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굳은살로 괜찮은 반주를

by 유리알구슬

작년 7월부터 기타를 배우고 있다.


피아노 반주를 30년 넘게 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악기에 대한 로망이 항상 있었다.


무엇을 배운다는 것에

늘 열망이 있던 나인지라,

커다란 설렘을 안고 시작했다.


오랜 기간 피아노를 쳐온 덕분에,

코드를 보는 법,

곡의 흐름

분위기 파악 등

강사님의 이야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손가락.

쇠줄을 왼 손가락 끝으로 눌러줘야 했기에,

처음 몇 달 간은 엄청 고통스러웠다.

3개월 만에

작은 무대에 서기 위해 연습을 할 때는

정말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그뿐인가.

쓰지 않던 손 근육을 쓰려니,

하이 코드를 잡을 때는

왼손 관절이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마비가 올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손가락 끝은 감각이 없어졌다.

매주 피아노를 쳐야 하는데,

왼손 끝에 감각이 없으니, 정말 난감했다.


사실,

몇 년 전에 기타 배우기를 시도했다가

그만둔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

일부러 나 스스로를 몰아치기도 했다.

물러서지 않기 위해,

나름 거금 들여

새 기타도 장만했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들이며

되든 안 되든

매주 있는 레슨에 참석하면서

평소에도 연습을 꾸준히 했다.


그러자 어느 날부터인가

안쪽으로 굳은살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껍질이 벗겨져서 뜯어내면

다시 굳은살이 올라오고,

또 껍질이 벗겨지고를 수십 번 했던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오른손과 같은데,

만져보면 뭔가 몽글한 게 잡혔다.


그쯤 되자

왼손으로 코드를 잡을 때,

아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점차 곡 연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기타 연주가 너무너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연주할 수 있는 곡도 늘고,

이제는 코드 잡을 때

버퍼링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제법 들을만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아이유처럼

기타를 둘러메고 멋들어지게

연주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올 초,

구정 연휴를 전후로 해서,

강사님과 학생들의 여러 사정으로

약 3주 정도 수업을 쉬게 되었다.


강사님께서 3주 동안 연습을 해오라며

동영상도 올려주시고

악보도 주셨는데,

웬걸...

어쩜 3주 동안 한 번도 기타를 안 잡게 되더라.

(하아.. 나의 게으름이란..;;;;)


그렇게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생각만 하다가,

어느새 3주가 다 흘러

아주 오랜만에 기타 수업에 참석했다.


뭐.. 연습을 안 했으니,

연주가 안 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왼손이었다.


3주.. 아니 거의 한 달 동안 기타를 안 잡았더니,

다시 예전 그 보드랍고 여린 손가락으로

돌아가있는 것이 아닌가....


기타 줄을 잡을 때마다

처음에 느꼈던 그 고통이 다시 올라오는데,

살이 찢어지는 거 같고

아리고 쓰리고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특히 가장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새끼손가락의 수난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다시 리셋.


나의 굳은살 만들기 고행은

다시 시작되었다.




마흔이 되던 해,

나는 아주 심하게 '마흔 앓이'를 했었다.

어릴 때,

마흔.. 하면

뭔가 굉장한 것을 이뤄놓았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맘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이렇게 속절없이

앞자리를 바꾸어 놓은

세월에 괜히 화풀이를 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가 든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싶다.

그 세월 동안 내 삶에 생긴 굳은살이,

나를 보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강도의 고통이 찾아와도

전에는 피를 흘렸다면,

이제는 의연하게 쇠줄을 짚을 수 있다.


가끔 하이 코드를 잡을 때처럼,

하드코어 트레이닝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이젠 안다.

그것도 하다 보면,

내 안에 굳은살이 배길 거라는 거...


그렇게 되기까지

몇 번의 껍질이 벗겨지고,

몇 번의 피를 봐야겠지만,


그렇게 굳은살이 장착되고

꾸준히 나를 단련하다 보면,


멋들어진 연주까지는 아닐지라도,


누군가가 부르는 노래에

방해되지 않는

괜찮은 반주 정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