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밤공기를 들이마시다

by 유리사탕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창문을 열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 시계를 보지 않았으니까. 다만 건너편 아파트 불빛이 대부분 꺼져 있었고, 간간이 남아 있는 불빛도 거실이 아니라 침실 쪽의 희미한 것이었으므로, 열한 시는 넘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창문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잠금장치가 딸깍 소리를 냈고, 유리가 안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바깥공기가 밀려들어왔다.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얼굴 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실내 공기와 바깥공기의 경계가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차갑다. 낮의 공기와는 다른 종류의 차가움이다. 낮의 서늘함이 바람에 의한 것이라면, 밤의 차가움은 공기 자체의 온도에서 온다. 바람이 없어도 차갑다. 공기가 가만히 있는데도 피부에 닿는 순간 열을 빼앗아간다. 이마, 콧등, 입술 주변. 노출된 피부 위에 밤공기가 얇은 막처럼 내려앉았다. 코를 통해 들이마시자 비강 안쪽이 시원해지면서 서늘한 줄기가 목구멍을 타고 폐까지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폐가 팽창할 때 그 차가움이 갈비뼈 안쪽에서 퍼졌다. 낮 동안 실내의 따뜻한 공기만 마시고 있던 폐가, 이 밤공기를 받아들이며 약간 놀란 것 같았다. 두 번째 호흡은 첫 번째보다 깊었다. 세 번째는 더 깊었다. 몸이 스스로 호흡의 깊이를 조절하고 있었다.


밤의 냄새는 복합적이다. 낮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올라온다. 어딘가에서 빨래를 돌리고 있는지 섬유유연제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고, 그 아래에 나무와 흙의 냄새가 깔려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 조경수에서 오는 것이다. 낮에는 차 매연과 음식 냄새에 묻혀 있던 나무 냄새가, 밤이 되면 다른 냄새들이 잠들면서 코에 닿는다. 나는 이 시간의 나무 냄새를 좋아한다. 실제로 나무가 밤에 다른 물질을 방출하는 것인지, 아니면 경쟁하는 냄새가 줄어서 상대적으로 또렷해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밤의 나무는 낮의 나무와 다른 냄새를 가지고 있다. 가끔 담배 연기가 아래층에서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오늘 밤은 아니었다.


공기의 밀도가 다르다. 이것은 과학적인 표현이라기보다 감각적인 표현이다. 밤공기는 무겁다. 들이마실 때 폐에 좀 더 많은 것이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습도가 올라갔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공기 분자가 밀집해서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밤에 숨을 쉬면 낮보다 깊은 호흡이 된다. 자연스럽게. 의식하지 않아도 들숨이 길어지고, 날숨도 길어진다. 몸이 밤의 밀도에 맞춰 리듬을 조절하는 것이다. 낮의 호흡이 얕고 빠른 것이었다면, 밤의 호흡은 깊고 느리다.


창밖을 내다본다.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고, 그 불빛이 나무 잎사귀 사이를 통과하면서 도로 위에 얼룩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낮에는 그 무늬가 해 그림자이지만, 밤에는 가로등 그림자이다. 방향이 다르다. 해는 위에서 내려오니 그림자가 아래에 생기고, 가로등은 옆에서 비추니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같은 나무인데 빛의 출처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그림자를 가진다. 가로등 불빛은 주황색이라 나무 잎사귀가 낮과 다른 색으로 보였다. 초록이 아니라 올리브색에 가까운, 채도가 낮아진 색.


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낮의 소리와 밤의 소리의 가장 큰 차이는 양이 아니라 층이다. 낮에는 소리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개별 소리를 분리하기 어렵다. 차 소리 위에 사람 목소리, 그 위에 공사 소리, 그 위에 비행기 소리. 밤에는 그 층이 벗겨진다. 한 겹, 두 겹, 세 겹. 그래서 남은 소리들이 선명하게 들린다. 마치 겹겹이 칠한 페인트를 벗겨내면 밑에 원래의 나뭇결이 드러나듯이, 밤은 도시의 소리를 벗겨내서 바닥에 남은 것들을 보여준다.


