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의 경계에는, 모든 죽음을 앞둔 이들이 거쳐 지나가야만 하는 검문소가 있다.
“다 됐어요. 들어가시면 돼요.”
“네, 수고하세요.”
아이샤는 그곳 검문소를 지키는 검문 요원이다.
“다음 분.”
아이샤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들여보내기에 앞서, 생전 그들의 인적사항과 사망한 경위를 파악하는 일이다.
“다음 분!”
보통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죽은 자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꽤 빨리 납득한다. 그들이 검문소에 오기 전에 만나는 저승의 직원들, 저승사자를 비롯한 현장 요원들, 검문소 대합실의 안내 요원들이 충분히 상황 설명을 해 주는 덕분이다.
“다음 분 들어오시라니까요!”
그러나 가끔은, 검문소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안내 요원들의 안내를 따르지 않거나 검문소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현한다.
“또야? 젠장할.”
아이샤는 두 팔을 들어 올렸다가 서류가 산더미 같이 쌓인 책상 위로 한 번 내리쳤다. 그리고는 두 손을 지렛대 삼아 벌떡 일어섰다. 도대체 뭐 하는 작자이길래 이렇게까지 시간을 끄는 건지. 아이샤는 직접 검문소 밖 대합실로 나가 그 낯짝을 좀 보고, 강제로라도 끌고 들어 올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이샤가 막 검문소를 나서려는 찰나, 그제야 상황 통제에 성공한 안내 요원들이 그 ‘작자’를 붙들고 검문소로 들어왔다.
망자의 얼굴을 보니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갔다. 그는 서른 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여자였다. 보아하니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 못내 한스러운 모양이었다.
여자는 강제로 끌려 들어온 것 치고는 의외로 큰 저항 없이 아이샤의 앞으로 와 앉았다. 그가 태도를 고치기로 한 것이면 아이샤도 모질게 굴 필요는 없었다. 아이샤는 화를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다시 자리에 앉아 여자를 마주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씀하세요."
"..."
여자는 말이 없었다.
"저기요?"
"…"
그러면 그렇지. 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었다.
“이봐요, 이럴 시간 없습니다."
아이샤는 눈짓으로 여자가 끌려 들어온 이승 쪽 검문소 문을 가리켰다. 문에 난 조그만 창 밖 대합실에는 수 백 명의 망자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줄지어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는 아이샤가 눈짓한 곳을 잠깐 보고는, 그제야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폐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고 나지막이 말했다.
"마리아 로페즈입니다. 스물여덟 살...이었어요."
"국적은요?"
“멕시코예요."
한 번 입을 연 마리아는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아이샤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순조로운 전개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마지막 질문 하나만 남겨 둔 상황에서 마리아는 다시 한번 대답을 피하기 시작했다.
"좋아요. 에... 나머진 다 됐고, 마지막으로 사망 경위. 자살인가요? 타살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사고사?"
"..."
마리아는 연신 대합실 쪽을 돌아볼 뿐 말이 없었다. 답답한 사람 같으니라고. 그가 그러는 이유야 뻔했다. 허구한 날 이제 막 죽은 이들을 상대해 온 아이샤는 그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샤의 ‘공무 집행’을 방해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로페즈 양?”
"네?"
“앞에서 저승 입장 절차 설명 들으신 거 맞나요?"
마리아는 잠깐 망설이더니 이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들었어요."
"좋아요. 그럼 설명 들으신 대로 이제 죽은 몸이시구요, 여기까지 오셨으면 이승으로 돌아갈 기회는 없습니다. 여기서 계속 이렇게 시간을 끌어 봐야 서로 피곤하기만 하다는 얘기예요. 얼른 서류를 마무리하고 들어가시죠."
마리아는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두 팔로 머리를 싸맸다. 그러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이샤는 너무 낙심하지 말라느니, 저승은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다느니 하는 말로 그를 위로하고 설득하려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마리아는 더 이상 남은 눈물이 없을 만큼 눈물을 쏟아 낸 후에야 진정을 했고,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수술을 받았어요. 왜냐면...”
“그렇게 자세히까지는 필요 없구요. 수술을 받다가 죽은 거면 병으로 죽었다는 얘기죠?”
“네, 그렇긴 한데…”
아이샤는 왼손 검지를 세워 마리아의 코 앞에 들이대는 것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이미 몇 분이나 지체한 마당에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검문소에서는 세부적인 것까지는 필요가 없어요. 저승에 들어가면 또 담당자가 있으니까요. 자세한 얘기는 그 사람한테 하세요.”
아이샤는 서류의 마지막 줄 빈칸에 '병사-수술 중 사망'이라고 휘갈겨 쓴 후, 그 옆에 검문 절차를 마쳤음을 의미하는 도장을 찍었다.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
“로페즈 양? 이제 들어가시라니까요. 저승으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휴게실이 있으니 거기서 좀 쉬어 가세요. 시장하시다면 다과도 있으니 그것도 좀 드시고요.”
마리아는 우물쭈물 앉아 있을 뿐, 일어나려는 기색이 없었다. 겨우 가다듬은 마음 한 구석에서 짜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생각인 건지. 그렇게 시간을 한참이나 더 끈 후에야 그가 꺼낸 말은 가관이었다.
