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치는 그 수많은 트럭들이, 택배 상자들이,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모든 편리함의 뒤편에 숨겨진 진실을 말이다.
물류산업에서 일하며 탄소배출량 측정 업무를 담당하게 된 지 벌써 몇 년이 흘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숫자를 계산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기계적인 업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숫자 하나하나가 우리 지구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는 무겁고도 절실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SBTi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목표 설정 이니셔티브. 처음 들었을 때는 또 하나의 복잡한 규제나 형식적인 절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볼수록, 이것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기업들이 진정으로 지구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나침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SBTi는 CDP, 유엔글로벌콤팩트, 세계자연보전연맹, 세계자원연구소가 손을 잡고 만든 특별한 약속의 장이다. 파리협정의 1.5도 목표에 맞춰 기업들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탄소감축 목표를 세우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말로만 하는 약속이 아니라, 측정 가능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많은 기업들에게는 부담스럽지만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천 개가 넘는 기업들이 이 약속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절반 정도가 이미 목표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묘한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많은 기업들이 진심으로 변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동시에 우리 산업도 이 변화의 물결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들 기업이 자사의 직접적인 배출량뿐만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간접 배출량까지 포함해서 목표를 세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물류와 운송 업계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많은 기업의 Scope 3 배출량에서 물류와 운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전체 경제 생태계의 탄소 발자국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SBTi 승인을 받은 기업들을 관찰하면서 발견한 첫 번째 공통점은 데이터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었다. 이들은 추측이나 대략적인 계산이 아니라, 정확하고 세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목표를 설정한다. 물류 분야에서 이런 접근을 적용해보면, 단순히 연료 사용량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운송 수단별, 경로별, 화물 종류별로 세분화된 배출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 이런 세밀한 데이터 수집의 필요성을 깨달았을 때, 솔직히 막막했다. 우리나라 물류업계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아직도 많은 중소 운송업체들이 수기로 운행 기록을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자,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눈에 띄는 특징은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다. SBTi 승인 기업들은 자사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급업체부터 고객사까지, 전체 가치사슬에 걸쳐 탄소감축을 추진한다.
실제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물류 파트너사들에게 탄소배출량 보고와 감축 계획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것이 단순한 요구사항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기 위한 손잡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기술 혁신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다. AI 기반 경로 최적화, IoT를 활용한 실시간 모니터링, 전기차 도입 등 최신 기술을 망설임 없이 도입하고 있다. 물류 분야에서도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통해 운송 효율성을 높이고, 빈 차량 운행을 줄이며, 최적의 운송 수단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명 깊었던 것은 이들 기업의 투명한 소통 문화였다. 진행상황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목표 달성 여부를 솔직하게 보고한다. 실패했을 때도 그 이유를 분석해서 공유한다. 이런 투명성이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쌓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도 더 큰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보면서, 진정한 변화는 숨기거나 꾸미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흥미롭게도 이런 탄소감축 노력이 비용만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에너지 효율성 개선, 폐기물 감소, 프로세스 최적화 등이 직접적인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물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탄소감축 노력이 연료비 절약, 운송 효율성 향상, 고객 만족도 증가로 이어져 전체적인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례들을 보면서, 환경을 위한 노력이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SBTi의 요구사항을 한 번에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단계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현재 배출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단기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설정한 후, 점차 더 야심찬 목표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첫 단계에서는 운송 효율성 개선을 통한 감축을, 다음 단계에서는 친환경 차량 도입을, 그 다음에는 재생에너지 활용 확대 등으로 단계를 나누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물류는 본질적으로 네트워크 산업이다. 화주기업, 동종업계, 정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SBTi 승인을 받은 글로벌 물류기업들은 대부분 파트너사들과 함께 탄소감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보를 공유하고, 기술을 협력하고, 함께 투자하면서 개별적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함께 실현하고 있다.
글로벌 탄소중립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SBTi 참여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EU의 탄소국경세,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각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보면서, 이런 흐름이 되돌릴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절감한다. 하지만 이것을 부담스러운 규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체계적인 준비를 시작한다면 향후 규제 강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제적 대응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확한 탄소배출량 측정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SBTi의 모든 요구사항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치는 그 트럭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그저 물건을 나르는 차량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를 실어 나르는 희망의 운반체라는 생각이 든다. SBTi라는 작은 약속에서 시작된 변화가 결국 우리 모두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시작해야 할 우리의 이야기다. 지금 시작하는 기업과 망설이는 기업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벌어질 것이다. SBTi 승인을 받은 선도기업들의 발걸음을 따라 우리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변화의 여정을 시작해보자. 지구를 위한 작은 약속에서 시작된 이 여정이 결국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내일을 선물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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