멀리서 택시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타이어가 아스팔트 위를 굴러가는 소리는 낮에도 존재하지만, 밤에는 그 소리가 건물 사이를 반사하면서 약간의 울림을 가진다. 차가 지나가고 나면 정적이 찾아오는데, 그 정적의 길이가 낮보다 훨씬 길다. 삼십 초, 일 분, 때로는 이 분이나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시간이 있다. 그 긴 정적 속에서 다른 소리들이 떠오른다.


에어컨 실외기의 저주파 웅웅거림. 어디선가 문을 닫는 둔탁한 소리. 고양이 울음인지 아기 울음인지 구분이 안 되는 높은 소리가 한 번 울리고 멈춘다.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기찻길은 여기서 꽤 먼데, 낮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그 소리가 밤에는 희미하게 도달한다. 밤의 공기가 소리를 더 멀리 전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소리가 없어서 멀리 있는 소리까지 귀에 닿는 것인지. 어쩌면 둘 다일 것이다.


팔꿈치를 창틀에 올리고 몸을 약간 바깥으로 내밀었다. 상체가 실내와 실외의 경계에 걸쳐 있었다. 등은 방 안의 따뜻한 공기 속에 있고, 얼굴과 팔은 바깥의 차가운 공기 속에 있었다. 두 온도 사이에 몸이 놓여 있는 감각. 경계 위에 서 있다는 것. 안과 밖, 따뜻함과 차가움, 밝음과 어둠, 낮의 잔여와 밤의 시작. 그것들이 내 몸 위에서 만나고 있었다. 창틀의 금속이 차가웠다. 팔꿈치를 통해 전해오는 그 서늘함이 밤의 온도를 한 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밤하늘은 검지 않다. 가로등과 건물 조명이 만든 빛이 구름에 반사되어 돌아오기 때문에 회색빛 주황색, 혹은 보랏빛 회색이다. 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두 개의 밝은 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별인지 비행기인지 인공위성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을 골라 한참 바라보았다. 움직이지 않으면 별이다. 아마도. 도시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은 약간의 허탈함과 약간의 위안이 동시에 드는 행위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허탈하고, 그래도 하늘이 거기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바람이 불었다. 낮의 바람과 다른, 느리고 긴 바람. 머리카락이 한 방향으로 눕고, 볼에 차가운 공기가 밀려왔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소름이 돋았다. 팔뚝의 솜털이 한쪽으로 눕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이 멈추자 솜털이 다시 일어나고, 소름도 가라앉았다. 짧은 사건.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사건. 하지만 내 피부는 그것을 감지했고, 기억했다.


한참을 서 있었다. 시간의 감각이 흐려졌다. 밤의 정적 속에서 시간은 낮보다 느리게 가는 것 같다. 실제로는 같은 속도인데, 사건의 밀도가 낮아지니 시간이 늘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한 호흡이 지나고, 또 한 호흡이 지나고. 그 사이에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 별다를 것 없음이, 오히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조건이 된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하나 남아 있던 불빛이 꺼졌다. 누군가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그 사람도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마셨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밤은 잠자는 시간이지 공기를 마시는 시간이 아니니까. 불이 꺼진 창문은 건물 외벽의 일부가 되어 어둠 속에 묻혔다. 낮에는 각자의 삶이 들여다보이던 창문들이, 밤이 되면 하나씩 꺼지면서 익명으로 돌아간다. 건물이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손끝이 차가워져 있었다. 창틀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 끝이 하얗게 되어 있었다. 혈관이 수축해서 혈액이 빠져나간 것이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감각을 확인했다. 차가움이 통증에 가까워지기 직전의 감각. 아프지는 않지만 날카로운.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 들어가라는.


창문을 닫았다. 유리가 원래 위치로 돌아가면서 바깥공기가 차단되었다. 잠금장치를 돌리자 딸깍 소리가 나며 밀폐되었다.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다시 얼굴을 감쌌다. 코끝이 차가운 채로, 볼이 서늘한 채로, 방 안의 온기 속에 서 있었다. 밤공기가 피부 위에 남긴 서늘함이 천천히 사라져 갔다. 하지만 코 안쪽에는 아직 밤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나무와 흙과 차가운 공기가 섞인 그 냄새.


방금 들이마신 밤공기가 아직 폐 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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