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규제 강화로 변화하는 기업 전략과 대응 방안

by GLEC글렉

어느 날 아침, 사무실에서 받은 한 통의 메일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유럽의 주요 고객사로부터 온 공문이었는데, 내용은 간단명료했다. 앞으로 모든 협력업체는 탄소배출량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탄소 규제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물류업계에서 십여 년을 보내면서 수많은 변화를 목격했지만, 이번만큼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의 생존 전략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물류·운송 분야는 글로벌 탄소배출량의 약 16퍼센트를 차지하며, 각국 정부의 집중적인 규제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 들어 EU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미국의 청정에너지 정책, 그리고 우리나라의 K-택소노미까지 다양한 규제가 동시에 시행되고 있다. 기업들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상황. 단순히 규제를 피하려는 소극적인 접근보다는 탄소 감축을 새로운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몇 년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변화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한 중견 물류기업의 대표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비용 증가 요인으로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새로운 사업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 세계 46개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하면서, 이는 기업들에게 단계적이지만 강력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EU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이다. 탄소 집약적 제품의 수입 시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이 제도는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에게 직접적인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수출 비용이 20퍼센트 증가했다는 한 제조업체의 하소연을 들었을 때, 이것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질서의 시작임을 실감했다.


물류·운송 분야에서는 EU의 운송부문 배출권거래제 확대 적용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올해부터 해운업계에도 단계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여, 유럽 항로를 운항하는 선박들은 탄소배출량에 따른 배출권 구매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는 운송비 상승으로 이어져 전체 공급망 비용 구조를 바꾸고 있다.


국내에서도 K-택소노미를 통한 녹색 경제활동 분류 체계가 본격 시행되면서, 금융기관들의 ESG 투자 심사가 까다로워지고 있다. 탄소 감축 성과가 부족한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거나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작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물류기업 중 68퍼센트가 탄소 규제로 인한 운영비 증가를 경험했으며, 이 중 42퍼센트는 10퍼센트 이상의 비용 상승을 보고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탄소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먼저 현재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정확한 탄소배출량을 모르는 상태에서 감축 계획을 세우려다 보니 비효율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Scope 1, 2, 3 배출량을 구분하여 측정하는 것이다. Scope 1은 직접 배출량인 차량 연료와 시설 연료 등을, Scope 2는 간접 배출량인 구매 전력을, Scope 3는 가치사슬 배출량인 협력업체와 운송업체 등을 의미한다. 물류·운송업계에서는 특히 Scope 3 배출량이 전체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협력업체와의 협업이 중요하다.


두 번째 단계는 감축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분야부터 접근하여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단기적으로는 운송 경로 최적화와 공차 운행 감소, 중기적으로는 친환경 차량 도입과 포장재 개선,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전환과 재생에너지 도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물류 시스템 구축이다. AI 기반 경로 최적화, IoT를 활용한 실시간 배출량 모니터링, 블록체인 기반 탄소 추적 시스템 등을 도입하여 효율성을 높이고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탄소 규제 대응을 일회성 프로젝트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지속가능한 경영 체계로 내재화해야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차원의 변화와 투자가 필요하다.


조직 체계 개선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의지와 함께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각 부서별로 탄소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단순히 환경팀만의 업무가 아니라 영업, 운영, 구매, 인사 등 모든 부서가 참여하는 전사적 접근이 필요하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시간 탄소배출량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일일, 주간, 월간 성과를 추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선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연말에 한 번씩 탄소배출량을 계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이로는 실질적인 감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협력업체와의 파트너십 강화도 필수다. 물류·운송업계는 다양한 협력업체들과 연결되어 있어 단독으로는 한계가 있다. 협력업체들의 탄소 감축 활동을 지원하고, 공동으로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실제로 CJ대한통운은 작년부터 '그린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협력업체 300여 곳과 함께 탄소 감축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체 물류 과정에서 연간 약 15퍼센트의 탄소배출량 감축 효과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투자와 기술 혁신도 병행되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운영비 절감과 새로운 수익원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 도입은 초기 투자비용이 크지만 연료비와 유지보수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어느 날 한 물류기업 CEO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처음에는 탄소 규제가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오히려 기회로 보고 있어요. 경쟁사들이 아직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준비하면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거든요."


그의 말이 맞다. 탄소 규제 강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들은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늦게 대응하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정확한 현황 파악과 체계적인 계획 수립이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하나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탄소 규제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질서의 시작이라는 것. 그리고 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만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지금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탄소 배출량 측정부터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감축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지속가능한 경영 체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결국 탄소 규제 대응은 기업의 생존 전략이자 성장 전략이다. 이제 선택의 시간은 지났다. 행동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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