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는 짧은 여행의 긴 여운과 아쉬움의 끝에 여행길에 만난 인연들을 쉬이 놓지 못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제이는 국내로 여행 오는 친구들을 호스팅 하며 가이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여행의 연장선이었던 가이드는 그녀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때는 2005년 한국이 한창 APEC 정상회담으로 시끄러운 시기였다. 한국에는 외국인을 위한 시설들이 그리 친절하지 않은 상태였다. 각 기관과 단체들은 언어가 되는 사람들의 배치가 시급했고 곳곳에 통역이 가능한 사람을 구한다는 채용정보가 쏟아졌다. 그 시기 제이는 그저 놀며 배운 영어실력이 있었을 뿐 그녀가 가진 스펙으로는 어느 곳에도 이력서를 제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물론 여전히 세상을 다 씹어 삼킬 정도로 당당히 세상을 마주할 용기 또한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며 변화의 흐름 속에 새롭게 등장하는 단어들과 기술들을 눈여겨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지인이 지역의 유명은행이 단기 알바를 구한다는데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면접이나 한번 보라는 말에 그녀는 그렇게 조용히 면접장에 들어갔다.
한창 압박면접이 유행하던 시기.
면접관이 세명이고 면접자가 둘인 3 대 2 면접이었다.
급히 외국인을 담당할 직원이 필요해 외국인 담당창구에 배치될 통역인원을 뽑는 것이었다.
스펙이나 학력은 안 본다는 말과는 달리 면접장에 그녀와 함께 들어온 면접자는 그녀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력서에는 영어 학원 강사를 하고 영문과를 졸업한 영어 관련 경력이 이미 빼곡히 쌓여있었다. 반대로 제이는 이와 너무도 비교되는, 이력서에는 어학연수도 아닌 배낭여행으로 세계 곳곳을 다닌 이야기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떨리는 맘을 숨긴 채 그렇게 면접시간이 지나갔다.
면접관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일어서려던 찰나 갑자기 한 면접관이 한마디를 던졌다.
"I need a help to find someone who can manage my bank account issue. Is there anyone who can speak english?"
제이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I do. What can I do for you?"
짧은 대답 후, 면접은 끝이 났다.
그렇게 그녀의 첫 직장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짧은 단기 아르바이트 기간이 종료되고 일본으로 여행을 가있던 제이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은행에서 근무를 하던 기간 그녀의 부서장님었던 분으로부터 구인공고가 떴으니 지원해 보라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접수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유로 일정보다 빨리 귀국하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내키지 않은 귀국이었지만 제이는 일본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같은 회사에 다시 한번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그리고 10개월 후, 그녀는 첫 번째 퇴사를 했다.
고작 10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녀의 건강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고 그녀는 다시 황폐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