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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Feb 01. 2022

그렇게 엄마는 장녀가 되었다

 우리 엄마는 1961년 ‘경북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에서 태어났다. 주민등록번호는 ‘65’로 시작한다. 엄마가 어렸을 땐 돌을 채 넘기지 못하는 아기들이 많았다. 아기가 태어나 2~3년 동안 무탈하게 자라면 그제야 출생 신고를 했다. 우리 아버지도 실제 나이와 주민등록증 나이가 다르다. 이모도 그렇고 삼촌도 마찬가지다. 친구들 부모님도 태어난 연도와 출생 신고 연도가 다른 분들이 많다. 아마 똑같은 이유인 것 같다. 다행히 우리 엄마는 건강하게 자랐다. 덕분에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엄마는 5남매 중 장녀다. 엄마 밑으로 남동생 두 명, 여동생 두 명이 있다. 나에게 삼촌, 이모인 엄마의 동생들이다. 엄마가 어린 시절엔 엄마는 장녀가 아니었다. 약수터 아랫집 박 씨네 막내였다. 오빠 둘과 언니가 있었다. 큰 오빠는 엄마와 일곱 살, 둘째 오빠는 다섯 살 터울이 났다. 언니는 두 살 차이였다. 엄마의 오빠와 언니는 각자 세 살을 넘겼을 때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할아버지는 장남과 차남을 보며 든든해했다. 딸도 둘이니 집안일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그랬다. 자식 넷을 낳았으니 이제는 건강하게 키울 일만 남았다. 약수터 아랫집엔 행복이 가득했다.     

 엄마의 큰 오빠가 국민학교 입학을 몇 달 앞둔 날이었다. 갑자기 열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이불을 겹겹이 둘렀지만 오한은 가시지 않고 이불만 적셨다. 할머니는 누워있는 아들의 땀을 밤새 닦아냈다. 할아버지는 약을 사러 읍내에 다녀왔다. 집안은 난리가 났다. 약을 먹였지만 차도는 없었다. 약 한 모금을 마시면 약을 토했고 위액까지 쏟아냈다. 그렇게 삼일 뒤 엄마의 큰 오빠는 국민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고 생을 달리했다.


 둘째 오빠는 잔병치레가 많았다. 할머니는 몸에 좋다는 음식을 장남보다 차남에게 많이 챙겨줬다. 겨울엔 꽁꽁 언 개울을 깨고 개구리를 잡아 고아 먹였다. 고깃국을 끓이면 할아버지보다 둘째 아들 국그릇에 고기를 더 담았다. 할머니는 지극정성을 쏟았지만 안타까운 일은 또 찾아왔다. 둘째 아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일어나지 못했다. 배가 너무 아프다며 방바닥을 뒹굴었다. 대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큰 아들이 떠나고 몇 달 뒤, 둘째 아들도 세상을 떠났다.

 엄마의 어린 시절 기억엔 오빠들은 없었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언니만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의 언니는 엄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같이 아장아장 걸었고 밭에서 흙장난을 했다. ‘언니’라는 발음이 어려워 언니를 ‘안니’라 부르며 졸졸 따랐다. 동네에서 몇 안 되는 ‘소녀’라 엄마와 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야속하게도 언니는 이름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았다. 오빠들처럼 언니도 국민학교를 가지 못하고 조졸했다.


 할머니는 한번씩 떠나보낸 자식들 꿈을 꿨다. 엄마의 오빠, 언니가 마당에서 뛰노는 꿈이었다. 한참을 뛰 놀던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달려와 말했다.


 “엄마, 춥다. 너무 추워.”


 할머니는 부은 눈으로 일어났다. 아이들이 꿈속에서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침 일찍 장에 간 할머니는 남자 아이, 여자 아이 옷을 여러 벌 사 왔다. 자식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가서 옷을 불태웠다. 할머니 말로는 그걸 ‘치댄다’고 표현했다. 고인이 입던 옷이나 신발을 불태우면 그 사람들이 물건을 받는다고 한다. 먼저 보낸 자식들이 춥다고 했다. 할머니는 가슴에 묻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겨울옷을 입혀줬다.

 가끔 할머니는 채소밭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아니 자주 그랬다. 그럴 때면 엄마는 할머니의 등을 껴안고 따라 울었다. 울고 있는 딸을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더 큰 소리로 통곡했다. 그때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그냥 할머니가 우니까 눈물이 났다고 한다. 엄마를 껴안은 할머니는 매번 이런 말을 했다.     


“아이고 불쌍해, 불쌍해.”     


 너무 일찍 떠나버린 아이들이 불쌍한 건지, 자식을 앞세운 자신의 삶이 불쌍하다는 것일까? 오빠 둘을 보내고 언니까지 잃은 막내가 불쌍해서일까? 할머니는 유독 작은 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렇게 엄마는 장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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