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부모 육아를 말하다!
장애를 가지고 아이를 키운 지 어느덧 4년이 훌쩍 넘었다.
나의 경우, 임신을 하고, 출산할 때가 다가올수록 장애부모로서의 불안감은 점점 커졌지만, 이런 불안감과 실질적인 고민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통로는 거의 전무했던 것 같다. 폭풍 검색을 통해 서울에서, 아니 어쩌면 전국에서 거의 유일할지도 모를 여성 장애인의 임신, 출산, 육아 등에 대한 지원을 해 준다는 가톨릭계 복지관이 있어 임신 후기에 산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기도 했지만, 각자의 출산 이후로는 엄마로서의 고민을 나누며 지속적인 자조와 교류 같은 건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못했다.
하기야… 신생아가 집에 있는데, 그런 걸 생각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건, 복지관의 지원이 주로 물리적인 고민, 이를테면 어떻게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힐 것인가와 같은 측면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장애부모들에게 주어지는 사회 보장 수준상 아직은 신체적, 경제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며, 사회복지의 태생적 한계상, 대부분의 복지관들이 이런 지원에 국한된 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아이를 한 해, 두 해 키우면서, 보통 엄마들이 고민하는 일반적인 문제들과 함께 나의 장애로 인해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고민해야 할 문제들도 당연히 생겨났다.
전자야 뭐 하늘의 별처럼 많은 좋은 육아서를 읽어도 되고, 주위 맘들에게 물어보거나, 그도 아니면 엄마들이 절대적으로 많이 가입한다는 **홀릭 카페라도 가서 고민 해결을 도모해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각장애라는 나의 특성에 의해 생기는 육아에 있어서의 고민이나 애로사항 같은 것들에 대한 해답은 도저히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해답은 고사하고 위안이나 공감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훨씬 덜 힘들었을 텐데, 그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엄마들은 너무도 잘 알 것이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육아라는 망망대해를 좌충우돌 홀로 표류하고 있다는 암울함이 밀려올 때, 같이 아이를 키우는 맘들의 작은 지지와 공감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그래서 엄마들이 삼삼오오 문화센터에도 가고, 커피숍에도 가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함께 놀도록 하는 것이리라.
주위에 사람이 없다고 외로움을 타는 성격도 아니고, 혼자 노는 것에는 거의 도가 튼 나였기에, 유모차를 끌고 함께 몰려다니는 엄마들이 조금은 부러울 때도 있긴 했지만, 그냥 나 혼자 문화센터도 다니고, 카페에 가서 발로 유모차를 살살 밀어주며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대화도 걸고 커피도 마시며 두 해를 보냈다. 그렇지만, 아이가 두 돌이 넘어가자 이런 생활에 대해 조금은 고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육아에 전념하며 일도 하지 않다 보니 내가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였지만, 그것보다 더 고민이 되었던 건, 내가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며 교류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본의 아니게 아이까지 너무 고립시키며 키우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러던 중, 산전 교육을 같이했던 시각장애 엄마가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하는 시각장애 엄마들과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며 권유를 하기에 그 프로그램에 두 해 동안 참여하기도 했다.
확실히, 시각장애를 어느 정도 잘 아는 기관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어서인지 장애 특성에 따른 부모의 필요와 욕구, 시각장애에 맞는 자원봉사자 배치 등등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역시 복지관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보니 아이와 함께 하는 활동들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로서의 내가 주체성과 권위를 가진 한 사람으로 존중받는다는 느낌보다는 아이 앞에서 불쌍하고 무력한 서비스 수혜자라는 기분이 들게 되는 경험이 종종 있었다.
더욱이, 한 번은 복지관의 관리 소홀로 우리 가족에게 큰 사고가 있었는데도 금전을 대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어서인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태도와 일 처리를 보여 주어 무척 화가 난 경험도 하게 되었다. 사실,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해 준 곳이라면 컴플레인을 하든, 담당자에게 화를 내든 하겠지만, 그 복지관에서 점자 동화책 대여 서비스 등 다른 서비스를 받고 있는 입장에서 아무리 억울해도 이 문제를 크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 문제는 그냥 나 혼자 화가 나고 끝이 난 것이었다.
그래도 복지관 활동에 참여하면서 딱 한 가지 좋았던 점은, 나와 비슷한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복지관 프로그램에도 회의를 느끼며 뭔가 좋은 대안이 없을까 고민을 하면서 지내 왔다.
한 편, 아이가 세 돌을 지나면서부터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시각장애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나름의 고민이나 육아 팁, 요리 레시피, 이채로운 경험 등에 대해 개인 육아 노트 같은 블로그를 만들어 끄적끄적 기억의 흔적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주로 장애를 가진 부모로서의 정체성 문제라든지, 장애 때문에 아이에게 제대로 해 줄 수 없는 너무도 평범한 그 무언가에 대한 자괴감, 장애 부모가 아이와 함께 나들이하기 좋은 곳에 대한 리뷰 등등… 지극히 평범한 육아 문제들에 대한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 엄마의 관점에서 쓰여진 글들이었다. 이런 글들을 같은 장애를 가지고 아이를 키우는 몇 안 되는 지인들에게 조금씩 공유하곤 했는데, 내 글을 읽고 비슷한 경험을 한 지인들은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격하게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런 우리들의 이야기나 생각들, 고민들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올 연말까지 장애부모의 육아 문제를 다룬 글들을 쓰고, 모으고, 얼개를 짜서 책 한 권을 만들기로 한 터라 비자발적인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내가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우선, 평소 육아에 대한 고민을 종종 나누던 지인들을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초대하고, 내 생각과 취지를 말하니 모두 좋다고 했다. 평소, 이런 모임을 만들면 좋겠다고 1년여 전부터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절친 대학 후배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 육아 베테랑인 이** 선생, 이응이와 절친의 엄마이자 나랑도 성향이 잘 맞는 송** 씨, 전맹 엄마라 더 힘들 텐데도 성격은 가장 얌전하면서도 가장 당차게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 씨, 그리고 나… 이렇게 카톡방에 모여 단체의 성격, 이름, 무얼 할까 등등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11월 첫째 주말에 **씨네 집에서 모여 1차 회의도 가졌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세상에 그 기이한(?^^) 모습을 드러낸
'한국장애부모연합회 심봉사임당’
그 이름도 거창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장애를 가진 엄빠들의 육아 모임이다.
