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물류 업계에서 일하면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탄소세 때문에 우리 사업이 어떻게 될까요?" 유럽발 탄소세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지금, 정작 우리와 가장 가까운 중국, 일본, 한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같은 동북아시아 지역이지만 각국의 접근법은 정말 다르다. 마치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지만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2021년, 중국이 세계를 놀라게 한 발표가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가 배출권거래제를 런칭한다는 것이었다.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숫자로 보면 정말 압도적이다.
중국의 배출권거래제는 약 50억 톤의 CO2를 다룬다. 이는 글로벌 배출량의 5% 이상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참여 기업만 해도 2,000개가 넘는다. 시장 가격은 톤당 8-10달러 수준으로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2025년 4월, 중국이 또 한번 폭탄선언을 했다.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산업을 국가 ETS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추가로 1,500개 기업이 편입되고, 30억 톤의 CO2가 더해진다. 총 커버 배출량은 80억 톤으로 중국 총배출량의 60%에 달한다.
중국의 접근법은 독특하다. 절대적 총량 상한제가 아닌 '산출량 기반 할당' 방식을 택했다. 쉽게 말해, 기업이 많이 생산하면 더 많은 배출권을 준다는 뜻이다. "성장하면서 효율성을 개선하자"는 철학이 담겨 있다.
이런 거대한 변화가 우리 물류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다. 중국의 철강, 알루미늄 등 소재 산업에 탄소비용이 반영되면서 중국발 화물의 내재 탄소량이 증가하고 있다. EU CBAM에 대응하기 위한 데이터 체계도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
일본은 2023년 완전히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규제보다는 성장'이라는 철학 하에 'GX리그'라는 자발적 배출권거래제를 시작한 것이다.
GX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의 줄임말이다. 일본의 접근법은 정말 혁신적이다. 기업이 스스로 참여를 결정하고,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으며, 자체적으로 감축목표를 설정한다. 참여 기업에게는 자금 지원과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일본 정부는 20조 엔 규모의 GX 국채를 발행해서 10년간 지속적인 투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740개 기업 이상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이 정책의 매력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로드맵도 단계적이다. 현재부터 2032년까지는 자발적 거래를 통해 무상 할당 위주로 운영하고, 2033년부터는 발전 부문부터 유상할당을 도입해 점진적으로 다른 산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물류업계에 대한 지원도 구체적이다. 수소와 암모니아 연료 개발을 지원하고, 친환경 선박 건조에 보조금을 주며, 지속가능 항공연료인 SAF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체들의 저탄소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물류 파트너들에게도 친환경 요구사항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2015년부터 K-ETS를 운영하며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체계적인 배출권거래제를 구축했다. 10년 가까이 운영해온 경험이 있다 보니 상당히 안정적이다.
2024년 현재 K-ETS의 평균 경매가격은 톤당 약 7.6달러 수준이다. 총 누적 수익은 1.4조원에 달하고, 2024년에만 1,859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산업, 전력, 건물, 폐기물, 국내 항공 부문을 포괄하며 총 배출량의 약 70%를 커버한다.
한국의 혁신적인 점은 2022년 대폭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상위 10% 효율적 기업에 무상할당을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 개선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금융 중개업체 참여도 확대해서 시장 유동성을 증대시켰다.
2026년부터 시작되는 Phase 4에서는 더욱 엄격한 할당이 계획되어 있다. 국제 링크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고, 디지털 MRV 시스템도 고도화할 예정이다.
한국 물류업계의 대응도 적극적이다. HMM 등 대형 선사들이 친환경 선박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고, 그린 메탄올 연료 전환에 투자하고 있다. 부산항의 스마트 그린포트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SAF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이 세 나라의 정책을 비교해보면 정말 흥미롭다.
탄소가격부터 다르다. 중국은 톤당 8-10달러로 대규모지만 저가격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은 자발적 참여라 가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원 중심이다. 한국은 톤당 6-8달러로 중간 규모에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접근법도 완전히 다르다. 중국은 스케일과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거대한 시장 규모로 글로벌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산출량 기반으로 성장과 효율을 양립시키려 한다. 국가 주도의 톱다운 방식이다.
일본은 혁신과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자발적 참여로 기업 동기를 극대화하고, 막대한 투자로 기술혁신을 촉진한다. 민관협력의 상생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균형과 체계를 추구한다. 의무와 인센티브를 적절히 조합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체계적 운영을 한다. 단계적 강화로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이런 정책 차이가 역내 물류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먼저 공급망 재편 압력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의 탄소비용이 증가하면서 한·일 기업들이 대체 공급처를 모색하고 있다. 니어쇼어링 트렌드도 가속화되고 있다.
항만 간 경쟁 구도도 변하고 있다. 부산항, 상하이항, 도쿄항 사이에 그린 포트 경쟁력이 새로운 차별화 요소가 되고 있다.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하는 물류루트가 선호받기 시작했다.
반면 기술 협력은 확대되고 있다. 3국 간 수소 연료 공급망 구축, 탄소포집·저장 기술 공유, 디지털 MRV 표준화 추진 등 다양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탄소 데이터 비즈니스가 급성장하고 있다. 정확한 배출량 측정 서비스, 공급망 탄소발자국 추적, MRV 컨설팅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린 물류 솔루션 시장도 뜨겁다. 전기 트럭, 수소 트럭은 물론이고 친환경 포장재 개발, 경로 최적화 소프트웨어까지 다양한 솔루션이 주목받고 있다.
금융 상품도 혁신되고 있다. 그린 물류 펀드가 조성되고, 탄소크레딧 거래 플랫폼이 생기고, 지속가능금융 상품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도전과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 불일치다. 3국 간 서로 다른 기준 때문에 중복 규제로 인한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상호 인정 체계도 아직 부재한 상황이다.
기술 격차도 문제다. 중소기업의 기술 접근성은 여전히 한계가 있고, 투자 여력도 부족하다. 전문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2025년 이후 전망을 보면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중국은 Belt and Road 국가들로 ETS 모델을 확산시킬 것 같다. 디지털 위안화와 탄소거래를 연계하고, 글로벌 탄소시장의 가격 결정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GX 국채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아시아 친환경 기술 허브 지위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탄소중립 기술 수출도 확대될 것이다.
한국은 동북아 탄소시장 연계의 중개자 역할을 할 것 같다. K-뉴딜과 그린뉴딜을 연계해서 탄소중립 산업단지 모델을 수출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취해야 할 전략은 명확하다.
첫째, 다변화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각국별 맞춤형 접근법을 개발하고,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서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기술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3국 간 공동 R&D에 참여하고, 기술 표준화 논의를 선도하며, 베스트 프랙티스를 공유해야 한다.
셋째, 선제적 투자가 중요하다. 친환경 물류 인프라를 조기에 구축하고, 탄소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하며,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동북아시아 3강의 탄소정책은 각각의 독특한 철학과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압도적 스케일, 일본의 혁신적 지원, 한국의 균형잡힌 실용주의가 만나 역내에 역동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복잡성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의 창구이기도 하다. 각국의 정책을 깊이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들이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이다.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 하지만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다.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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