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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Feb 06. 2022

가장 오래된 기억

 나는 귤을 참 좋아한다. 한 박스가 이틀을 넘기지 않는다. TV를 보며 먹다 보면 탁자 주변엔 귤껍질만 남아있다. 한 소쿠리 담아왔는데 그 많은 걸 다 먹어 치운다. 먹고 나면 손톱 밑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귤은 이렇게 항상 흔적을 남긴다. 나의 귤 사랑은 어린 시절에도 여전했다. 조그마한 손으로 껍질을 벗겨냈다. 손으로 안 되면 입으로 물어뜯었다. 어떻게든 귤을 먹고야 말았다. 덕분에 손톱은 겨울만 되면 노랗게 변해있었다.

 

 귤은 나에게 뜻깊은 과일이다. 최애 과일인 이유도 있지만 엄마와 함께한 ‘가장 오래된 기억’에 귤이 있다. 내가 유치원도 가기 전이다. 아버지는 일터에 나가셨고 동생은 아장아장 걸을 때다. 엄마는 집에서 나와 동생을 보살폈다. 저녁시간이 되면 엄마는 바빠졌다. 아버지와 우리가 먹을 저녁 준비를 해야 했다. 그때는 마트나 편의점이 가까이 있지 않았다. 배달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와 음식 재료를 사야 했다. 엄마는 누워있던 동생을 등에 둘러업고 포대기로 묶었다.


 “엄마, 시장 갔다 금방 올게, 잘 기다리고 있어.”

 문 앞에 선 엄마를 보며 나는 울기 시작했다.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이 싫었다. 너무 무서웠다. 단칸방에 아들을 홀로 둬야 하는 엄마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시장으로 갔다. 아직도 기억난다. 엄마가 내 손을 잡는 힘이 평소보다 강했다. 손이 너무 아팠다. 시장에 사람이 정말 많았다. 아들의 손을 놓으면 잃어버릴 까 봐 유독 꽉 잡고 있었다. 나는 시장 구경을 하며 걷다 보니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럴수록 엄마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등에는 동생이 업혀있다. 한 손에는 시장바구니, 다른 한 손으론 내 손을 잡았다. 힘든 장보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는 시장 보는 걸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녹초가 됐다. 아이 둘을 데리고 장보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집도 높은 곳에 있어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야 했다. 장바구니를 부엌에 내려놓고 동생을 방에 눕혔다. 엄마는 부엌에서 내 손을 씻겨줬는데 엄마 얼굴에 땀이 맺힌 걸 봤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간 나는 누워 뒹굴었고 엄마는 구석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날 이후 나는 시장에 따라가지 못했다. 엄마는 동생만 업고 시장에 갔다. 같이 가자고 떼쓰는 나를 떼놓은 방법은 무엇일까? 엄마의 육아 비법은 ‘귤’이었다. 시장 갈 시간이 되면 엄마는 귤 내 댓 개를 소쿠리에 담아 나에게 내밀었다.


“동생이랑 시장 갔다 올 거야, 귤 먹으면서 있을 수 있지?”

 샛노란 귤을 받아 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머리를 쓰다듬고 엄마는 동생을 업고 시장으로 향했다. 소쿠리를 다리사이에 끼우고 옹골차게 귤을 까먹었다. 야물지 않은 귤만 골라서 껍질을 벗겼다. 단단한 귤을 벗기기엔 내 손이 너무 작았고 힘도 없었다. 단단한 귤은 먹지 않고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공처럼 굴리며 가지고 놀았다. 가끔 벽에 던지기도 했는데 귤이 터지며 벽지가 더러워진 적이 있다. 집에 돌아온 엄마가 먹는 걸로 장난치는 거 아니라며 혼을 냈다. 귤은 나에게 간식이자 장난감으로 제격이었다. 집에 혼자 있어도 무섭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아이고 귤 다 먹었네,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귤을 다 먹으면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왔다. 가득히 쌓인 귤껍질과 노랗게 물든 내 손톱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 없이도 울지 않고 잘 있었다는 칭찬이 담긴 웃음이었다. 엄마는 나를 부엌으로 데려가 손을 씻겨줬다. 손톱 밑까지 꼼꼼하게 씻었지만 노란 물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와 손톱 냄새를 맡으면 귤 냄새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단칸방에서 귤을 까먹으며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내가 TV롤 보며 귤을 먹고 있으면 그때 이야기를 한다. 손이 귤보다 작았는데 이제는 귤보다 훨씬 크다. 포대기에 싸여 시장에 갔던 동생은 얼마 전 독립을 했다. 나는 귤 없이도 혼자 집에 있을 수도 있고, 더 이상 귤을 벽에 던지지 않는다. 단칸방에 살던 우리 가족은 방 세 개짜리 집에 산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여전히 나는 귤을 무척 좋아한다. 먹고 나면 노랗게 물드는 손톱도 그대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도 여전하다. 아들 손에 귤을 쥐어주고 시장에 갔던 기억이 떠오르는 엄마처럼, 나도 엄마가 귤을 주던 기억이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때 기억처럼, 엄마도 항상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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