나중 핸드폰도 같이 가지고 다니게 된 건, 예전 핸드폰이 아무래도 시간이 좀 지난 기종이어서 (예전 핸드폰으로 바꿀 때에도 그다지 신종은 아닌 상태로 구입했다.) 나중 핸드폰으로 사용하던 기능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고, 사용하던 모든 앱을 다시다 깔고 새로 시작하는 게 너무나도 귀찮아서이기도 했다. 사실 무엇보다도, 나중 핸드폰은 일 년을 넘게 사용했지만 내가 핸드폰을 좋아하고 끊임없이 사용하는 편은 아니어서 상당히 멀쩡하고 기종도 최근이고 메모해 놓은 것도 많고, 컴퓨터와 탭과 다 연동이 되어서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나중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고 싶었다.
예전 핸드폰은 통화, 문자, 카톡 그리고 자기 핸드폰 인증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앱과 매일 들어가는 앱을 사용할 때 이용한다. 나중 핸드폰은 메모와 컴퓨터나 탭과의 연동이 필요할 때, 사진 찍을 때, 내가 좋아하는 앱들을 사용할 때 이용한다. 결국에는 핸드폰을 두 개 다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나는 이들을 사용하고 있다. 내가 두 개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걸 보는 사람들은 (가족 포함) 너무나도 불편해 보인다고 공기계를 줄 테니 바꾸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곤 한다. 조금 더 사용하겠다고 정중히 거절하는 마음속에는, 나는 이게 편한걸, 내 핸드폰들이 좋은 걸 어떻게 해, 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예전 핸드폰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 반응도 느리고 로그인도 느리고 캡처를 해도 느리다. 블루투스를 이용하는 다른 장치들과의 연결도 안 되는 게 많다. 게다가 최근에는 지문 인식 기능까지 작동하니 않으니 기계가 확실히 수명을 다해가는 것 같다. 새로운 핸드폰으로 3-4년에 한 번씩 빠르면 2-3년에 한 번씩 바꿀 때마다 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는데 (많이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애정은 또 깊다.) 이번에는 더 오랫동안 예전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라 이제는 이별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아쉽고 놓아주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 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중 핸드폰에 유심칩을 다시 넣어봤지만 역시나 여전히 유심칩을 읽지 못한다. 30분 넘게 시도해 봐도 이는 내 지극정성과는 상관이 없나 보다. 사실 예전 핸드폰보다는 신형이고 나중 핸드폰보다는 구형인 핸드폰을 오빠가 구해다 주었다. 그걸로 쓰면 두 핸드폰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은 조금 더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속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러다가 핸드폰이 꺼지고 영영 켜지지 않으면 이 안에 있는 나의 정보들을 어떻게 살릴 방법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최근에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이라는 부제를 가진 <리페어 컬처>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는데, 도서관과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보았다. 곧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거다. 이 책을 살펴보면서 너무나도 쉽게 쓰고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모든 걸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이니 어쩌면 내가 이렇게 쓰고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조차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도 할 거다. 나는 그러지 않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한 단면만 보았을 때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버지의 굉장한 절약 정신 덕분에 나도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궁상맞아 보여 싫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무엇이든 잘 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다고 해서 그걸 다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은 또 아니다. 쌓아두고 묵혀두는 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 버리는 게 잃어버리는 거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 또한 잃어버리는 거가 되지 않을까. 회복하는 삶, 제대로 사용하고 너무 쉽게 버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핸드폰 이 두 개인 건 개인적인 욕심일지라도 이 둘을 애정하고 조금 더 애쓰며 소중히 사용하고, 마침내는 오래도록 함께 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