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탄소발자국을 찾아서 떠나본다

by GLEC글렉

지난 봄, 물류업계에서 일하는 친구가 나에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회사가 탄소중립을 선언했는데, 정작 어디서 얼마나 탄소가 나오는지 모르겠어." 그의 고민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 수많은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진짜 탄소발자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가 속한 물류·운송업계에서는 더욱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회사 건물에서 쓰는 전기나 사무실 난방은 쉽게 측정할 수 있지만, 정작 사업 전체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었다. 바로 Scope3 배출량이라는 것이었다.


처음 이 용어를 들었을 때, 나는 마치 퍼즐의 숨겨진 조각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받는 택배 상자 하나 뒤에는 얼마나 많은 탄소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그 상자가 공장에서 나와 물류창고를 거쳐 우리 집 문 앞까지 오는 긴 여정 속에서 말이다.


숨겨진 탄소의 지도를 그리다

Scope3란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량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회사가 직접 소유하지 않지만 사업 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된 모든 탄소배출을 뜻한다. 마치 빙산의 수면 아래 부분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배출량은 15개의 카테고리로 세분화되는데, 물류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상류 운송·유통이라는 카테고리 4는 원재료나 상품을 공급업체로부터 받아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이다.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는 화물트럭들, 바다를 건너는 컨테이너선들, 하늘을 가로지르는 화물기들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반대편에는 하류 운송·유통이라는 카테고리 9가 있다. 완성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마지막 여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이다. 특히 요즘 급증하고 있는 라스트마일 배송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한 물건이 몇 시간 만에 도착하는 편리함 뒤에는 상당한 탄소비용이 숨어있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놓치는 부분들도 있다. 사업 출장이나 직원 통근 같은 것들 말이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대형 물류 기업의 경우 사업 출장만으로도 연간 500-8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는 일반 가정 약 200가구가 1년간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


측정의 기술, 그리고 그 너머

정확한 측정 없이는 개선도 없다. 이는 모든 분야에서 통용되는 진리이지만, 탄소배출량 관리에서는 더욱 절실하다. Scope3 배출량을 측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각각은 마치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처럼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공급업체별 방법은 가장 정확하지만 까다로운 완벽주의자 같다. 모든 공급업체와 직접 소통하며 실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공급업체의 협조를 얻기가 쉽지 않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모든 연주자들이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평균 데이터 방법은 실용적인 현실주의자다. 산업 평균 배출계수를 활용하여 계산하는 방식으로, 초기 측정 단계에서 많이 사용된다. 국내에서는 한국환경공단에서 제공하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계수를 활용할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다.


하이브리드 방법은 두 방법의 장점을 결합한 지혜로운 중재자다. 주요 공급업체는 직접 데이터를 수집하고, 나머지는 평균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실무에서는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화를 향한 여정

측정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나갈 것인가이다. Scope3 배출량 관리는 마치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다.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첫 번째 단계는 핫스팟을 찾는 것이다. 전체 배출량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을 파악하고, 감축 가능성과 비용 효과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우선순위를 정한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단할 때 가장 시급한 부분부터 치료하는 것처럼.


두 번째는 협력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주요 공급업체들과 탄소감축 파트너십을 맺고, 정기적인 데이터 공유와 공동 목표를 설정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


세 번째는 기술 혁신을 통한 근본적 개선이다. AI 기반 경로 최적화 시스템으로 불필요한 운송 거리를 줄이고, 모달 시프트를 통해 더 친환경적인 운송 수단을 활용한다. 공동 배송 시스템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전기차나 수소차 같은 친환경 차량 도입도 확대한다.


마지막으로는 디지털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지속적인 개선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2025년부터는 AI 기반 예측 모델을 활용한 배출량 예측과 감축 시나리오 분석도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발걸음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탄소중립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라는 것이다.


물류·운송 기업들에게 Scope3 관리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정확한 측정과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경쟁력 있는 친환경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친구는 최근 내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 우리 회사 트럭들이 어디서 얼마나 탄소를 배출하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그리고 그것을 줄이는 방법도 하나씩 찾아가고 있어."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자신감이 묻어있었다.


보이지 않던 탄소발자국을 찾아내고, 그것을 줄여나가는 여정.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동시에 가장 의미 있는 도전이 아닐까.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지금 걸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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