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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으로 바라본 물류업계의 탄소중립 여정

by GLEC글렉

어느 회사의 CEO와 만난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물건을 옮기는 일에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지구를 지키는 일도 함께 해야 한다네요." 그의 표정에서는 막막함과 동시에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엿보였다.


물류 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매일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트럭, 우리가 운영하는 모든 창고, 우리가 포장하는 모든 상자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면 무겁다. 하지만 동시에,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는 희망도 품고 있다.


SBTi라는 이름 앞에서 마주한 현실

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 줄여서 SBTi. 처음 이 용어를 접했을 때는 또 하나의 복잡한 규제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니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기업이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었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전 세계가 약속한 것처럼,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또는 2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모든 기업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탄소 감축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는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과 같다. 감정이나 추측이 아닌, 데이터와 과학에 기반한 정확한 처방이 필요한 것이다.


물류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안다. 우리 산업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매일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트럭들, 24시간 돌아가는 물류센터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운송 네트워크들이 모두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세 개의 범위 안에서 찾은 답

SBTi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Scope 1, 2, 3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처음에는 이 분류가 단순히 학술적인 구분 정도로 여겨졌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적용해보니 매우 실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Scope 1은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배출량이다. 회사가 소유한 트럭들이 연료를 태우며 내뿜는 배출량, 물류센터의 보일러가 가동되며 발생하는 배출량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관리하기 쉽다. 우리가 직접 손댈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Scope 2는 우리가 구매해서 사용하는 전력으로 인한 간접 배출량이다. 물류센터의 조명, 냉장 설비, 자동화 장비들이 사용하는 전력이 어떻게 생산되었는지에 따라 배출량이 달라진다.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사용한다면 이 부분의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가장 복잡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Scope 3이다. 이는 우리의 비즈니스 활동과 관련된 모든 간접 배출량을 포함한다. 협력업체가 우리 대신 운송하는 화물의 배출량, 우리가 사용하는 포장재의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 직원들의 출퇴근으로 인한 배출량까지 모두 포함된다.


물류업계에서 Scope 3는 종종 전체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우리 산업의 특성상 수많은 파트너와 협력업체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생태계 전체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계별로 걸어가는 변화의 길

SBTi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은 마치 등산 계획을 세우는 것과 같다.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목표점을 설정하며,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 단계별로 실행해야 한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현재 우리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지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다. 이는 생각보다 복잡한 작업이다. 연료 사용량, 전력 소비량, 운송 거리, 적재율 등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런 데이터들이 회사 곳곳에 분산되어 있어서 한데 모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들이 있었다. 어떤 운송 경로는 생각보다 비효율적이었고, 어떤 창고는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니 개선할 수 있는 지점들이 명확하게 보였다. 이는 마치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게 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목표 설정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SBTi는 Scope 1과 2는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Scope 3는 전체 배출량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류업계의 특성상 대부분의 기업들이 Scope 3를 포함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 번째는 실제 감축 목표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절대 배출량 기준과 집약도 기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성장하는 기업의 경우 사업량이 늘어나더라도 단위당 배출량을 줄이는 집약도 기준을 사용할 수 있어서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톤킬로미터당 배출량을 몇 퍼센트 줄이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목표만 세우고 실행 계획이 없다면 그저 공허한 약속에 불과하다. 어떤 기술을 도입할 것인지, 어떤 프로세스를 개선할 것인지, 언제까지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현장에서 배운 성공의 조건들

여러 기업들과 함께 일하면서 SBTi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진의 진정성 있는 의지였다.


한 중견 물류기업의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비용이 많이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오히려 운영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비용이 절약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친환경 차량 도입, 운송 경로 최적화, 에너지 효율성 개선 등이 단기적으로는 투자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연료비 절약과 운영 효율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전사적인 접근이다. 탄소 감축은 환경팀만의 업무가 아니다. 영업팀은 고객과 친환경 서비스에 대해 소통하고, 운영팀은 효율적인 운송 계획을 세우며, 구매팀은 친환경 장비와 연료를 조달하고, 기술팀은 최적화 시스템을 개발한다. 모든 부서가 각자의 역할을 이해하고 협력할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기술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IoT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료 소비량과 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AI를 활용해 최적의 운송 경로를 계산하며,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에너지 사용 패턴을 파악한다. 이런 기술들이 결합되면 사람의 직감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개선 포인트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물류 산업은 본질적으로 생태계 산업이다. 화주, 운송업체, 창고업체, 포장재 업체 등 수많은 파트너들이 연결되어 있다. 이들과 함께 친환경 목표를 공유하고 협력할 때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검증이라는 관문 앞에서

SBTi 목표를 설정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공식적인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우리가 세운 목표가 정말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지, 데이터가 신뢰할 만한지, 실행 계획이 구체적인지 등을 엄격하게 검토한다.


처음 검증 과정을 경험할 때는 마치 논문 심사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정들이 질문받고, 우리가 사용한 계산 방법이 검토되며, 우리의 실행 계획이 과연 현실적인지 평가받는다.


이 과정에서 가장 자주 지적받는 것은 데이터의 일관성과 투명성이다. 같은 배출량을 계산할 때도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고, 모든 계산 과정을 문서화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SBTi는 일회성 목표 설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약속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매년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하고,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경우 그 이유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마치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같다. 꾸준히 관리하고 점검해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미래를 향한 준비

물류업계의 탄소중립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본격화되고, 우리나라의 K-택소노미가 확대되면서 탄소 관리는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규제 대응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한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30년 전 우리가 전산화할 때도 처음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게 우리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줬잖아요. 탄소중립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의 말처럼, 지금의 변화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친환경 물류 서비스는 이미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고객들은 기꺼이 친환경 배송을 선택하고, 투자자들은 ESG 경영을 하는 기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는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SBTi 목표 설정은 이런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서 체계적으로 접근한다면, 우리는 지구를 지키면서도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물류센터에서 트럭이 출발하고, 전국 곳곳으로 화물이 배송된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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