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제이는 항상 머나먼 땅과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상..
어떤 곳일까 궁금해하며 틈만 나면 지도를 펼쳐 들고 자신만의 모험을 떠나는 상상을 했다. 하루 몇 시간씩, 제이는 그렇게 세상으로 나가는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기회는 생각지 않은 방향에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 나이 22살, 꽃 같이 예쁜 20대.
어딘가 생기를 잃은 그녀가 살기 위해, 처음으로 스스로를 세상에 던지기로 마음먹은 그해 여름.
그녀는 마침내 기회를 얻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다음 날, 예기치 않은 사고로 갑자기 아빠를 잃었다. 그 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가족에게 헌신적인 부모님 덕에 부족함 없이 먹고 자랐었던지라 혼자 아르바이트조차 해 본 적이 없었던 그녀였다. 아빠를 빼앗아간 화재사고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두 분의 사업도 한순간에 앗아가 버렸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던 그녀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세상이 얼마나 비정한지를 배워버렸고 긴 시간 숨어버렸다. 대인 기피증이 생겨 집 밖을 나오기까지는 한참을 용기를 내야만 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제이는 몰랐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여전히 미지의 세상에 대한 열망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불씨를 이어가고 있었다.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400만 원
그녀는 세상에 맞서보겠다며 겁 없이 문을 열고 나와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고, 책으로 여행을 배우고,글로 사람을 공부했다. 여전히 타인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그녀가 혈혈단신 혼자 배낭여행을 가겠다며 비행기티켓을 끊어 가족들에게 내밀었을 때 가족들은 한동안 충격에 숨을 쉬지 못했다.
그녀는 배낭 하나와 세상을 보고 싶은 불타는 열망만 가지고 한 달을 약속하며 한국을 떠나왔다.
그렇게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외딴곳으로 그녀를 데려다줄 여행을 시작했다.
그녀의 첫 여행은 꽤나 순조로워 보였다. 그녀가 살아왔던 곳과는 다른 다양한 문화에 몰입하고 그 과정에서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관습을 탐색하는 것부터 향수병과 외로움에 대처하는 것까지 그녀가 직면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살아 있음을 느꼈고 활력을 얻었다.
그녀는 길을 걷는 자유, 자신만의 경로를 계획하고 관광객이 거의 보지 못하는 숨겨진 보석을 발견하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살아있음을 느끼며 일부러 길을 잃어보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잘못된 버스를 타기도 하고 계획되지 않음에서 오는 두려움과 신선함을 만끽했다.
그렇게 약속한 한 달이 끝날 무렵 그녀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자가 만기 되는 3개월을 꽉 채우고 돌아가겠노라고.
그녀의 주머니에는 출발할 때 들고 온 300만 원 중 약 150만 원 남짓 남아있었다. 첫 한 달을 공연도 보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충동적인 선택에 따른 여행을 했던 지라 아낀다고 아꼈음에도 예산의 반이나 써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에 바게트 하나를 3개로 나누어 식비를 아끼기로 했다.
여전히 영어는 목적지를 종이에 써서 전달해야 하고 손짓 발짓을 동원해야 겨우 주문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의기충전했고 살아 있음이 즐거웠다. 현지에서 만난 여러 친구들은 영어한마디 못하는 어린 동양여자의 배낭여행이 신기한지 연신 ‘crazy’를 외쳤고 그녀는 왠지 그 단어가 싫지 않았다.
그렇게 제이는 ‘미친년’이 되었다.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깨끗한 자신감과 행복감으로 가득 찬 미친년이.
그렇게 여행이 막바지즈음이었을까?
그녀는 공항에서 캔슬된 비행기 티켓 때문에 직원과 기나긴 영어로 싸움을 하고 당당하게 그 사람의 눈을 쳐다보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