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머니, 나의 할머니
아이유 '무릎' 가사 중
아이유의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난 자연스레 떠오른다.
휘몰아치는 폭풍 속을 걷다가도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간신히 버티다가도
이곳에만 가면,
그저 아무 말 없이 나를 받아줄 것만 같은
그런 품.
그런 사랑.
나의 외할머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릴 적,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할머니!!!"
내 기억의 첫 시작부터
할머니는 늘 함께였다.
맞벌이였던 부모님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난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단다.
내게 할머니는,
엄마 그 이상이었다.
유치원 입학식, 발표회, 졸업식, 초등학교 입학식,
학교 운동회, 그 외 자잘한 학교 행사 등
나의 모든 일상에 할머니가 없는 곳은 없었다.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우리 엄마보다는
할머니를 더 많이 알았다.
공부도 할머니에게 배웠다.
책을 좋아했던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글자를 알기도 전부터
할머니 옆에서
책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단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에도
외할머니가 바로 와주셨기에,
나는 그나마 마음을 붙일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엄마도 없는 집에 들어와
몇 년 간, 나와 동생을 챙기셨다.
지금 생각하면,
딸도 없는 집에서
어떻게 사위와 불편한 동거를 하셨을까 싶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할머니가 집에 있으면
엄마가 돌아오기 수월할까 싶어
계속 계셨던 거란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할머니는,
내게 따스한 봄볕 그 자체였다.
할머니는 나의 중학교 생활 내내,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나를 위해
따끈한 보온 도시락을 싸다 주셨고,
행여나 내가 다른 길로 샐까 봐
늘 노심초사하셨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할머니는 외삼촌 댁으로 가셨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집에
더 이상 계실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내가 결혼할 때,
신랑 손을 잡으며
우리 손녀 잘 부탁한다고,
우리 손녀 많이 사랑해 달라고,
나는 이제 아무 걱정이 없다고 하셨던
할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았을 때,
할머니는 매일 우리 집에 오셨다.
걷기도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오셔서는,
팔에 힘이 없어 안지도 못하시면서,
그저 꼬물거리는 증손녀를 바라보시며
정말 행복해하셨다.
그때 할머니가 내게 했던 말을
지금도 떠올리면,
나는 자꾸 눈물이 난다.
할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우리 할머니는
95세의 지난한 삶을 내려놓으셨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여기저기서 할머니가 보인다.
우리 아이들을 챙기시는 시어머니를 보며,
학교 앞에서 손녀딸을 기다리고 있는 분을 보며,
파친코 영화 속 윤여정 님을 보며,
눈이 부시게 드라마 속 김혜자 님을 보며,
나는 문득문득 할머니를 떠올린다.
우리 할머니도 저렇게 웃었는데...
우리 할머니도 저렇게 얘기했는데...
우리 할머니 손도 저랬는데...
우리 할머니도 저렇게 나를 사랑해 줬는데...
이 글을 쓰는 내내,
몇 번을 멈췄는지 모른다.
몇 주가 걸린 것 같다.
할머니에 대해
어디부터 어디까지 써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내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마무리를 하려는 지금도,
할머니를 다시 떠나보내는 것 같아
또 눈물이 난다.
요즘은 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우리 할머니.
내가 잘 살고 있으니,
이제는 맘 푹 놓고 하늘나라에서 노시느라
내 꿈에도 오지 않으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