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의 탄소정책을 살펴본 후, 이번에는 태평양을 건너 북미 대륙으로 눈을 돌려보자. 미국과 캐나다의 탄소정책은 유럽이나 아시아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특히 연방제 국가의 특성상 지역별 다양성이 정말 흥미롭다.
미국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모자이크'다. 연방 차원의 통일된 탄소세가 없다는 게 가장 독특한 점이다. 대신 각 주별로, 지역별로 서로 다른 탄소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다양성이 오히려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연방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2022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투자법인 IRA(인플레이션 감축법)가 통과됐다. 3,690억 달러 규모의 청정에너지 투자가 결정됐고, 메탄 배출세도 톤당 900달러로 정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종합적인 탄소세는 없다.
그런데 2025년 상원에서 흥미로운 법안이 발의됐다. Foreign Pollution Fee Act라는 이름의 대중국 탄소국경세 법안이다.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 중국산 제품에 탄소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이다. 연간 28억 달러 수익이 예상된다고 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이제 탄소 영역으로까지 번진 셈이다.
캘리포니아는 정말 특별하다. 세계 5위 경제규모에 걸맞은 야심찬 탄소정책을 펼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Cap-and-Trade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5년 현재 캘리포니아의 탄소가격은 톤당 25-30달러 수준이다. 전력, 산업, 건물, 교통 부문의 85%를 커버한다. 2030년 재승인 논의가 진행 중인데, 수조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캘리포니아가 물류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Long Beach항과 LA항이 세계 최대 친환경 항만으로 전환되고 있다. 2030년까지 제로 에미션 트럭만 항만에 출입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자동화 터미널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고, 연간 화물 처리량이 2,000만 TEU를 넘는다.
혁신적인 규제들도 눈에 띈다. Advanced Clean Trucks Rule은 2024년부터 전기트럭 판매를 의무화한다. Low Carbon Fuel Standard는 연료 탄소집약도를 20% 감축하는 게 목표다. Shore Power 의무화로 정박 중인 선박들이 육전 전원을 사용해야 한다.
실제 기업들의 대응도 발빠르다. 아마존은 캘리포니아 배송센터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했고, 전기 배송차량 10만 대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마지막 1마일 배송 탄소중립 달성이 목표다. 월마트는 캘리포니아 물류센터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전기 세미트럭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급업체들에게 탄소발자국 공개도 의무화했다.
미국 동부 연안에는 RGGI라는 흥미로운 시스템이 있다. Regional Greenhouse Gas Initiative의 줄임말로, 11개 주가 참여하는 미국 최초의 Cap-and-Trade 시스템이다.
참여 주는 코네티컷, 델라웨어, 메인,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뉴저지, 뉴욕, 펜실베이니아, 로드아일랜드, 버몬트이다. 연간 상한은 1억 5,188만 톤 CO2이고, 발전 부문 25MW 이상 화력발전소가 대상이다.
RGGI가 물류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직접적이다. 뉴욕 JFK공항은 2030년까지 탄소중립 공항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전기 지상지원장비로 100% 전환하고, SAF 공급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연간 6,300만 명의 승객을 처리하는 공항답게 영향력이 크다.
보스턴 항만도 스마트화가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트윈 기술로 항만 운영을 최적화하고, 자동화 크레인으로 에너지 효율을 30% 개선했다. 풍력 발전으로 항만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캐나다는 북미에서 가장 적극적인 탄소정책을 펼치고 있다. 2019년 전국 탄소세를 도입했는데, 이는 정말 대담한 결정이었다.
2025년 현재 캐나다의 탄소세는 65 CAD, 약 48달러/톤 수준이다. 2030년에는 170 CAD, 약 125달러/톤까지 올릴 계획이다. 연료,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전체에 적용된다.
캐나다의 탄소가격제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Carbon Fee and Dividend 시스템이라고 부르는데, 탄소세 수익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구조다. 대부분 가정이 탄소세보다 더 많은 리베이트를 받는다. 저소득층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주별 유연성도 인정한다. 연방 기준 이상이면 자체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다. 퀘벡은 캘리포니아와 연계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고, 브리티시컬럼비아는 독자적 저탄소연료기준을 적용한다.
캐나다 물류업계의 변화도 눈에 띈다. TransCanada Highway라는 대륙횡단 고속도로에 전기트럭 충전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바이오연료 의무혼합비율도 확대하고, 철도 화물운송 비중을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밴쿠버 항만은 북미 최대 친환경 크루즈 터미널을 갖추고 있다. 연안 전기 페리 네트워크도 확대하고, 목재 수출용 탄소중립 물류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북미의 탄소가격을 정리해보면 정말 다양하다. 캘리포니아는 25-30달러로 포괄적 Cap-and-Trade를 운영한다. 워싱턴주는 52-58달러로 높은 가격에 엄격한 규제를 적용한다. RGGI는 15-20달러로 발전 부문에 특화된 지역 협력 모델이다. 캐나다는 48달러 연방 가격으로 전국 통합을 이뤘다.
