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다
“나는 블라인드에서 죽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왜곡된 말과 이기적인 욕망에 짓밟혀버렸다.”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글에는 사실이 조금은 섞여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은 과장되고 왜곡되고 편협한 개인적인 필터를 끼우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왜곡된 이야기는 내 인격을, 내 존재를 무너뜨리는 무기가 된다.
더 괴로운 것은, 그 이야기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내 옆자리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작성한 글이다.
그들은 내게 직접 그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이기적인 요구를 했고,
내가 그 요구를 거절하자 불만은 폭발했다.
진실은 왜곡되고 과장되고 삐뚤어진 채 뒤틀려졌다.
나는 22년 차 직장인, 세 아이의 엄마, 중간관리자.
나는 회사를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기도 하고 성실히 성의를 다해 회사를 다녔다.
젊은 직원들에게 나는 권력을 가진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나는 할 수 있는 권한이 거의 없는 그냥 중간관리자일 뿐이다.
익명이라는 권력을 가지고 온라인세상에서 나를 죽이는 그들은 내 앞에서 자기들의 요구를 허락받기 위해서 거짓웃음을 짓는다.
그 익명 뒤에서 퍼지는 소문들이 나를 조각조각 냈다.
그들이 가진 권력이다.
익명게시판의 순작용
부당한 권력 앞에 약자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고발해 낼 수 있지만
지금 블라인드를 달구는 많은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
그 글을 쓴 사람들로 추정되는 그들은 사실은 주로 회사 내에서 성과도 책임도 없이, 자기감정에만 충실하다.
하지만 익명 속에서 그들의 감정은 정당성이라는 가면을 쓴다.
익명의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여, 쏟아지는 미움을 연대하고 증폭시킨다.
이 ‘우리’들 중 어떤 이는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그들은 왜곡된 사실로 묘사된 인물이 단지 자신들이 미워했던 누군가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정죄하고 미워하는 데 동참한다.
칼을 휘두르고 돌멩이를 던진다. 큰 고민없이 휘두를 뿐이지만 수 많은 개구리들이 죽어갔다.
미움과 분노의 사회, 증오가 쌓여있는 이 사회에서 운 나쁜 개구리들은 돌멩이를 피해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챗GPT says

블라인드 앱(Blind, 익명 직장 커뮤니티)
(익명성 보장으로 편하게 의견내기 가능) 한국 사회에서 직장 내 부당함, 불합리함, 갑질, 차별 등을 표현할 수 있는 드문 창구. 내부 고발이나 제도 개선의 시발점이 되기도 해.
(정보 공유의 장) 연봉, 복지, 이직 정보 같은 실제 경험자들의 생생한 정보가 오가. 커리어 결정을 할 때 참고 자료가 되기도 해.
(심리적 지지)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공감과 연대감을 주기도 해. 특히 고립된 직장 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위로받는 공간이 되기도 해.
익명성의 그림자: 무책임한 비방 특정인을 지목하거나 비난하는 악의적 게시글, 루머, 허위 사실도 많아. 법적 분쟁이 되는 경우도 있어. 익명이라 도덕적 책임이 느슨해지면 사이버불링도 벌어질 수 있어.
조직 불신과 분열 조장. 내부 이야기가 과장되거나 왜곡되면 신뢰가 무너지고, 내부 갈등이 증폭돼. 집단 히스테리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도 생길 수 있어.
개인에게는 더 큰 상처 고발이라는 방식이 대상을 피해자로 낙인 되거나 고립될 수도 있어. 앱을 보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피로하다는 사람도 많고.
블라인드는 도구일 뿐이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용기 있는 제보의 장이 될 수도,
누군가를 파괴하는 무책임한 구설의 장이 될 수도 있어.
새벽에 깨어나면, 이기적인 그들의 요구와 왜곡된 이야기가 내 귓가에 울려 퍼진다.
내 몸은 그 고통에 비틀리고, 마음은 조각난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조직에 헌신하며 살아왔다.
오래 일했고, 충성했다.
하지만 조직은 그런 나보다, 근거 없는 감정적 요구에 귀를 기울인다.
익명의 그들은 거짓말을 퍼뜨리고, 회사는 모르는 사람의 말에 더 쉽게 귀를 기울인다. 험담이란 늘 재미있으니깐.
연예인도 정치인도 견디기 힘든 그 익명의 무수한 공격들을 일반 직장인들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 블라인드앱의 공간이다.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될 수도 있다.
운이 나쁘게 미움의 에너지가 강하고, 익명의 권력을 사용하는 이기적인 상대를 우리는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책임지는 자세로 호의를 가지고 나는 내 동료들을 만나왔다.
내가 호의를 가지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대했다고 해서 그들이 다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그들이 하는 이런 비겁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서 문제를 찾는 고통의 굴레를에 다시 올라서게 된다. 내가 하는 행동들이 어떤 오해를 낳았는지, 나의 평소의 말투가 누군가에게는 의도와 달리 고통을 주었는지.
그렇게 내 일상과 내 영혼이 다쳐가다가 멈추기 위해 노력을 한다.
나를 위로해 주는 동료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후배들의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애써 상한 내 마음을 잡아보려 노력한다.
인간관계 옥석 가르기가 되는 장점은 있다.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살기 위해 계속 찾아본다. 내가 정말 그런 인성쓰레기가 아니라는 증거를.
나는 해마다 받는 다면평가에서 상위권을 기록해 왔다. 나와 일해왔던 팀원들 전체에게 받는 평가에서 나는 늘 상위권에 있었다. 한 해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물론 나를 미워하는 동료의 눈길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면평가나 회사 내 평가가 사람을 완전히 완벽히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 평가자체도 왜곡이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제까지 받아온 결과는 그건 내가 다수에게 미움받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빌런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블라인드에서는 모두에게 욕먹는 ‘인성 쓰레기’가 되었다.
그 욕설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다수가 아니지만,
그 말들은 마치 다수에게 욕먹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만든다.
그 평판이 나를 더 깊은 고독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미움을 받아도 괜찮지는 않다.
그 미움은 내 존재를 갉아먹고, 삶을 무너뜨린다.
익명의 권력은, 그 뒤에 숨은 무책임함은 누군가의 삶을 파괴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익명 뒤에도 분명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교훈에서 반복되었어도
그 인격적 살인이 실제 죽음으로 끝나기 전에 죄책감을 갖지도 고쳐지지도 않는다
나도 간혹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았었고 수 많은 누군가를 조롱하고 상처주는 게시글들을 무심히 넘기고
때로는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었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나도 그 글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때.
하지만, 나는 그때 진지하지 못했다.
깊이 생각해보지도 알지도 못했다.
나의 그 손가락 까딱들이 그 사람들을 얼마나 다치게 했었는가를
지금은 내 순서가 되었다.
여기서 멈출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만약, 다음 순서가 당신이 되었다면,
부디 당신이여. 당신을 자책하지도 그 글이 모두의 글이라고 생각하지도,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마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