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D가 불어오는 물류업계, 그리고 우리가 보는 미래

by GLEC글렉

2025년 초, 사무실에서 마주한 한 통의 이메일이 내 하루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유럽연합의 새로운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 일명 CSRD가 본격 시행된다는 소식이었다. 물류업계에서 십여 년을 보낸 나에게 이 소식은 단순한 규제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전환점이었다.


처음 이 업계에 발을 들인 건 대학 졸업 후였다. 그때만 해도 물류란 단순히 물건을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트럭이 달리고, 선박이 항해하고, 비행기가 날아가면서 세상의 모든 상품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그 안에 숨어있는 복잡한 이야기들을 알게 된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CSRD라는 약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처음 제대로 이해했을 때, 나는 묘한 설렘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 이 차가운 용어 속에는 우리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담겨있었다. 지구 온도가 1도씩 오를 때마다, 우리가 운송하는 수많은 화물들이 만들어내는 탄소발자국이 얼마나 깊게 지구를 할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약 50,000개의 유럽 기업이 이 새로운 기준의 적용을 받는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숫자의 무게를 즉시 느낄 수 있었다. 그 중 상당수가 우리와 같은 물류, 운송, 유통 분야의 기업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자신들의 탄소발자국을 정확히 측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급망 전반에 걸친 환경 영향까지 보고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물류산업이 왜 이렇게 특별한 관심을 받는지는 명확했다. 매일 아침 사무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고속도로 위의 수많은 트럭들, 멀리서 들려오는 항공기 소음, 그리고 항구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크레인들.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지구 전체 탄소배출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환경적 비용도 함께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CSRD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인 '이중 중요성'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마치 거울 앞에 선 기분이었다. 우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환경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이 원칙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일방적인 사고에 갇혀있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지난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고속도로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면서 물류 운송에 차질이 생겼던 일을 떠올려본다. 그때 우리는 단순히 '날씨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우리 자신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해수면 상승이 항만 운영에 미치는 영향, 탄소세 도입이 운송 비용에 가져올 변화까지,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시대가 왔다.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작업이었다. 처음 스코프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마치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을 열어보는 기분이었다. 하나를 열면 그 안에 또 다른 것이, 그리고 그 안에 또 다른 것이 숨어있었다.


Scope 1은 비교적 명확했다. 우리가 직접 소유하고 통제하는 차량들의 연료 사용량, 창고 난방비 등. 이런 것들은 그나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데이터들이었다. Scope 2도 어렵지 않았다. 물류센터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은 매달 전기요금 고지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Scope 3은 달랐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바다와 같았다. 고객을 위해 운송하는 화물의 배출량, 협력업체의 운송 차량 배출량, 심지어 직원들의 출퇴근 교통수단까지.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복잡성이야말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측정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은 마치 퍼즐을 맞춰가는 일과 같았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연료 사용량, 전력 사용량, 운송 거리 등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배출계수와 곱하는 방식이 있었지만, CSRD의 엄격한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훨씬 정밀한 접근이 필요했다.


최근 들어 많은 동료 회사들이 IoT 센서, GPS 추적 시스템, 텔레매틱스 같은 첨단 기술을 도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과연 이런 시스템이 정말 필요할까' 싶었지만, 실제로 차량별, 경로별, 화물별 탄소배출량을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런 데이터들이 단순히 규제 준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사업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데이터 품질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CSRD는 보고되는 데이터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매우 중시하며, 외부 감사까지 요구한다. 처음에는 이런 엄격함이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잘못된 데이터로 만든 보고서는 결국 아무도 믿지 않을 테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기울인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질 테니까.


글로벌 물류 배출량 협의회에서 개발한 프레임워크나 온실가스 프로토콜의 가이드라인을 공부하면서, 나는 세계가 얼마나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새삼 느꼈다.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같은 기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감동을 주었다.


CSRD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혁신이었다. 예전에는 단순히 물건을 안전하고 빠르게 운송하는 것이 우리의 주된 목표였다면, 이제는 화물별 탄소배출량 정보를 제공하고, 친환경 운송 옵션을 제안하는 서비스까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처음에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이런 서비스들이 고객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업계 전반에 걸친 협력의 분위기였다. 공급망 전반의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화주, 운송업체, 물류센터 운영업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 간의 데이터 공유와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과거에는 경쟁사로만 여겼던 회사들과도 환경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서 손을 잡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 속도도 놀라웠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활용해서 미래의 배출량을 예측하고, 최적의 운송 경로를 설계하는 시스템들이 속속 등장했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투명한 데이터 관리 시스템도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기술들을 처음 접할 때는 마치 SF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지만, 점차 일상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전기차와 수소차 같은 친환경 운송수단의 도입도 가속화되고 있다. 처음 전기 트럭을 시범 운영했을 때의 그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엔진 소리 대신 거의 무음으로 달리는 트럭을 보면서, 정말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물류센터 운영도 점점 확산되고 있는데, 이런 변화들이 단순히 규제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쟁력을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자리잡고 있다.


CSRD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여정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현재의 탄소배출량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측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배출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웠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개선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고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는 시스템을 완성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탄소배출량 측정과 관리는 정말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이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면 아마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검증된 전문 기관의 컨설팅을 받으면서 단계별로 시스템을 구축해나갈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물류 업계 전체가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 서 있다. CSRD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부담스럽고 복잡하게 느껴졌던 이 변화가 이제는 새로운 기회로 다가온다.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고객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CSRD는 물류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준비는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이 변화를 단순한 의무나 부담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다.


정확한 탄소배출량 측정부터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구축까지, 물류 기업들의 변화와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 여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분명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속가능물류 #ESG경영 #탄소중립 #물류혁신 #친환경물류


https://glec.io/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물류업계의 한가운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