"저, 혹시 괜찮다면... 여기에 좀 더 있어도 되나요?"
“여기요? 검문소요?”
마리아는 고개를 한 번 가로젓고는 턱짓으로 자신이 들어온 이승 쪽 문을 가리켰다. 이승의 영역, 대합실에서 좀 더 머물겠다는 이야기였다. 아이샤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주먹으로 거칠게 책상을 한 번 내리쳤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이마를 한 번 쓸어 올리며 크게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불만을 표했다.
"마리아 로페즈 양! 이거 정말 말이 안 통하는 분이시네! 더 있어봐야 달라질 것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죽은 건 죽은 거예요.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법은 없어요. 살아 계실 적에 들으셨던 이야기들, 저승을 체험하고 왔니 어쩌니 하는 말들은 전부 거짓말이라구요."
"..."
아이샤의 날 선 비난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아이샤의 얼굴과 대합실 쪽을 번갈아 볼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일어나려는 기색도 없었다. 그의 고집에 아이샤는 마침내 백기를 들고 말았다. 물론 이미 검문을 마친 사람을 다시 대합실로 돌려보내는 것은 원칙 상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원칙을 지킨답시고 제 시간 내에 오늘 치 검문을 마치지 못하는 일은 더더욱 피해야 했다.
"뭐... 알아서 하세요. 대신 잠깐만입니다.“
”아아, 고맙습니다! “
마리아는 아이샤를 향해 연신 꾸벅이며 감사를 표했다. 아이샤는 그런 마리아를 향해 손을 휘저으며 빨리 검문소를 비워 줄 것을 요구했다.
”자, 다음 분! 빨리!"
"네, 다 됐습니다. 이제 들어가시죠."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아이샤는 그날의 마지막 망자에 대한 검문을 마칠 수 있었다. 대합실은 텅 비었다. 이 시간 이후로 죽는 이들은, 내일 아침 검문소의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고마워요. 늦게까지 수고 많으시네요."
"뭘요. 이걸로 저도 퇴근이네요."
"아직 한 분 더 남아 계시는 것 같은데요?"
"네? 아, 저분은..."
마리아 로페즈였다. 그는 마지막 망자가 검문을 마치고 저승에 들어가는 지금 순간까지 대합실을 지키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나 보니, 가만히 서서 이승으로 이어진 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미련한 사람 같으니라고. 백날 기다려 봐야 이승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이샤는 작성한 서류들을 정리하고, 도장 뚜껑을 닫아 금고에 넣고, 검문소의 전등을 껐다. 그리고 대합실로 나섰다. 마리아는 아이샤가 검문소 밖으로 걸어 나오는 발소리를 듣고 아이샤 쪽을 돌아보았다. 하루 종일 기다려 줬으면 충분하다. 이제는 마리아를 들여보내야 할 때이다. 아이샤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로페즈 양. 하루 내내 머물게 해 주었으면 충분하죠? “
"..."
"이것 보세요. 이제 검문소는 끝났고, 밤 동안은 대합실도 불을 꺼 둡니다. 들어가셔야 해요.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
"..."
"마리아 로페즈 양!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여기 계신다고 달라질 게 없어요! 제가 여기서 십 년이 넘게 일하고 있지만, 여기까지 온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아이샤는 대합실의 왼쪽 천장을 향해 리모컨을 높이 들고 과장된 동작으로 소등 버튼들을 누르기 시작했다. 대합실 왼쪽의 전등들이 차례차례 꺼졌다.
마리아는 아이샤를 보다 말고 대합실의 왼편으로 시선을 옮겨 어두워진 공간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몸을 돌려 아이샤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아이샤는 자신이 퇴근할 때 사용하는 쪽문을 열고 마리아를 기다렸다. 충분히 가까워지자 마리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눈가는 여전히 촉촉했지만, 검문소 안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때보다는 어딘가 기분이 풀린 듯해 보였다. 온종일을 그러고 있었으니 마음이 좀 누그러든 모양-이라고 아이샤는 생각했다.
마리아는 더 이상은 떼쓰거나 저항하는 일 없이 순순히 쪽문을 지나 저승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도 두어 발자국 쯤 더 가서는 아이샤 쪽을 돌아보았다.
"검문원 님, 혹시 저승에 또 다른 입구가 있나요?"
"없어요. 그건 왜요?"
아이샤는 피곤한 나머지 마리아의 질문에 건성으로 답했다. 그러면서 대합실의 오른쪽 천장의 전등들까지 끄고, 쪽문도 잠갔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 순간, 아이샤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리아가 갑자기 목놓아 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눈으로는 연신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입꼬리는 귀에 걸릴 만큼이나 크게 웃고 있었다. 기뻐서인지, 슬퍼서인지도 알 수 없고,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도 모를 그 황당한 모습에, 아이샤는 한동안 마리아를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는 한참 후에야 울음을 멈추었다. 이제 그의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참, 검문원 님. 제가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어요."
"뭔데요?"
"제가 받은 수술은 제왕절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