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에서 시작된 탄소중립 혁명

by GLEC글렉

여의도에서 울린 변화의 첫 신호

2024년 12월 17일 오전, 국회의사당 중앙홀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다. 여야 지도부가 한자리에 모인 것도 특별했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선언하려는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마이크 앞에 서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공공부문보다 10년 앞선 2035년을 목표로 삼고 국회가 탄소중립의 마중물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회가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의 시작이었다. 정부의 2050년 목표보다 15년이나 앞선, 그야말로 파격적인 도전장이었다.


숫자로 읽는 국회의 현실

우 의장이 공개한 데이터는 놀라웠다. 국회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2만 2천 871톤. 만약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2035년에는 2만 4천 497톤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배출원의 단순함이었다. 전체 배출량의 84퍼센트가 전기 사용에서, 15퍼센트가 냉난방용 연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합쳐서 99퍼센트에 달하는 명확한 구조였다.


"국회는 비교적 적은 배출량과 단순한 배출원을 가진 만큼 과감한 속도전이 가능하다"는 우 의장의 설명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였다. 복잡한 산업공정이나 다양한 배출원을 가진 다른 기관들과는 달리, 국회는 명확한 타겟을 가지고 있었다.


네 개의 열쇠로 여는 탄소중립

국회가 제시한 전략은 네 가지였다. 먼저 그린리모델링을 통한 에너지 효율 개선이다. 노후된 국회의사당 본관은 지붕과 외벽의 단열을 보강해 에너지 효율을 33퍼센트 개선한다. 국회도서관도 창호교체 등을 통해 19퍼센트의 효율 개선을 목표로 한다.


두 번째는 화석연료와의 완전한 결별이다. 기존의 가스히트펌프와 LNG보일러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모든 설비를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구내식당의 조리용 LNG는 감축이 어려워 나무 심기나 탄소 크레딧 구입 등 외부 감축 사업으로 상쇄할 예정이다.


세 번째가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바로 자체 재생에너지 조달 시스템 구축이다. 국회의사당 지붕과 주차장, 가로등 등에 총 3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한다. 부족한 전력은 햇빛발전협동조합 등 시민참여형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하는 PPA 방식으로 보완한다.


마지막은 교통수단의 완전한 전환이다. 2030년까지 국회 소유 차량을 100퍼센트 무공해차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시민과 함께하는 에너지 혁명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시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직접 구매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전력을 사는 것을 넘어 시민들의 재생에너지 투자를 활성화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에너지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국회가 햇빛발전협동조합과 직접 계약을 맺어 전력을 구매한다는 것은 상당히 혁신적인 접근이다.


3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시설이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은 연간 약 4천 500메가와트시. 이는 일반 가정 약 1천 250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작은 것 같지만 CO2 연간 2천 250톤 감축 효과를 가져온다.


정치를 넘어선 합의

이날 선언식에는 여야 할 것 없이 모든 정당 지도부가 참석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직무대행은 "탄소중립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며 "국회가 앞장서서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조국혁신당, 진보당, 개혁신당 등 모든 정당이 한목소리를 냈다.


이런 초당적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기후변화가 더 이상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는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탄소중립은 미래세대에 대한 현세대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정치권 전반에 자리 잡았다.


상징을 넘어 실천으로

국회의 2035 탄소중립 선언이 단순한 상징적 의미를 넘어서는 이유는 구체적인 중간목표 때문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70퍼센트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조달 비율을 80퍼센트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달성 가능한 현실적 목표이면서도 충분히 도전적인 수준이다.


우 의장이 언급한 세종의사당 계획도 흥미롭다. 새로 건립될 세종의사당은 RE100, 즉 재생에너지 100퍼센트 사용을 실현하는 건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회의 탄소중립 의지가 일회성이 아니라 미래 인프라 구축에까지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은 시작, 큰 변화

국회 한 기관의 탄소중립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입법부가 먼저 실천하는 모습은 다른 공공기관들에게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또한 민간기업들에게도 탄소중립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낸다.


무엇보다 시민참여형 재생에너지 구매 방식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개인이나 지역사회가 직접 재생에너지 사업에 참여하고, 그 전력을 공공기관이 구매하는 구조는 에너지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미래를 여는 선택

물론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초기 투자비용 조달, 기술적 안정성 확보, 기존 시설과의 조화로운 통합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하지만 국회는 이미 첫걸음을 내디뎠다.


2035년 탄소중립. 이것이 실현된다면 국회는 단순히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미래를 실천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여의도에서 시작된 이 작은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국회의 도전은 이제 시작되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선언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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