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측정하는 일에 대하여

by GLEC글렉

어느 차가운 겨울 아침, 사무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도로 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트럭들의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각각의 트럭이 내뿜는 하얀 배기가스가 추위와 맞닿아 더욱 진하게 피어올랐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저 보이지 않는 탄소들은 어디로 갈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정말 측정할 수 있을까.


물류와 운송산업에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이런 철학적인 질문들과 마주칠 때가 많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측정할 수 없다면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그리고 그 모든 노력이 정말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ESG 경영이라는 말을 듣지 않는 날이 없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이라는 단어를 슬로건처럼 외치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진정한 변화는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행동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은 물류업계가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 앞에서 어떻게 실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 내가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숫자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

물류업계에서 탄소배출량을 측정한다는 것은 마치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운송 차량이 소비하는 연료의 양, 창고에서 사용되는 전력량, 심지어 포장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배출량까지. 모든 조각들이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들어낸다.


예전에 한 물류 회사의 담당자와 면담을 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는 매년 연료비를 10% 절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탄소배출량을 물어보니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연료비 절약이 반드시 탄소배출 저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가 변동, 운송 거리의 변화, 화물량의 증감 등 수많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 정확한 숫자를 알고 있을까. 아니면 그럴싸한 추정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특히 다단계 공급망에서는 이런 복잡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유통업체에서 소매업체로,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까지 이르는 긴 여정 속에서 각 단계별로 발생하는 탄소배출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이런 복잡성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탄소배출량 측정을 뒤로 미루거나, 대략적인 추정치로 만족하곤 한다.


기술이 건네주는 희망의 손길

하지만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IoT 센서, 빅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같은 기술들이 물류업계의 탄소배출량 측정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운송회사에서 도입한 IoT 센서 시스템을 직접 체험해볼 기회가 있었다. 트럭에 부착된 작은 센서가 실시간으로 연료 소비량, 주행 거리, 심지어 운전자의 운전 패턴까지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 데이터들이 클라우드로 전송되어 AI가 최적의 운송 경로를 제안하고, 연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창고 관리 시스템이었다. 온도, 습도, 조명, 각종 장비의 가동 상태까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에너지 사용량을 최적화하는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같았다. 계절별, 시간대별로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욱 정밀한 에너지 관리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날 저녁,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들을 목격하며 새로운 희망을 느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숫자로 변환되고, 그 숫자들이 다시 행동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물류업계의 탄소배출 관리가 바로 그런 영역이다. 전체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모든 참여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최근에 만난 한 대형 유통업체 임원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그들은 협력업체들에게 단순히 탄소배출량 데이터 제출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함께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해 나가는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었다. 자체 개발한 탄소배출량 측정 도구를 무료로 제공하고, 정기적인 교육과 컨설팅까지 지원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리더십을 느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는 협력업체들이 많았어요." 그 임원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도 비용 절감 효과를 체감하게 되니까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고요." 결국 상생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협업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서로의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함께 개선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인다. 그리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더 큰 변화들이 가능해진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함께할 때 현실이 되는 순간들을 목격하며, 협력의 힘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새로운 길 위의 선택들

탄소배출을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친환경 운송수단을 도입하는 것이다. 전기 트럭, 수소 연료전지 차량, 바이오 연료 등 다양한 옵션들이 있지만, 각각은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봄, 한 물류회사의 전기 트럭 테스트 운행에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조용하고 깨끗한 운행에 감동했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제약들도 분명히 느꼈다. 충전 시간의 제약, 배터리 용량의 한계, 충전 인프라의 부족 등.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변화들을 목격하고 있다. 단거리 배송에는 전기 트럭을, 장거리 운송에는 수소나 바이오 연료를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접근법을 채택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완벽한 솔루션은 없지만, 각각의 특성을 살린 최적의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친환경 차량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 기존 운영 시스템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전기 트럭의 충전 시간을 고려한 배송 스케줄,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 기사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까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진정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지속가능한 변화를 위한 긴 호흡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일시적인 관심이나 유행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추진해야 하는 과제다. 그래서 데이터 기반의 지속적인 개선 프로세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에 구축된 여러 대시보드 시스템들을 보면서 놀라는 경우가 많다. 실시간으로 탄소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목표 대비 달성률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개선이 필요한 영역을 즉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들. 마치 기업의 탄소 건강 상태를 한눈에 보여주는 건강검진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활용하는 조직 문화다. 정기적인 검토 회의,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린 마음. 이런 문화적 토양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탄소중립은 마라톤과 같다. 단기간의 폭발적인 노력보다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작은 성취들을 축하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며, 함께 걸어갈 동반자들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약속

아무리 좋은 의도와 노력이 있어도, 그것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검증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반감된다. 물류업계의 탄소중립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인정받으려면 객관적인 검증과 인증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GHG 프로토콜이나 ISO 14083 같은 표준을 따르고, 제3자 검증을 받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CDP나 SBTi 같은 국제 이니셔티브 참여도 마찬가지다. 이런 플랫폼들을 통해 기업의 노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동종 업계의 우수 사례들을 학습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기업의 탄소배출량 검증 과정에 참여했을 때, 검증사들의 철저함에 놀랐다. 모든 데이터의 근거를 요구하고, 계산 방법의 적정성을 검토하며, 심지어 담당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부 프로세스의 신뢰성까지 확인했다. 번거롭고 까다로운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졌다.


투명성과 신뢰성. 이 두 가지가 확보되어야 물류업계의 탄소중립 노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릴 때

물류업계의 탄소중립 달성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친환경 물류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고, 탄소 효율적인 운영은 비용 절감 효과도 가져온다.


몇 달 전, 한 젊은 창업가를 만났다. 그는 "탄소 발자국이 적은 배송 서비스"를 핵심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며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소 이상주의적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많은 고객들이 그의 서비스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시대의 변화를 실감했다.


앞으로는 배송 속도와 비용뿐만 아니라 탄소 발자국도 서비스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탄소배출량 측정과 관리 능력을 갖춘 기업들이 미래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문제는 그 변화의 물결에 올라탈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서 우리 각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그 선택들이 모여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물류업계의 탄소중립 달성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이 그 미래를 결정한다. 측정하고, 관리하고, 개선하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변화의 여정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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