그럼에도 앞에 굳이 '한국장애부모연합회'라는 요란 뻑적지근한 네이밍을 한 이유는, 시작은 미미하더라도, 앞으로 이 모임이 언젠가는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장애부모'들의 존재와 다양한 관련 이슈들을 아우르는 그릇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장애부모의 '부모 됨'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 지는 사회를 꿈꾸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다소 쑥스럽지만, 간절한 바람이었다.
그런데, '심봉사임당'은 무슨 뜻일까?
우리가 장애부모의 육아 모임을 만들겠다고 정하고 그 이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장애부모로서 접했던 다양한 편견과 차별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지향하는 바와 모임의 역할 등을 구체적으로 정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장애부모의 '부모 됨'에 대한 반응들이 있다.
'장애인은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부모가 될 수 있어?', '자기가 아무리 애를 갖고 싶어도 그렇지, 자기랑 사는 애 불쌍한 건 생각도 안 하고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으로 애를 낳아 키울 생각을 해?', '엄마가 장애인이면 엄마가 애를 돌보는 게 아니라 애가 엄마를 돌보겠네.'….
우리 모두가 장애부모로서 누군가에게 반드시 들어야만 했던 부당하고 폭력적이며 아픈 말들.
우리는 보여 주고 싶었다. 우리가 현재 그러하듯, 장애를 가진 부모의 능동적이며 책임감 있는 부모상을.
남편이 갑자기 말했다.
'장애인 중에 훌륭하게 아이를 키운 일종의 위인 같은 유명한 롤모델이 없을까?‘
그 말에 열심히 검색에 들어갔으나,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장애 자녀를 잘 키워 훌륭한 대접을 받는 비장애인 부모들은 많았지만, 장애를 가지고 자식을 훌륭히 키웠다고 크게 알려진 사람들은 없었다. 예상은 되었으나, 그래도 밀려오는 작은 자괴감에 허탈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말했다.
'심봉사 있다.‘
'심봉사?‘
'그래, 부인은 죽고 눈도 안 보이는데 갓난아기 젖동냥해 가며 안 버리고 사회안전망이나 복지 서비스 같은 것도 전무했던 조선 시대에 심청이 나름 잘 키웠잖아?‘
'푸하하핫! 맞네, 맞아. 사람들도 너무 잘 아는 캐릭터이고. 좋네.‘
'근데 자기야, 심봉사는 아빠잖아. 근데 우리는 엄마도 있는 모임인데 엄마를 대표하는 사람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검색.
'흠, 마땅한 롤모델이 여성 중에는 없네!‘
이때 한 후배가 말했다.
'형님! 심봉사임당 어때요? 마땅한 장애 엄마 롤모델이 없으니, 신사임당을 심봉사와 결혼시키면 어떨까요? 뭐, 여성학적으로 볼 때는 다소 구리구리하고 억압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율곡을 조선 최고의 엘리트로 키운 나름 훌륭한 어머니상이기도 하니까요. 심봉사 플러스 신사임당, 그래서 심봉사임당.‘
'오호! 나름 쌈빡하고 재미있고 신선한데….‘
그리하여 우리 육아 모임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누구나 무슨 뜻이냐 묻고, 이유를 듣고 나면 무릎을 치며 절대 잊지 않는 '심봉사임당'이 되었다.
이름은 정했으니, 다음은 우리가 이 모임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즉 이 모임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정하는 토론을 하였다.
긴 성토대회와 토론 끝에 정리된 우리의 미션은 아래와 같았다.
첫째, 장애부모의 부모 됨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장애부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인식 함양을 위해 권익 옹호적 관점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둘째, 누가 뭐래도 이 아이의 부모는 나라는 마음을 갖고, 주도적이며 책임감 있고 능동적인 장애부모로서 서로 지지하며 자조하는 행복한 육아 모임을 지향한다.
셋째, 조금 다른 부모로 인해 직, 간접적으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모색한다.
거창하게 기술했지만, 결국, 장애부모인 우리도 다 같은 부모다, 우리 서로 도와가며 함께 으쌰으쌰 지혜롭고 즐겁게 아이 잘 키워 보자, 우리의 장애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상처받고 아프지 않게 도와주자, 뭐 이런 의미다.
특히 우리가 이 모임을 소중히 여기며 가꾸어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장애부모를 가진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아이들의 성장 시기에 따라 세심하게 다루어 주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소중한 공감대 때문이다.
이 모임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나와 같이 조금 다른 부모를 가진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 부모의 다름과 그로 인해 나에게 직, 간접적으로 가하는 편견과 차별적 시선에 대해 서로 나누고 공감하며 함께 위로하고 위안받기를 원한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기에는 '아이, 우리 엄마, 우리 아빠는 왜 장애인이어서 나를 이렇게 부끄럽고 짜증 나게 하냐?'라며 아이들 끼리 서로 편하게 욕하면서 안전하게 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안전 공간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제법 범상치 않은 포스를 자랑하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조금은 특별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하기도 한 장애부모의 육아 모임 '심봉사임당’.
모쪼록 우리의 이 작은 몸짓이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 속에서 장애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심봉사임당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