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유럽의회에서 한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 줄여서 CSDDD라고 불리는 이 법안이 가져올 변화의 파장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물류와 운송 산업의 탄소배출량 측정 분야에서 일해오면서, 나는 수많은 기업들이 환경 문제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지켜봐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이미지 메이킹 정도로 여겨졌던 것들이 점차 생존의 문제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번 CSDDD 법안은 그 변화의 정점에 서 있는 느낌이다.
법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것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간 매출 4억 유로 이상의 EU 기업과 4억 5천만 유로 이상의 비EU 기업들에게 적용되는 이 지침은, 전 세계 약 5,400개의 대기업이 근본적으로 사업 방식을 재고해야 함을 의미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실사 의무라는 개념이다. 기업들은 이제 자신들의 직접적인 사업 활동뿐만 아니라 공급망 전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권 침해와 환경 피해를 예방하고 완화해야 한다. 위험 요소를 식별하고 평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예방 및 완화 조치를 시행하고, 고충처리 메커니즘을 구축하며,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보고해야 한다.
특히 물류와 운송 기업들에게는 기후변화 대응 의무가 추가로 부과된다. 파리협정의 1.5도 목표에 부합하는 기후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분명한 신호다.
이 법안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생각해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EU 역내 기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공급망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EU 기업의 공급업체로 참여하고 있다면, 이 법안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공급업체 선정 기준의 변화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이 될 것이다. EU 기업들은 이제 가격과 품질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게 된다. 물류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탄소배출량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친환경 운송 수단 도입 계획을 제시해야 하며, 근로자 인권 보호 정책과 환경 영향 최소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 투명성에 대한 요구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기업들은 공급망 전반에 걸친 ESG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해야 하며, 이는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관리 시스템의 고도화를 필요로 한다. 또한 법적 책임도 확대된다. 기업들은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나 환경 피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리스크 관리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나는 이를 체계적이고 단계별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단계는 현황 진단이다. 기업들은 자사의 공급망을 면밀히 분석하고 잠재적 위험 요소를 파악해야 한다. 물류 분야에서는 운송 경로, 운송 수단, 창고 운영, 포장재 사용 등 전 과정에서 환경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두 번째는 거버넌스 구축이다. CSDDD 준수를 위한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최고경영진 차원에서 지속가능성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컴플라이언스를 넘어 기업의 핵심 경영 전략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세 번째는 기술 투자다. 공급망 전반의 ESG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탄소배출량 측정과 관리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 도입이 중요하다.
네 번째는 파트너십 강화다. 공급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성 기준을 공유하고, 함께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기적 비용 증가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확보의 핵심 요소가 된다.
나는 이런 변화들을 지켜보면서 약간의 두려움과 동시에 기대감을 느낀다. 변화는 항상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CSDDD 법안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에게는 도전이자 기회인 셈이다.
법적 준수를 넘어 지속가능한 경영 체계를 구축하는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물류 및 운송 분야에서는 친환경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선제적 대응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이 법안은 연간 매출 5억 유로 이상 기업에 먼저 적용되고, 2028년에는 4억 5천만 유로 이상 기업으로, 2029년에는 고위험 섹터 기업으로 확대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직접적으로는 EU에서 사업하는 대기업만 해당하지만, EU 기업의 공급업체로 참여하는 한국 기업들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특히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ESG 요구사항 충족이 필수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변화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은 간단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유럽에서 불어온 이 변화의 바람 앞에서, 우리는 이제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기회를 잡을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며 뒤처질 것인지. 그 답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CSDDD #지속가능경영 #ESG #탄소중립 #친환경물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