2025년 도입 예정인 미국의 대중국 탄소국경세는 글로벌 무역구조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
중국산 제품 영향도를 보면 철강은 중국에서 미국으로의 수출이 7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알루미늄은 대체 공급처로 캐나다와 호주가 부상하고 있다. 시멘트는 미국 내 생산이 20% 증가할 전망이다.
물류루트도 재편되고 있다. 태평양 항로에서 중국에서 미국 직항 화물량이 감소하고, 베트남과 멕시코 경유 루트가 증가하고 있다. 니어쇼어링 트렌드도 가속화되고 있다.
새로운 물류 허브들이 부상하고 있다. 멕시코 마킬라도라 지역이 급성장하고, 캐나다 밴쿠버가 중계 기지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베트남 하이퐁 항만의 화물량도 급증하고 있다.
북미 물류업계의 혁신 사례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아마존의 Climate Pledge 프로그램은 204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다. 리비안 전기트럭 10만 대를 주문했고, Prime Air 드론 배송으로 마지막 1마일을 혁신하고 있다. 패키징 최적화로 배송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UPS는 대체연료 차량을 확대하고 있다. 천연가스 트럭 9,000대를 운영하고, 전기 배송차량 1만 대를 도입했다. 바이오연료 사용도 확대하고 있다.
FedEx는 204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다. 전기 항공기 개발에 투자하고, 태양광 시설 1,000개소를 설치했다. 지속가능 포장재 100% 전환도 추진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물류 스타트업들도 주목할 만하다. Waymo Via는 고속도로 자율주행을 상용화했고, Aurora는 장거리 화물 자율운송을 담당한다. Kodiak Robotics는 텍사스-캘리포니아 루트를 운영하고 있다.
드론 배송 혁신도 눈에 띈다. Zipline은 의료용품 드론 배송을, Wing은 소형 패키지 배송 서비스를 한다. Amazon Prime Air는 상용화 준비를 완료했다.
친환경 연료 생태계도 성장하고 있다. SAF 분야에서 United Airlines는 2030년까지 SAF 50% 사용을 목표로 한다. Shell은 서부 연안 SAF 공급망을 구축하고, BP는 정제소 전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수소 인프라도 확장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수소고속도로는 200개 충전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Amazon-Plug Power는 물류센터에 수소 지게차를 도입했고, Toyota-Kenworth는 수소 트럭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북미 시장에는 특별한 기회들이 많다.
탄소크레딧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이 2024년 20억 달러에서 2030년 1,00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물류 부문 크레딧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린 파이낸싱도 혁신되고 있다. ESG 채권 시장에서 물류기업들의 그린 본드 발행이 급증하고 있다. 지속가능연계대출이 확산되고, 탄소회계 표준화도 진전되고 있다.
다만 정책 불확실성도 있다. 주정부와 연방정부 간 정책 갈등, 대선 주기에 따른 정책 변화 등이 변수다. 하지만 민간 주도 혁신은 지속되고 있다.
2025년 이후 전망을 보면 캘리포니아 효과가 확산될 것 같다. 뉴욕, 워싱턴주 등이 유사 정책을 도입하고, 자동차 배출기준이 전국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ZEV 의무화도 확대될 것이다.
미-중 탄소무역전쟁은 더욱 심화될 것 같다. 탄소덤핑 방지 조치가 강화되고, 공급망 탄소투명성이 의무화될 전망이다. 기술패권 경쟁도 심화될 것이다.
캐나다는 리더십을 확대할 것 같다. G7 탄소가격제 조율 역할을 하고, 북극항로를 친환경으로 개발하며, 청정기술 수출 강국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한국 기업들에게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지역별 맞춤 전략이 중요하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첨단기술 파트너십을, 동부 연안에서는 금융·서비스업 협력을, 캐나다에서는 자원·에너지 분야 진출을 고려해볼 만하다.
기술혁신 투자도 필수다. 자율주행·AI 물류 기술, 친환경 연료 솔루션, 탄소관리 플랫폼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규제 준비도 중요하다. Foreign Pollution Fee 대응체계, 탄소함량 인증 시스템, 공급망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
북미의 탄소정책은 통일성보다는 다양성, 규제보다는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야심찬 실험, RGGI의 협력 모델, 캐나다의 전국 통합 접근법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글로벌 물류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미-중 무역구조의 변화는 단순히 관세 문제를 넘어서 탄소국경세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물류업계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북미 시장의 다양성과 혁신성을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파도가 거세지만,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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