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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림 May 24. 2023

[나의 응급실 이야기] 거꾸로 읽는 이야기.

신과 시간을 거스르고자 하는 욕심.

 사망 선언을 했다. 가족들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모인 가족들이 응급실 밖에 마련된 보호자 대기실을 가득 채울 만큼 많았다.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싶어 담당 간호사님께 망인의 가족 관계를 여쭤보니, 그게 아니란다. 일가친척들이 다 모인 것이란다. 한 시간 만에 친척까지 다 모이다니, 그것도 그것대로 유별난 일이었다.


 그가 응급실로 실려 온 것은 한 시간 전이었다. 식당에서 초밥을 먹다가 음식이 목에 걸린 환자였다.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하임리히 법으로 환자의 목에 걸린 이물질을 빼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환자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오던 도중에 의식을 잃었다. 구급대원들은 프로토콜대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환자의 상황을 전해 들은 우리 응급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준비하는 한편, 기도 이물질 제거를 위한 응급 기관지 내시경을 위해 호흡기내과 당직 팀도 호출했다. 환자가 도착하자마자 내가 튜브를 삽관하여 기도를 확보했고, 호흡기내과 당직 의사도 능숙한 솜씨로 이물질을 끄집어냈다. 하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의식을 잃은 뒤 병원에 오기까지 이미 20여 분이 걸렸고, 병원에 도착하고도 이물질을 끄집어내기까지 추가로 10분 정도가 더 걸렸다. 우리는 그 뒤로도 40여 분 간 추가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그의 심장 박동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속상하지만 더 이상 가망이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윽고 당직 교수님께서, 창백한 환자의 얼굴과 지쳐가는 의료진들을 차례로 둘러보시고는 ‘소생술 중단’을 선언했다. 토요일 저녁 18:41이었다.


 나는 망인의 가족과 친척들의 질문 세례에 한참을 시달린 후에야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자 의무기록 프로그램을 켜고 망인의 사망 진단서와 진료 기록지를 작성했다. 사망 진단서 서식을 불러오자, 전자 의무기록 프로그램에 등록된 망인의 신상 정보가 자동으로 진단서에 연동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토록 많은 친척들이 모이게 된 사연의 경위를 알 수 있었다. 연동된 주민등록번호를 보니 그는 정확히 70년 전 오늘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날은 망인의 칠순 잔칫날이었던 것이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그러게 왜 일식집을 가자고 했냐. 다 네 탓이다!” 하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그 상대도 질세라 “그렇게 잘났으면 평소에 잘 모시지 그랬냐!”라고 맞받아쳤다. 다투는 소리가 응급실 안까지 들릴 만큼 커서, 상황 통제를 위해 보안 요원들이 나서야 했을 정도였다. 망인이 아직 응급실을 나서지도 않았는데 벌써 싸움질부터 하려는 건가 싶어 순간 언짢아졌다. 물론 황망한 마음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서로를 탓하며 싸울 일인가 싶었다.


 진료 기록지를 정리하기 위해 예전 의무기록들을 뒤지다 보니, 망인이 일식집을 주의해야 할 이유가 하나 있기는 했다. 그는 기저질환으로 뇌졸중이 있어 원래도 씹거나 뱉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던 것이다. 초밥에 올리는 해산물 조각은 가끔 지나치게 크거나 질길 때가 있다. 씹거나 뱉는 것에 지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음식을 주의했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운이 겹쳐 일어난 ‘사고’를 두고, 일식집에 망인을 데려간 보호자나 평소 망인을 잘 모시지 않은 보호자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식이면 초밥에 지나치게 크고 질긴 생선 조각을 올린 주방장도 책임이 있는 셈 아닌가.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꼭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면, 망인 본인에게는 책임이 조금 있지 않나 싶다. 나중에 들어보니 일식집을 가자고 한 것은 망인 본인이었다고 한다. 소생실 의료진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되었다. 망인은 그간 첫째 딸과 함께 살았고, 딸은 평소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모셨다고 한다. 그는 뇌졸중에 걸린 아버지의 건강을 생각해 부드럽고 삼키기 쉬운 재료로 매 끼니 손수 식사를 준비했다. 그러다 며칠 전, 아버지가 “평소 부드러운 것만 먹어 신물이 날 지경이니, 생일날 하루 만이라도 씹는 기분을 내 보고 싶다.”며 건강할 때 즐겨 먹었던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하셨단다. 첫째 딸은 한 번쯤이야 무슨 일 있겠나 싶어 마지못해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는데, 결국 이 사달이 나고 만 것이었다.


