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편이 내편이 되기까지
배터리가 아닌, 충전기가 필요한 관계
내 엄마의 젊은 날이 그러했듯 나도 열심히 바쁘게 살아왔다. 그렇게 바삐 살다 보니 어느새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지금의 가정을 이루고 산지 15년을 바라보는 시간을 보냈다. 내 살아온 인생의 절반을 지금 내 옆에 코를 골며 잠든 이 사람과 함께 보내고 보니 참 잘 살아왔구나 싶은 생각에 잠든 신랑의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늘 방황하고 갈피를 못 잡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위해 수없는 도전을 하는 나를 묵묵히 받아주고 그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을 만난 건 나의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이 사람을 만났기에 지금의 아이도 만날 수 있었구나 생각이 드니 더 이뻐 보이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만약 그때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의 삶을 찾아 떠났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여러 감정들과 상황들을 통해 난 매일 성장함을 느낀다.
때론 그 자리에 정체해 있는 느낌에 답답함과 속상함도 컸지만 그런 과정 동안에도 누군가가 끊임없이 괜찮다고 말해주며 방전되어 가는 나를 채워줬다.
살아보니 그런 것 같다.
결혼이라는 것이 꼭 어떻다고 하기는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선물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일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버려 오히려 단단하게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고 반대로 속박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작 인생 40에 결혼은 이런 거다라고 감히 얘기할 수는 없다.
다만 결혼에 부정적이었던 어떤 사람의 케이스 중에 이런 경우도 있다 정도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다.
나는 그랬다. 수년을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관계임을 염두에 두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살았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긴 시간에 걸쳐 그 두 감정이 변화되는 것을 느꼈다.
결혼이라는 형식에, 그 속에서 생기는 관계들에 정말 염세적이었던 나의 감정과 태도가 변화됨을 바라봤다.
아이가 더 자라면서 이 감정들이 또 어떻게 변화해 갈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이라는 이름아래 큰 책임이 따르는 부모가 되고 보니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을 노력하고 싶어졌다. 적어도 내게 결혼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게 만들어 줬다. 한때 비혼주의였던 내가 어느새 결혼 예찬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해볼 만한 것이라 얘기하게 된 스토리다.
여전히 둘보다는 하나가 편한 순간순간이 많지만, 셋이기에 행복한 순간순간들을 통해 채워지는 에너지들에 매일 힘을 얻는다. 아침에 눈을 뜰 이유가 생기고 기분 좋게 안아주고 잘했다 응원해 줄 이유가 생겼다.
결혼을 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은 새로운 고난의 시작이었고 그 고난의 길에서 난 희망과 희열을 만났다. 다시 돌아가면 사무치게 그리울 결혼 후에 만난 세상은 내가 살아온 인생과는 너무나도 달랐지만 태어나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 되었다.
힘들었던 고난의 시간도 가치를 만나면 의미가 있는 일이 되고 추억으로 남게 된다는 엄마의 말을 엄마의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조금씩 이해를 하게 되면서 내 삶을 돌아본다. 내가 직접 살아보지 못한, 가보지 못한 길에 너무 큰 두려움과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때로는 준비 없이 부딪히는 것이 큰 기회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강력한 힘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그게 내게는 '결혼'이라는 허례허식을 통한 '족쇄'채우기였다. 그리고 그 길에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여전히 배워가고 있는 중이지만, 그 길에서 만나는 여러 기회들은 때론 남은 20년을 살아갈 힘이 되어 선물같이 불쑥불쑥 찾아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예전에 나는 결혼을 하면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 뺏기고 내 것을 다 나눠줘야 하는 희생의 관계라 생각했다.
왜 '사랑의 배터리'라는 노래도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은 흔히 사랑에도 배터리처럼 총량이나 유효기간이 한정적이어서 다 소진하고 나면 더 이상 남는 감정도 에너지도 없다고들 말한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르면 그건 분명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랑도 에너지고, 관계에서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니까. 그런데 한 가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 보면 '에너지는 절대 소멸되지 않는다'는 명제가 있다. 에너지는 이동을 하는 것이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너지는 움직인다
여기서 저기로, 그리고 다시 내게 돌아온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직도 솔직히 그게 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확신의 T는 아니지만 공감의 F인 나로서도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랑이라 잘 모르겠다. '사랑'이니 '행복'이니 하는 추상적인 개념은 영원히 풀어가야 할 인류의 난제이니 차치하고 두더라도 관계에서 흐르는 케미스트리는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난 그게 에너지라 생각한다. 때로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상대도 나도 힘을 내게 하고 때로는 부정적인 에너지로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켜버리기도 하는 그런 경험은 살면서 수도 없이 해왔으니까.
사람사이에,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에너지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작은 결정부터 큰 기로의 선택까지, 혹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곰곰이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다 보니 난 참 고마운 게 많은 사람이었다. 끝없이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주는 에너지는 나의 부족한 에너지를 채워줬다. 다시 일어날 힘을 주고 계기가 되어주고 목표가 되어 주었다. 그것이 '가족'이었고 지금의 내 남편이 그 역할을 많이 해주고 있었음을 나이가 들고 중년에 접어들며 조금씩 더 많이 느껴간다. 서로의 삶에 분명 치이고 지치는 것은 마찬가지 일 텐데 언제나 내 것을 먼저 채워주고 자신을 돌아보는 듯한 마음에 감사했다. 그래서 언젠가인가 신랑에게 그런 감사함을 표현한 적이 있던 밤, 그가 돌려준 대답은 의외로 나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라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은, 때로 서로가 징글징글하게 밉고 싫을 때가 있어도 다른 이가 내 사람을 욕하는 건 참지 못하고 대신 목숨 걸고 싸워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결혼이 준 선물'이었다. 나의 응원의 에너지가 상대의 방전된 에너지를 채워주고, 다시 충전된 에너지로 나의 허실을 보듬어주는 힘으로 사용하고 난 또 그 힘을 받아 에너지를 채워간다.
우리의 에너지는 이렇게 서로에게로 돌고 돌아 다시 돌아왔다.
내가진 배터리를 다 소모해서 더 이상 챙겨줄 수 없는 관계가 아닌 언제든 충전이 가능한 관계가 되기까진 많은 연습과 시간들이 필요했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함께한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해 가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내게 힘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배운 것만으로도 난 결혼은 충분히 해볼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라는 존재까지 선물로 받았으니 어찌 후회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하루 걸러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좋은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음이 전혀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나도 그랬었으니까 그 마음 십 분 이해한다.
그래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는 세상은 꽤나 우리에게 친절하고 우호적인 선물들을 자주 준다. 굳이 주는 세상의 선물을 온몸으로 거절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니 그냥 마음 한번 크게 열고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에게 고마운 것들을 한번 쭈욱 적어보면 어떨까? 생각보다 크고 작은 것들에 고마운 일들이 많음에 스스로 놀랄 수도 있다. 그렇게 고마운 마음을 조금씩 표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지금의 내가 그러하듯 결혼, 꽤 해볼 만한 가치가 있잖아?라고 얘기하는 순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고 보면 내가 이쁘게 보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세상은 예뻐 보이고, 내가 마음을 꽉 닫은 그 순간부터 세상은 지옥이 되곤 했다. 그래서 오늘도 시끄럽게 코 고는 신랑의 모습을 보며 오늘도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런 소리를 낼까 안쓰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거실로 베개를 들고나가본다.
우린 이런 날을 대비해 비싼 돈 주고 소파를 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