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애순이와 금명이가 아니다.
올해 아주 핫한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
이웃님들 블로그에도
한참 동안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2025년 백상예술대상에서
각종 연기상과 대본상, 작품상을 휩쓴
명실공히 올해 최고의 드라마.
배우들의 연기, 따스한 영상미도 일품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드라마의 일등공신은
작가의 대사이리라.
스토리 사이사이에 배치된
손글씨로 쓰인 '시'들과
애순이와 금명이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주옥같은 '대사'들이
시청자들, 특히 엄마와 딸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런데,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한편으로 많이 씁쓸했다.
다들 드라마를 보며,
자신들의 엄마를 떠올리는데,
나는 떠올릴만한 엄마와의 기억이 없다.
우리 엄마는,
내가 14살에 집을 나갔다가
내가 결혼하던 28살, 11월에 집에 들어왔다.
한창 예민하던 나의 그 시절,
엄마와 정을 쌓을 수 있었던 시간은
그렇게 싹둑. 잘려나갔다.
내게 엄마는,
금명이의 애순이가 아니다.
내게 엄마는,
불면 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까
살살 다뤄야 하는 존재이다.
이젠 연세가 드셔서
더욱 얇아진 마음 탓에
작은 스침에도 상처 날까 더 조심스럽다.
나에게 이 멋진 대사는,
나의 딸을 생각나게 했지,
나의 엄마를 생각나게 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엄마도
자식을 버리고 나가 살았다는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인지,
그 시간을 메우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시는 걸 안다.
하지만,
나무의 옹이가 상처가 아문 자리이듯,
그것이 아물어 굳은살이 배겼다 한들,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첫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심해
친정에 며칠 와서 묵었던 때,
엄마는 나를 꼭 아이처럼 대했다.
마치 아직도 내가
엄마 품에 기어들어가는 아이인 것 마냥,
그렇게도 내 옆에서
나를 보듬고 내 손을 잡고 그러더라.
그런데, 그때 내가 너무 아팠던 건,
그런 엄마가 참....
어색하고 피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다 큰 어른이 된 나를
아이처럼 대하는 것도 뭔지 모르게 창피했고,
분명히 엄마인데도 엄마가 아닌 것처럼,
뭐가 그리 낯설어 눈도 못 쳐다보겠던지...
몇 년 전, 그 일도
내 상처가 툭 튀어나온 일이었다.
엄마가 어느 날 우리 집에 오더니,
내 생일선물을 미리 사주겠다며
백화점에 같이 가자는 것이다.
내 생일은 2월인데,
그때는 겨울이 시작하는 12월이었다.
엄마는 내가 추위를 많이 타니,
겨우내 입을 패딩을 사주겠다며
같이 쇼핑을 가자 했다.
그때 내 입에서 나온 한 마디가
지금도 내 맘을 시리게 한다.
불안한 듯 떨리는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던 나.
그런 나를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던 엄마.
그날 그렇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우리 모녀의 모습은,
내 마음에 사진처럼 박혀있다.
엄마가 딸의 생일선물을 사주겠다는데,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참.... 가여웠다.
이제는 내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나도 결혼생활을 하고
딸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되고 보니,
그때의 엄마가 아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식인 나는
아직도 아프다.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아직도 썩 엄마가 편하지 않다.
엄마를 모시고 식사를 할 때도,
얼마 전
허리 수술을 하신 엄마를 퇴원시키러 가서도,
딸이 엄마에게 하는
그 흔한 팔짱 한 번을 끼지 못했다.
엄마도 그걸 아시는지,
굳이 뭐라 하지는 않으시지만,
아쉬워하시는 그 마음을 나는 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 목이 메는 걸 보면,
아직도 내 마음에는
굳은살이 베기지 않았나 보다.
살을 부비며, 얼굴을 맞대며
볼 꼴, 안 볼 꼴, 할 말, 안 할 말
뭐 그러면서 화도 냈다, 사과도 했다 하는
엄마와 딸.
내게 작은 소망이 있다면,
내 인생의 가을길 그 어느 즈음에서
엄마와 아빠에게 나의 글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지난날,
당신들 딸이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노라고.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잘 컸노라고.
그러니 우리 이제
서로에게 준 상처 때문에 서로 눈치 그만 보고,
이제 그만 용서해 주자고.
그리고 사랑하며 살자고.
그렇게 서로 안아주고 펑펑 울고 싶다.
그렇게...
나의 어린 날 그 아이를
잘 배웅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