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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라라 소소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영역

- 라라 소소 72

by Chiara 라라

가난한 건 죄가 아니지만 죄지은 사람처럼 가난으로 인해 자주 주눅이 든다. 가난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까,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돈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돈이 없어도 친구를 만나고, 돈이 없어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돈이 없어도 카드값을 낸다. 친구를 만나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며 돈이 드는데, 배달 음식을 시키면 음식값이 나가고 배달비가 청구되는데, 카드를 썼으니 사용한 만큼의 비용을 내는 건데, 이 모든 건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물론 나는 이런 걸 하지 못한다. 할 때도 있지만. 그 와중에 내가 돈을 쓰지 않는 방법도 있다. 스스로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뿐. 식사를 시킬 때 제일 저렴한 음식을 고르고 골라도 너무 비싸고, 식당이 아니고 실내에서 먹는 거라 주문하지 않아도 되는 때에는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주문하지 않고, 차비가 만만치 않으니 1시간 정도의 거리는 걸어서 다니고, 카드값 납부 독촉이 와도 짐짓 무시하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구질구질해지고 만다. 생각하지 않는 게 돌아보지 않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이롭다.


열심히 살아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같은 생활의 반복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어렵게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100만 원을 버는데 생활비가 120만 원이 나간다면 매달 20만 원씩 마이너스가 되고, 점점 불어나는 거다. 쉬지 않고 일을 하면 조금 더 벌 수 있겠지만 그렇게 일하다가 병이라도 나면 병원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생활비 120만 원에는 방값 50만 원이 있고, 관리비 15만 원이 있다. 아끼고 아낀 차비 10만 원이 있고, 가장 저렴한 요금제를 사용하는 핸드폰 비 4만 원이 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30만 원은 식비로 지출된다. 비정기적으로 나가는 경조사비와 이런저런 이유로 내야만 하는 회비도 있다. 그러면 120만 원이 훌쩍 넘어갈 때가 많다.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나가는 돈이 하나도 없는데도 이렇게 늘 돈에 허덕인다. 혹자는 나를 보며 더 열심히 살지 않아서 그런다고 말하기도 한다. 살만하니까 이렇게 지내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빌 구석이 어딘가에 있으니까 그러는 거라고, 그런 말을 듣기도 했다. 정말 나는 살만하고 비빌 구석이 있고 더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걸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열심히’라는 단어의 기준은 모호하고 사람마다 척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 회사 그만둘 거야.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 한 명과, 다소 덜 친한 친구 한 명이 있는데 나의 퇴사 선언에 이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 1]


나 회사 그만둘 거야.

어디 다른 데 구했어?

아니.

그럼 뭐 하게?

그게 말이야.

뭐?

소설 쓰려고.

소설을 쓴다고? 이 나이에? 갑자기? 그냥 회사 다녀.

못 다니겠어. 알잖아 나 여태껏 버틴 것도 정말 기특한 거잖아.

계속 기특해해 줄게. 회사 그만두면 뭐 먹고살라고?

아르바이트하고 소설 쓰면 되지.

그게 말이 쉽지, 누가 나이 많은 사람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쓰겠니?

뭐라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닐 거야. 휴우, 너 정말...


[다소 덜 친한 친구 2]


나 회사 그만두려고.

이직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좀 쉬려고?

그것도 아니고. 그게 말이야.

무슨 일 있어?

그게... 소설 쓰려고.

와, 멋있다!


친구 1은 내 삶을 너무 절망했고, 친구 2는 내 삶을 너무 희망했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택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희망을 바라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난 지금 가난하다. 절망까지는 아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보증금을 다 까먹고 나면, 고시원으로 방을 옮길까 생각 중이다.


예술가 병에 걸렸냐고 했다. 이건 고칠 수도 없는 병이라고.


세상에 여러 종류의 병이 있다. 치유하기 힘든 병 중의 하나가 예술가 병이겠는데, 실제로 의사에게 병명을 진단받고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이나 고통을 받는 이들, 또 그 가족과 지인들은 무슨 개소리냐고 할 것이다. (‘개소리’는 사전에 나와 있는 단어다. 그 뜻은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고, 비슷한 단어로는 ‘헛소리’, ‘허튼소리’, ‘횡설수설’ 등이 있다) 그럼에도 친구 1은 나에게 예술가 병에 걸렸다고 선언했고 내가 너의 소원을 (친구 1은 소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꿈이 아니고 소원이라니. 램프의 요정 지니라도 나와야지만 이루어질 수 있는 건가. 소설 쓰며 삶을 살아가는 게) 지지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이제 제발 정신 차리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회사에 다시 다니자고 말하고 있다. 요즘에는 취업하는 것도 엄청 어려우니 하루라도 빨리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또 소설은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을 받고 한 달 치 수입이 있는 상태로 쓰라고, 그러면 더 잘 써질 거라고 회유하기도 했다. 여태 등단하지 못한 거 보면 재능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고, 어렸을 때부터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고 현실적인 직언도 해주었다. 가슴이 콕콕 콕콕 아프다가 지지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서 나는 살짝 감동했는데, 친구 1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고 그렇게 하는 게 나를 위해서 필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살짝 심통도 나고 마음이 비뚤어지기도 해서 내가 옳다고 조금 더 우기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친구 1은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고 있고 가끔 고기를 사주니까 하고 싶을 말을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고 반격할 수 있는 적당한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 2는 보고 싶다고 만나자고 했다. 돈이 없는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녀가 제시한 날 중 시간이 안 되는 날이 하나도 없어서 어떤 핑계도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친구 2는 평소처럼 가고 싶은 식당을 미리 찾아 놓지는 않았다. 나는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강조해서 말했고 다소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즉석 떡볶이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친구 2는 계속 말을 했다. 회사 이야기, 연애 이야기, 가족 이야기. 떡볶이집을 나와 카페에서도 끊임없이 얘기를 이어 나갔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 날씨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까지 광활한 세계를 한 바퀴 돌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서 수집할 만한 자료가 있을까, 생각하며 미소를 짓고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아니, 맞장구까지 쳐 주면서 열심히 들었다. 사회생활에서 힘들어하던 점인데 이젠 매일의 사회생활이 없으니 아주 가끔 있는 여기에서 이게 가능해지더라. 신기한 일. 슬슬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을 때, 마무리를 하며 친구 2는 나의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고, 쉽지는 않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녀는 나를 응원한다고 했다.


친구 1을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친구 2를 다소 덜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그들에게 무얼 바라고 있는 걸까. 친구 관계에서만큼은 더 열심히도 덜 열심히도 하고 싶지가 않은데 지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인지 왠지 모르게 약간 불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밥도 커피도 친구의 존속처럼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영역이라 나에겐 중요한데 그걸 친구 관계로 끌어들여도 되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역시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도 관계는 쉽지 않구나.


처음 시도하는 동선이라 집에 가는 길이 한 시간 넘게 걸리겠다. 오늘은 날이 많이 춥지도 않고 바람도 세게 불지 않으니까 걸어서 가기에 적당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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