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외친 "이대로는 안 된다"
2024년 8월 29일, 평범한 여름날이었지만 우리나라 환경 정책사에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이 전원일치로 내린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거든요.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 헌법에 맞지 않습니다."
이 순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기후위기 대응 부족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인정받은 역사적인 판결이 탄생했습니다. 마치 늦은 밤까지 공부하느라 지친 학생에게 "이제 그만 자라"고 말해주는 어른처럼, 헌재는 정부에게 "이제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라"고 말한 셈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2030년까지는 열심히 탄소를 줄이겠다고 약속해놓고, 그 이후 20년간은 어떻게 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다면 어떨까요. 마치 대학 입시까지만 계획하고 졸업 후 진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학생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만 덩그러니 적어놓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구체적인 로드맵은 깜깜한 상태였습니다. 헌재는 이런 모습을 보고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며 따끔하게 지적했죠.
정부와 국회에게는 2026년 2월 28일까지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단순히 법 조문 몇 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후정책의 근본적인 체계를 다시 세우라는 거대한 과제였습니다.
요즘 우리 집에서는 아이가 퍼즐 맞추기에 빠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조각들을 보며 막막해하더니, 하나씩 맞춰가며 그림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끼더군요. 우리나라의 기후정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대선 때 내세운 '기후에너지부' 신설 공약을 들었을 때, 드디어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하나로 모을 사람이 나타났구나 싶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를, 환경부에서 기후변화를, 국토교통부에서 건물 에너지를 각각 따로따로 다뤄왔거든요.
마치 한 가족이 각자 다른 방에서 똑같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정작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기후에너지부가 만들어지면 어떨까요.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정책을 한 곳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복잡하게 얽힌 기후정책의 진짜 컨트롤타워가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국제 기후협상에서도 우리나라의 목소리가 더 크고 명확하게 들릴 수 있겠죠.
며칠 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각종 안건들이 쏟아지는데,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시간 부족으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더군요. 그때 든 생각이 "이런 중요한 일은 전담 위원회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였습니다.
국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2대 국회에서는 드디어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을 가진 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상설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이소영 의원이 주도한 법안에는 신기하게도 원내 모든 정당 의원들이 이름을 올렸더군요. 기후 문제만큼은 여야가 따로 없다는 뜻이겠죠.
사실 21대 국회에서도 기후특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있고 실질적인 권한은 없어서, 부처에서 보고만 받고 끝나는 수준이었어요. 마치 음식 사진만 보고 배부르다고 하는 것과 같았죠.
이번에는 다릅니다. 진짜 법을 만들 수 있고, 예산도 심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겁니다. 기후위기라는 비상상황에 맞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니까요.
어렸을 때 여름방학 숙제를 생각해보세요. 처음에는 "8월까지 끝내면 돼"라고 여유롭게 생각하다가, 8월 말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남은 숙제를 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도 그런 모습이었어요.
헌재가 지적한 핵심은 바로 이거였습니다. 2030년까지의 계획은 있는데, 그 이후 20년간의 계획은 아예 없다는 것. 마치 방학 숙제를 절반만 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해볼게"라고 하는 것과 같았죠.
이제 정부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만들어야 합니다. 산업별로, 연도별로 세세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이 우리 경제와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의로운 전환'입니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 피해를 볼 수 있는 지역이나 사람들을 보호하는 방법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죠.
기후에너지부가 생기고 법이 바뀌면 우리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사는 집부터 달라질 겁니다. 지금까지는 제로에너지빌딩이라고 해서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 건물을 짓는 것이 목표였다면, 앞으로는 넷제로 건축이 대세가 될 것 같아요. 에너지를 아예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건물 말이죠.
냉장고나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도 더욱 효율적으로 바뀔 겁니다. 특히 대형마트나 물류센터에서 쓰는 대형 냉동·냉장 시설들은 친환경 냉매로 바뀌면서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그동안 전기 위주로 치우쳐 있던 정책이 열 에너지 쪽으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난방할 때 쓰는 에너지도 친환경적으로 바뀐다는 뜻이죠.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제도를 강화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만 혼자 이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특히 이번 헌재 결정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기후위기 대응 부족이 기본권 침해라고 인정받은 사례라고 하니, 국제적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더군요. 마치 우리나라가 아시아 기후정책의 선두주자가 된 기분입니다.
올해는 정말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상반기에는 기후특위 상설화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테고, 하반기에는 기후에너지부를 만들기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이 추진될 것 같아요. 그리고 내년 2월까지는 꼭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마쳐야 하죠.
물론 법과 조직만 바뀐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시민들이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해요.
가끔 우리 아이가 "엄마, 나중에 북극곰이 정말 없어져요?"라고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괜찮아, 어른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라고 대답하지만, 과연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이번 헌재 결정과 기후에너지부 창설 논의는 그런 의미에서 희망적입니다. 단순히 조직을 바꾸거나 법을 고치는 것을 넘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니까요.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 앞에서는 정부도, 국회도, 기업도, 그리고 우리 개인도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기후에너지부가 성공적으로 출범하고, 더 강화된 탄소중립기본법이 만들어져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더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다시 북극곰 이야기를 꺼낼 때, 자신 있게 "응, 북극곰들은 잘 살고 있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분들, 정책 변화를 주시하고 계신 분들, 미래 세대를 걱정하는 부모님들, 그리고 우리나라가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한 모든 분들에게 이 글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