 안타까운 죽음이라 생각했다. 망인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가족과 친지들이 그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오랜만에 맛보는 초밥을 즐기며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 중 하나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맞고 말았다. 그간 그의 생일이었던 날은, 이제 그의 기일이 되었다. 망인의 가족들은 이제 매년 이 즈음이 되면, 오늘의 불행을 떠올리게 되리라. 가족과 친지들이 망인을 위해 준비했을 선물들은 주인 잃은 애물단지가 되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친척 간의 의마저 상하고 말았다.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원치 않아도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가끔 겪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그의 이전 의무기록을 살피며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해 보곤 한다. 원래도 의무기록을 쓰려면 이전 기록들을 참고하는 것이 맞지만, 보통 병명과 검사 결과들 위주로 참고하지, 환자 본인의 말이나 의사의 조언 한 마디 한 마디를 모두 꼼꼼히 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부터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무기록을 꼼꼼히 읽는 경우는 이번처럼 마음이 쓰이는 환자에 한해서이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고인이 생전 어떠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풀듯, 망인을 추모하는 내 나름대로의 의식이다.


 전자 의무기록 프로그램은 환자의 의무기록을 역순으로 정렬해 놓는다. 가장 먼저 나오는 기록이 최근의 기록이고, 뒤로 넘기면 예전의 기록이 나오는 식이다. 나는 기록이 정렬된 순서대로 가장 최근 것에서부터 예전 것 순으로 그의 기록을 검토했다.


 그가 뇌졸중에 걸린 것은 2년쯤 전이었다. 당시에도 우리 응급실에서 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으셨다. 당시 뇌혈관 하나가 완전히 막혀서 반신불수가 될 뻔했는데, 다행히 신속하게 응급실에 오신 덕에 치료가 잘 되었다. 그는 며칠간 신경과 입원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고, 그로부터 얼마 뒤 방문한 외래의 기록지에는, 그가 집 근처 재활병원을 다니면서 재활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지난 2년 간 약물 치료와 재활 치료를 열심히 받은 덕에 최근에는 많이 회복한 상태인 듯했다.


 그로부터 2년 전, 그는 고혈압을 처음 진단받았다. 그전까지는 병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무려 66년을 건강하게 살다가 그제야 처음으로 지병을 얻은 셈이다. 당시 그를 진료한 순환기내과 교수의 외래 기록지에는, ‘딸이 극성이다. 짠 거 먹지 마라고 해서 안 먹는다. → 잘하고 계심.’, ‘따님과 함께 내원함. 평소 간장 너무 많이 찍어 드신다 함. → 주의하시도록 교육함.’ 따위의 우습기도, 슬프기도 한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그보다 전의 기록 중 가장 최근 것은 그로부터 다시 2년 전에 쓰인 것으로, 피부과 기록지였다. 기록의 첫 줄에는 당당하게 ‘#Prev. healthy’라 적혀 있었다. 이는 Previously healthy의 준말로, 그제까지 지병 없이 건강하게 살았음을 의미한다. 나는 피부과 질환에는 익숙하지 않아 정확한 병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얼굴에 점인지 검버섯인지 하는 무언가를 없애려고 레이저 치료를 받으신 듯했다. 기록지 하단에는 시술 전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안면부 의학사진이 한 장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영락없이 소생실 침대에 누워 있던 그였다. 왼쪽 뺨 언저리에 커다란 점이 하나 있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러나 창백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누워 있던 모습과는 달리, 사진 속의 그는 부끄러운 듯 홍조를 띠며 빙긋이 미소 짓고 있었다.




 오늘처럼 마음이 쓰이는 환자가 있어 의무기록을 꼼꼼히 보는 날이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의무기록도 동화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동화책의 책장을 넘길 때 책 속의 주인공이 공주를 구하고 악마를 무찌르며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듯, 의무기록의 페이지를 넘기면 망인의 삶 또한 반대로 미래에서 과거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이다. 창백하던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갑자기 소생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목구멍에 손을 넣어 초밥 덩어리를 끄집어 내고는 당당히 응급실을 걸어 나가면 좋겠다고. 2년 뒤에는 그의 뇌졸중이 씻은 듯이 낫고, 또 2년 뒤에는 그의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좋겠다고. 그리고 또 2년 뒤에는 그의 얼굴에 점인지 검버섯인지가 다시 피어나서는, 그것과 함께 남은 64년의 인생을, 미소 지은 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생각은 거기서 끝이 난다. 허튼 생각이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종속된 채 살아간다. 어떠한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바다를 건너고 하늘을 날며, 물질을 창조하고, 심지어 생명을 창조해 내기에 이르렀다. 한 때는 자연의 섭리, 혹은 신의 영역이라 부르며 결코 거스를 수 없다 여겼던 영역들을 정복해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시간의 흐름만큼은 거스르지 못한다. 어쩌면 그것만큼은 신이 우리에게 영영 허락하지 않을 작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이 대단히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오늘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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