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뒤따른다.
요즘 다니고 있는 의과학관 헬스 센터는, 제가 연건캠퍼스를 드나들기 시작한 2013년 이래로는 계속 있었습니다. 의과학관 자체는 붉은 벽돌로 된 건물이니 30년은 되지 않았나 싶지만, 헬스 센터의 개장 연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1+1이니 1+2이니 하는 등록 이벤트를 했던 걸로 봐선 그 즈음 개장했던 게 아닌가 싶고, 실제로 시설 수준도 당시 기준으로는 최신식 시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운동 기구마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운동화와 사람의 몸이 닿는 부분마다 해진 자국이 남은 탓에 별도의 사용 설명서가 없어도 될 지경입니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하니, 변화가 없는 편이 더 이상하겠습니다.
유튜브에서 ‘시간의 흔적’이라는 제목의 영상 시리즈를 몇 개 봤습니다. 오랜 시간 같은 움직임이 반복되거나 사람의 손을 타다 보니 특이한 형태의 자국이 남은 모습을 모아 놓은 콘텐츠입니다. 가령 이런 것들입니다. 크기가 작은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손이 문에 닿는데, 그 닿는 곳만 하얗게 색이 바래 있습니다. 잘 관리되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방울방울 물이 새는데, 그 물이 떨어져 닿은 곳에 석순 같은 금속 덩어리가 생겨 있습니다. 하얀 고깃집 벽에 걸려 있던 메뉴판을 치워보니, 메뉴판 뒤에 주변 벽보다 더 새하얀 벽이 숨어 있었고, 그동안 전혀 때가 타지 않은 줄로만 알았던 벽은 사실 아주 조금씩 연기로 인해 그을리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영상이었습니다. 정말 세상 모든 것에는 시간의 흔적이 남는가 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 시간의 흔적이 남는다는 사실은, 단순히 재미있는 영상 소재일 뿐 아니라, 생각할 거리이기도 합니다. 물체와 물체가 상호 작용을 하게 되면, 아주 미시적인 수준일지언정 반드시 변화를 수반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런 미시적인 수준의 변화가 쌓이고 쌓이면 결국 인간이 관측 가능한 거시적인 결과로 이어집니다. 미국의 판타지 소설 작가 홀리 리슬레의 격언이 떠오릅니다.
Actions have consequences. First rule of life. - Holly Lisle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뒤따릅니다. 하지만 그 결과라는 것은 대개 너무 작은 것이라, 우리는 종종 모든 행동에 결과가 뒤따른다는 너무 당연한 진리를 잊습니다. 그러나 그걸 잊고 사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시간이 흔적이 남듯, 우리의 행동으로부터 말미암은 결과 또한 쌓이고 쌓여 결국 거시적인 ‘흔적’이 되어 남게 됩니다. 가령 매일 백 개씩 푸시업을 하면 언젠가는 대흉근이 발달한 몸을 갖게 됩니다. 매일 남들보다 30분씩 더 공부하면, 입학, 입사 등을 위한 시험에서 경쟁자에 비해 유리해질 것입니다. 가난한 이를 위해 매달 만 원씩 기부한 결과, 돈이 눈덩이처럼 구르고 굴러 그의 삶을 바꿔 놓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로운 결과만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시에서 든 경우에서처럼 이로운 결과를 누적해 왔다면 당연히 이로운 흔적이 남겠지만, 정반대로 해로운 흔적이 남는 경우도 많습니다. 해로운 흔적의 예시는 더 찾기 쉽습니다. 몇 배는 더 많을 겁니다. 당장 위에서 든 이로운 흔적의 경우들을 뒤집기만 해도 해로운 흔적의 예시가 됩니다. 근육은 쓰지 않으면 퇴화합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쉽습니다. 외면당한 이들은 점차 궁핍해져서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거시적인 수준의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대개 되돌리기에 이미 늦은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누적되어 빚어진 흔적이니만큼 되돌리기 위해 그만큼 긴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데다가, 이미 습관이 고착화된 탓에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행동에 결과가 뒤따름을 늘 염두에 두고 처신에 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잘 살아간다면, 미래는 10년 뒤에도 이제 막 오픈한 헬스장처럼 반짝거릴 것입니다. 그 반대의 비유는, 굳이 하지 않겠습니다.
2022년 10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