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달력을 넘기며 문득 생각해보니, 올해는 물류업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해가 될 것 같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일명 CBAM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부터 시작된 전환기간 동안, 나는 수많은 물류 기업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또 다른 규제 정도로 여겼고, 어떤 이들은 막연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실제 탄소비용이 부과되는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처음 CBAM에 대해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복잡하고 어려운 제도라는 인상이 강했다. 탄소 누출 방지,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이라는 거창한 목표 뒤에 숨어 있는 현실적인 과제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제도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게임 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현재 CBAM 적용 대상은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력, 수소 등 여섯 개 분야로 제한되어 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화학, 플라스틱까지 확대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으면서, 물류업계 전체가 이 변화의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한 해운회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중국에서 생산된 철강 제품을 유럽으로 운송하는 일을 주로 하는데, 이제 그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는 단순히 A지점에서 B지점으로 화물을 옮기는 것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는지, 그것이 최종 제품의 탄소발자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바라보며, 나는 물류업계가 단순한 운송 서비스 제공자에서 지속가능성 파트너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에는 빠르고 싸게 운송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운송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물류 기업들의 대응 방식을 살펴보면, 이들이 이미 변화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료 효율성 개선, 친환경 연료로의 전환, 운송 경로 최적화 등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단순히 자사의 직접적인 배출량뿐만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까지 관리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해운업계의 경우, 국제해사기구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넷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것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CBAM과 맞물려 해운업계에 이중의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동시에 혁신의 기회이기도 하다. 암모니아 연료선, 수소 연료선 등 차세대 친환경 선박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항공업계는 어떨까. 국제민간항공기구의 CORSIA 제도와 CBAM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는 항공사들은 바이오연료 사용 확대, 운항 효율성 개선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한 항공사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예전에는 정시 운항이 최우선이었다면, 이제는 환경 영향까지 고려한 운항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털어놨다.
육상 운송 분야의 변화는 더욱 눈에 띈다. 전기 트럭, 수소 트럭 등 친환경 운송 수단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특히 라스트 마일 배송에서는 전기 배송차량이 이미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길거리에서 조용히 달리는 전기 배송차량을 볼 때마다, 물류업계의 미래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탄소배출량 측정의 정확성을 확보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유럽연합은 CBAM 적용 제품에 대해 정확한 탄소배출량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제3자 검증까지 받아야 한다. 물류 기업들은 이런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전문적인 측정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지만, 초기 비용과 운영 복잡성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요소다.
다행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실시간으로 탄소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시스템들이 개발되고 있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투명한 데이터 관리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이런 기술들이 물류 프로세스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확한 배출량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물류 기업들이 CBAM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현재 자사의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연료 사용량, 운송 거리, 차량 정보 등의 기초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첫 걸음이다.
그 다음으로는 고객사와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물류 서비스는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다. 화주, 운송사, 창고업체, 포워더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공급망 전체의 탄소배출량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규제 준수 차원을 넘어서, 고객사의 지속가능성 목표 달성을 지원하는 진정한 파트너십으로 발전할 수 있다.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 계획 수립과 실행도 필수적이다. 운송 수단의 친환경화, 운송 경로 최적화, 포장재 개선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실제로 배출량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기간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보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해관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CBAM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동시에 기업의 지속가능성 경영을 대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이런 변화들을 지켜보며, 나는 CBAM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류업계는 이 변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속가능한 물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곧 미래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2025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며 물류업계에 불어온 녹색 바람을 느낀다. 이 바람이 때로는 거셀 수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 모두를 더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끌어갈 것이라 믿는다. 정확한 탄소배출량 측정과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CBAM 시대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물류 기업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여정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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