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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Feb 10. 2022

우리 엄마의 직업은...

 주부가 아니다. 엄마는 식당에서 일했다. 나는 가정통신문에 엄마 직업을 '식당'이라 썼다. 그걸 본 엄마는 지우개로 지웠다. 그 위에 반듯하게 ‘주부’라고 적었다. 학창 시절, 새 학기 첫 시간에 항상 가정통신문을 나눠줬다. 엄마가 식당을 지운 이후부터 나는 부모님 직업을 쓰는 칸에 아버지는 ‘회사원’, 엄마는 ‘주부’라고 했다.


 내가 아는 엄마의 직업만 해도 여러 가지다. 막내 이모에게 들었던 엄마 첫 번째 직업은 봉제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는 일이었다. 일찍이 고향을 떠난 엄마는 부산의 봉제공장에 취업했다.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서였다. 큰삼촌 학비, 이모들 용돈 그리고 가족 생활비까지 엄마 손을 거쳤다. 엄마가 공장에서 번 돈은 여섯 식구에게 큰 도움을 줬다.

 부산에 돈 벌러 간 엄마는 일 년에 두 번 집에 왔다. 설날과 추석이다. 작은 이모는 오랜만에 본 큰언니를 부여잡고 울었다. 막내 삼촌은 엄마 손에 들려있는 옷과 과자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엄마를 반겼다. 엄마도 동생들을 보고 행복해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타향에서 홀로 지내는 딸이 오면 몸에 좋은 약을 지어 먹였다. 딸이 부산으로 떠나면 할아버지는 딸이 있던 작은방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결혼과 출산을 한 엄마는 공장일을 그만뒀다. 봉제공장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었다. 집에서 나를 키워해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낚시 줄에 바늘과 무게추를 연결하는 일이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엄마의 첫 번째 직업이다. 꽤나 오래 했다. 내가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탁자에 낚시 줄 한 무더기와 갈고리 모양 바늘이 쌓여있었다. 엄마는 탁자를 구석에 밀어 넣고 간식을 줬다. 간식을 먹은 나는 단잠에 빠졌다. 그 사이 엄마는 멈춘 일을 다시 시작했다. 가끔 탁자 밑에 피 묻은 휴지가 있고 엄마 손엔 밴드가 붙어있었다. 바늘에 찔려가며 일을 했다.

 나와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돈 들어갈 곳이 많았다. 재택 아르바이트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엄마는 식당일을 시작했다. 낚시 줄 일보다 급여가 많았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집을 비울 수 있었다. 그래도 엄마가 없는 건 쓸쓸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가 일하는 식당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받을 때도 있었지만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받을 때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우리 엄마 있어요?”


 “그래 아들, 잠시만 기다려. 엄마 바꿔줄게.”


 주인아주머니도 엄마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집에 아이들을 두고 식당에서 일을 했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나와 동생이 식당에 전화하면 항상 따뜻하게 받아줬다. 엄마 목소리를 들은 나는 간식을 꺼내 먹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엄마는 아들 목소리를 듣고 힘든 식당일을 버텨냈다.


 식당이 있던 곳이 재개발되면서 엄마는 일을 그만뒀다. 체력적인 부담도 찾아왔다. 배달 가다가 넘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어깨를 살짝 다쳤는데 점점 아파오더니 무거운 걸 잘 들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한동안 일을 쉬며 병원을 다녔다. 엄마가 좀 더 쉬길 바랐지만 식당일 보다 상대적으로 움직임 적은 봉제공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엄마는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미싱을 돌리고 있다.

 엄마는 왜 ‘주부’라고 썼을까? 훗날 엄마에게 물어봤다. “자식들이 부끄러워할까 봐” 그랬다고 한다. 나는 친구들에게 엄마가 식당에서 일할 땐 식당에서 일한다고 했다. 봉제공장에서 일할 땐 봉제공장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그게 왜 창피한지 모르겠다. 뻘쭘한 상황이다. 우리 엄마는 별 걱정을 했다.


 돌이켜 보면 엄마는, 엄마가 하고 싶은 직업을 선택하지 못했다. 타향살이를 시작한 봉제공장부터 식당 등 모두 누군가를 위한 선택이었다. 단 한 가지 직업은 하고 싶어서 했다.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란 직업은 참 혹독하고 고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선택에 감사드린다. 최고의 복지와 노후 안정을 보장해야겠다. 정년 없는 최고의 직업을 선택한 것을 환영한다. 이번 명절 엄마에게 지급할 성과급을 두둑이 봉투에 담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말도 함께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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