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난 싹수없는 딸이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by 완더

"태국까지 가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니? 정말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


엄마는 같은 말을 오조오만번은 되풀이했다.

여러 차례 조목조목 상세하게 설명을 드렸지만, 엄마는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엄마앵무가 될 것을 알고 있다.


"이 늙은 엄마를 두고, 태국에 가야만 네가 행복하다는 거니?"


"내가 좀 쉬고 싶어요. 이제 일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 편히 쉬면서 지내보고 싶은 거야. "


"그러니까 여기서 쉬면 되지, 왜 태국까지 가야 하느냔 말이야. 늙은 엄마를 두고! 네가 태국 간다고 하니까 내가 요즘 너무 우울해! 우울증이야! 죽고만 싶어!"


엄마의 요지는 그것이었다. '어떻게 나를 두고 네가'


"엄마, 나도 늙었어. 늙은 엄마 딸이 몸과 마음 좀 편히 몇 년 지내보고 싶다는데, 나의 행복이 엄마에게 불행이고 우울이고 그래요? 내가 그런 죄책감을 가졌으면 좋겠어?"


말문이 막힌 엄마는 당연히 너의 행복을 바란다는 말로 전화를 끊는다. 그녀의 새된 소리 어디에도 딸은 없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뿐.

의식적으로 안부 전화를 줄였다. 그러나, 그만큼 엄마의 전화가 채워졌다. 전화를 받지 못하면 손주들에게 전화를 했고, 그렇게 결국엔 나의 전화를 받아냈다. <자식이 내게 전화했다>는 명분뿐인, 초라한 인사치레는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 일방적으로 엄마가 말하고 엄마가 끊었다. 평범한 일상 따위를 나누어 본 적은 있었던가, 가물가물하다. 자식의 불행이나 어려움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엄마는 당신에게 걱정거리가 생기는 걸 원치 않으며서도 그런 당신을 모질게 여길까 불안해했다. 그래서일까, '너희를 위하여 늘 기도하는' 엄마라는 걸 강조하던 가여운 분. 엄마에게 잣대는 하나였고, 자기애에 갇힌 시야는 불행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디에선가 멈추어버린 그녀의 성장으로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일을 끊어내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엄마로부터 도망한 것일지도 모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