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1화. 첫 자취방에서 라면을 끓이며
냄비가 하나밖에 없었다는 걸, 라면을 끓이려는데 그때 알았다.
이사한 첫날, 짐이라고 해봐야 캐리어 하나와 이불 하나였고, 그걸 방 한가운데 내려놓고 둘러보니 여섯 평짜리 원룸이 경기장만큼 넓어 보였다. 벽지엔 전 세입자가 붙였다 뗀 테이프 자국이 있었고, 화장실 거울엔 누군가의 손때가 남아 있었다.
자유, 나는 그걸 찾아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서 보니까 자유는 좀 허술하다.
밤 열한 시, 냉장고를 열었는데 당연히 비어 있었고, 그 텅 빈 냉장고 불빛이 방 전체를 잠깐 비추는데 이게 묘하게 쓸쓸하다. 편의점에서 사 온 신라면 하나를 꺼내 들고, 물 550ml, 면 넣고 4분 30초, 스프는 면과 동시에 —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근데 혼자 먹는 라면이 이렇게 조용한 건 몰랐다.
후루룩 소리만 방 안에 울린다. TV도 없고 와이파이도 아직 안 돼서, 들리는 건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국물 삼키는 소리, 전부 내 소리다. 집에서는 엄마가 TV를 틀어놓고, 아버지는 뉴스를 보고, 형은 방에서 통화를 하면서 뭐라뭐라 하고 있었는데, 그 소음이 싫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 소음이 그립다.
라면 국물을 다 마시고 냄비를 씻는데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옆집이다. 벽이 얇다. 그것도 몰랐다.
이불을 깔고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천장이 낯설다. 우리 집 천장엔 작은 얼룩이 있었는데 여긴 깨끗하고, 깨끗한 게 오히려 불안하다. 눈을 감아도 잠이 안 온다. 폰을 열었다가, 엄마한테 전화할까 하다가 껐다. 대학까지 온 성인이 이사 첫날밤 외롭다고 엄마한테 전화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아직은.
다음 날 아침, 현관 앞에 뭔가 있었다. 택배가 아니라 엄마가 보낸 반찬통 세 개, 김치, 멸치볶음, 계란말이. 포장 비닐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김치는 일주일 안에 먹어. 계란말이는 오늘 먹고."
전화한 적 없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아들이 첫날밤 라면을 끓일 거라는 걸, 냉장고가 비어 있을 거라는 걸, 좀 외로울 거라는 걸.
반찬통 뚜껑을 열었는데 계란말이가 아직 따뜻했다. 그 말은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만들어서 아침 일찍 가져다 놓고 갔다는 거다. 초인종도 안 누르고. 나는 그 계란말이를 냄비 뚜껑 위에 올려놓고 먹었다, 접시가 없었으니까. 설거지도 하다 말아 어제 썼던 젓가락을 대충 씻고 먹었는데, 간이 좀 셌다. 엄마는 늘 내 입맛보다 좀 짜게 했다. 그게 싫다고 했었는데.
이상하다.
짠 계란말이 먹으면서 눈물이 난다. 처음이다.
자유는 생각보다 넓었고, 그 넓이만큼 빈자리가 선명했다. 혼자 산다는 건 혼자가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자리를 느끼게 되는 거라는 걸, 스무 살의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냄비는 여전히 하나였지만, 냉장고는 더 이상 비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