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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Feb 21. 2022

엄마, 아프지마요

 가끔 기분 나쁜 꿈을 꾼다. 엄마가 화장실에 쓰러져 있거나, 아버지가 크게 다치는 꿈이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곧장 방문을 열고 나간다. 엄마와 아버지는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침대를 벗어나는 순간 꿈이란 걸 알지만 두 분의 모습을 봐야 안도감이 든다. 엄마의 암 수술 소식을 들었던 날도 나쁜 꿈을 꾼 아침 같았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는 전화를 걸면 항상 용건만 간단히 말한다. 그날은 유독 아버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픈 데는 없나? 군대에서 다치면 안 된다. 몸 관리 잘해라.”     


 “네, 없어요. 아버지랑 엄마는 괜찮으세요?”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이상하게 뜸을 들였다. 이윽고 엄마 소식을 전했다. 몸이 안 좋아서 수술을 하는데, ‘자궁암’이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고만 있었다. 아버지가 말한 ‘암 수술’이란 단어가 가슴을 긁었다. 기분 나쁜 꿈을 꾼 것 같았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방문을 열고 엄마를 보고 싶었다. 꿈이었으면 좋겠지만 꿈이 아니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초기라서 간단한 수술이다. 엄마가 걱정한다고 말하지 말라했는데 큰 수술이 아니니까 괜찮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눈물이 무언가에 짓이겨 나왔다. 수술 날짜, 병원을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정기휴가가 남아있어 수술 일에 맞춰 휴가를 나간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나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전화를 끊고 곧장 중대장실로 달려갔다. 중대장은 사정을 듣고 수술 날짜에 맞춰 휴가를 승인했다.


 부대 밖으로 나와서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저번 휴가 때 봤던 엄마 모습과 사뭇 달랐다. 집에서 나를 맞이했던 엄마는 병상에 누워서 나를 반겼다. 염색 시기를 놓친 머리카락은 뿌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한 소리 했다. ‘군대에 있는 아들한테 왜 말한 거냐, 간단한 수술인데 유난 떤다’며 아버지를 나무랐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엄마 눈엔 다 보였다. 나는 툭 건들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눈을 하고 있었다.


 “휴가 나왔는데 미안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줘야 하는데...”

 그 말을 듣고 결국 눈물을 흘렸다. 병상에 누워서도, 암 수술을 앞두고도 아들 걱정이었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가 큰 병에 걸린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엄마 속을 썩였던 지난날이 머리를 지나갔다. 제발 큰일 없길, 엄마가 다시 건강해 지길 기도하고 반성했다. 이틀 뒤 엄마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이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나와 아버지는 수술실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내 생에 가장 긴 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조바심이 찾아왔다. 그 후 30분이 더 지났다. 그제야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왔다. 수술은 한 시간이었고, 의식을 찾는데 30분이 더 걸린 것이었다.


 나와 아버지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손을 잡으려 했는데 이미 아버지가 엄마 손을 잡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아버지 모습 중 가장 달콤했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물었다.


 “좀 어떻노, 괜찮나?”     


 곧이어 나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 많이 아파?”     


 엄마는 누워서 아버지와 나를 바라봤다. 부자의 쏟아지는 질문 공세를 듣던 엄마는 천천히 우리에게 말했다.

 “아휴 당연하지, 생살을 잘라냈는데...”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 모습을 보고 엄마도 미소 지었다. 역시 우리 엄마였다. 아들이 걱정하지 않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으면 마음이 아팠을 텐데 쿨하게 ‘아프다’고 하는 엄마를 보니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아버지는 엄마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생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회복실 가는 동안 아버지는 엄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


 며칠 전 엄마와 병원을 찾았다. 엄마의 정기 검진이 있었다. 수술 이후 6개월마다 검사를 받았다. 저번 검사 때 아무 이상 없다고 했지만 갈 때마다 걱정된다. 반면 엄마는 태연하다. 누가 보면 내가 큰 수술을 한 것처럼 보일 거다. 다행히 엄마는 이번에도 건강하다. 기분 좋은 꿈을 꾼 것 같다. 엄마가 건강하고 또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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