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의 가격을 결정하는 사람들

by GLEC글렉

물류업계에서 십여 년을 일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중 하나는, 어느 운송업체 사장님이 "탄소도 이제 돈이 되는 시대"라고 말씀하시던 때였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배출권거래제를 알게 된 지금은 그 말의 깊이를 온전히 체감한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기업들이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된 시대에 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배출권거래제라는 놀라운 시스템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가격을 매기다

배출권거래제를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탄소에 어떻게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제도의 핵심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것'을 경제적 가치로 변환하는 데 있었다.


정부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 상한선을 설정하고, 기업들이 이 한도 내에서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시장 기반 제도.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탄소배출량에 명확한 가격을 매겨 시장 원리를 통해 효율적인 감축을 유도하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한국의 K-ETS는 2015년 도입되어 현재 약 70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2025년 기준으로 연간 배출량 2만 5천 톤 이상의 기업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운송업을 포함한 다양한 산업 분야가 포함된다.


이 제도의 작동 원리는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다. 정부가 전체 배출량 상한선을 설정하고, 각 기업에 연간 배출권 할당량을 지정한다. 그리고 잉여 배출권과 부족 배출권의 자유 거래를 허용하며, 매년 실제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제출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비용 효율적인 감축이 가능해진다. 감축 비용이 낮은 기업은 더 많이 줄여서 잉여 배출권을 판매하고, 감축이 어려운 기업은 배출권을 구매하여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환경 문제까지 해결하는 셈이다.


물류업계의 새로운 기회

물류와 운송 분야에서 일하다 보면, 연료비가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유가 변동에 따라 수익성이 좌우되고, 장거리 운송일수록 그 부담이 더욱 크다. 하지만 배출권거래제는 이런 부담을 새로운 기회로 바꿔주는 마법 같은 도구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운송 효율성 개선이다. 배차 최적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공차 운행을 최소화하며, 적재율을 향상시키면 연료 소비가 줄어든다. 이는 곧 탄소배출량 감소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잉여 배출권 확보가 가능해진다.


친환경 차량 도입도 중요한 전략이다. 전기 상용차, 하이브리드 트럭, 수소 연료전지 차량 등으로 순차적으로 교체하면 장기적으로 상당한 배출권 절약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정부의 친환경차 보조금과 배출권 판매 수익을 합치면 투자 회수 기간도 단축된다.


최근 들어 디지털 기술 활용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IoT 기반 연료 모니터링, AI 기반 경로 최적화, 실시간 배출량 추적 시스템 등을 통해 정확한 배출량 측정과 효율적인 감축이 가능해졌다. 데이터가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협력업체와의 연계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물류 네트워크 내에서 배출권 거래를 통해 전체적인 비용 절감을 달성하고, 고객사의 ESG 경영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단순한 운송 서비스를 넘어 지속가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

배출권거래제는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확대될 전망이다. 2025년부터는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이 본격 시행되면서 수출입 물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면, 그 흐름을 타고 앞서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장기적인 감축 목표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의 2050 탄소중립 계획에 맞춰 단계적 감축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에 따른 투자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배출권 가격은 현재 톤당 약 10,000원 수준이지만, 향후 EU ETS 수준인 50,000원 이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리스크 관리도 필수다. 배출권 가격 변동성에 대비한 헤징 전략과 할당량 부족 시 대응 방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또한 정확한 배출량 측정과 보고 체계를 구축하여 제도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회 요소도 충분히 존재한다. 조기 감축을 통한 잉여 배출권 확보, 신기술 도입을 통한 경쟁 우위 확보, 고객사의 ESG 요구에 부응하는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 등이 가능하다.


전문성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배출권거래제는 복잡한 제도이므로 내부 전문 인력 양성과 외부 전문기관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배출권거래제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 도구이자, 기업의 새로운 경쟁력 원천이 될 것이다.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환경 보호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특히 물류와 운송 분야에서는 운영 효율성 향상과 비용 절감이라는 추가적인 이점까지 기대할 수 있어, 적극적인 대응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탄소의 무게를 재는 이 시대에, 우리는 모두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언어로 미래를 써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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