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124
나는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혹시라도 평균 수명까지 혹은 (너무 무섭지만) 그 이상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
다정한 말투의 할머니
끊임없이 읽고 쓰는 할머니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지닌 할머니
내적 동요를 다잡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할머니
막상 희망 할머니 상을 정리하고 보니 정말 완벽한 모습의 할머니 아닌가. 아무튼 희망이니까. 삶을 희망하지 않는 나에게 뭐라도 희망하면 좋은 거라고 위로하며.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그게 정말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요즘 화가 많다. 화가 많은데 이를 마땅히 다룰 줄 아는 방법이 없어서 늦게 배우고 아주 조금 배운 욕을 활용하고 있다. 욕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어서 아는 욕도 많지 않고 그마저도 친구가 운전하면서 하는 욕을 옆에서 따라 하며 배운 욕이라 한정적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짜증이 날 때, 나도 모르게 (어쩌면 의식적으로) C로 시작하는 욕을 흘리듯 내뱉는다. 간이 작아서 또 가톨릭 신앙인이라는 약간의 양심이 남아있어서 혼자 있을 때만 한다. 가끔 ‘악’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이것도 혼자 있을 때만. 밤늦게 지를 때도 있는데 짧고 굵은 ‘악’ 소리는 얇은 벽을 약간 울린다. 다른 집에서 놀라면 어쩌나 그 와중에 걱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거참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건지.
찰지게 욕을 하면 화가 좀 풀릴까.
나의 사건 사고를 알게 된 대구 사는 언니가 이런 얘기를 해줘서 찰진 욕에 관심이 생겼다.
‘내가 욕은 안 하지만 했다 하면 찰지게 하는데 대신 욕이라도 찰지게 해줄까 싶소.’
욕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 찰지게 욕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안 그래도 나는 대부분의 주위 사람처럼 정해진 대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직업을 가지지도 않았다. 보통은 지인들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취미 생활을 하며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데 나는 보통의 이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더욱 고립되고 괴팍하게 변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 어떡하지?
욕이 일상이 되고 괴팍함이 깊어지면 괴팍한 욕쟁이 할머니가 되는 게 아닐까. 정말 싫다. 괴팍한 욕쟁이 할머니는 되기 싫어. 싫으면 고쳐야지. 욕을 슬금슬금 뱉는다고, 짧게 소리를 지른다고 화가 가시는 게 아니다. 한번 그렇게 하고 나면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한데, 그건 정말로 일시적이다. 더 큰 화가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또 화와 짜증과 억울함과 우울함 등의 감정이 올라올 때 크게 한번 울고 나면 괜찮아지기도 하던데, 요즘의 나는 화로 메말랐는지 울음도 잘 나오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상대의 얘기를 들으면서 기타 등등의 상황에서는 눈물을 잘 글썽인다. 왜 자신한테만은 감정을 집중 못 하는 것이냐. 자신을 먼저 살펴봐라.) 화의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어쩌면 정해져 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걸 해결해야 나아지겠지.
아무래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평화를 구하는 기도’ 중얼중얼거리기.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멸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_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_
아무튼 화는 그만 내도록 하자. 그렇게 살아보자.
미래에 다정한 말투로 끊임없이 읽고 쓰고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지니며 내적 동요를 다잡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할머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