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7년, 10년, 그리고 또 30년

계절이 바뀌고 나도 바뀌어 간다

by 글린더

결혼 10년이 지나고 나면 웬만한 고비는 넘겼다고들 말한다.

결혼하고 3개월 억수같이 싸우고 그 고비를 잘 넘기면 1년은 금방 가고, 사계절을 한번 넘길 즈음 또 한 번의 고비를 잘 넘기면 그때부터는 3년, 7년, 10년은 금방이라 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어린 시절 만나 연애만 하다 헤어지겠지 하며 만난 기간이 7년인가 8년인가 다 되어 갈 즈음 어쩌다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이 되어 1년을 투닥거리며 살다 내 할 일을 찾겠다며 집밖으로 일을 하러 다닌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 시간도 금방 흘러가겠지 싶어 잠시 서글퍼진다. 이 모습을 바쁘다고 나를 찾아가겠다고 너무 나몰라라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어 미안하고 또 속상했다. 그러다 또 이내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는 지금처럼 행복한 가정에서 살 수가 없어


얼마 전 아이가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내게 종종걸음으로 무언가 주며 무심코 던진 말이 가슴에 콕 박힌 적이 있다.

"이거 딱 우리다 그지? 내가 아무거나 골랐는데 이게 나왔어, 완전 신기하지~"

"응? 엄마 먹으라고 주는 거야? 고마워~~"하고 받아 들고 보니 알맹이는 이미 빼먹은 빈 껍질이었다.

잠시 실망했다 이내 아이 말이 떠올라 뭔 소린가 하고 들여다보니 빈 껍질엔 이렇게 인쇄가 되어있었다.

'행복가득 우리가족!'

내 아무리 바쁘게 돌아다녀도 아이에게는 진심이 닿고 있었구나 싶은 마음에 뭉클함이 몰려왔다.


내가 하마터면 만나보지 못했을 부모라는 세상에서 받는 감동은 가끔 상상을 초월한다. 부족한 말솜씨로 설명해 낼 재간이 없어 그저 나의 상상력 그 이상의 어떤 다른 세계의 감동을 받는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만나지 못했더라면 알 수 없었을 것들.


살다 보면 여러 선택을 하고 선택은 언제나 결과와 책임이 따른다. 지나고 보면 잘못된 선택도 그 순간엔 최선이었기에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은 나의 지난 선택들의 산물인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난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 책임을 져왔다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힘들었던 지난 과정들 속에서도 이런 작은 순간들이 가져오는 행복감은 그 모든 순간을 보상받고 가치가 새로 부여되게 하는 힘을 실어준다.


난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때 결혼하지 않고 예식장을 뛰쳐나와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나름 잘 살고 있었을게다. 난 한국보다 밖에 혼자 있을 때 더 생기가 도는 아이였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아 잘 살고 있었을 거다. 그때의 나는 분명 어디에서도 잘 살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난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몰랐을 때는 몰라도 이미 내 아이가 있는 세상을 경험한 지금의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은 이미 답이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잠든 아이가 코를 골며 곤히 잠든 모습을 보고 있는 지금을 포기할 수 없다.


어느새 난 부모가 되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반을 지금의 남편과 함께 걸어가고 있고, 그 반을 이 아이와 함께 새로이 배워가며 매일을 만나고 있다.

내가 원했던 삶과는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후회는 없다.

이미 걸어온 10년, 곧 다가올 15년, 그리고 어느 순간 30 년이 곧 다가오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함께한 지 15년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지만 그 속에 후회는 없다. 과연 30년을 바라보는 시점의 나도 그럴까?

그 순간이 오면 어떨지를 잠시 상상하다 어떤 모습이 되고픈지를 상상하고 있는 나를 본다. 그 모습 속엔 지금의 행복을 아는 아이가 여전히 가정의 따뜻함을 잃지 않고 사는 청년이 되어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매일매일 잘 살아낸 오늘들이 쌓인 어느 15년 후의 나를 상상 속의 모습으로 만나기 위해선 지금부터 15년을 잘 살아내면 되지 않을까?

사소한 단어에서도 행복을 보면 가족을 떠올리는 아이의 세상을 지켜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건 내가 행복해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또 다짐 같은 주문을 외워본다.


"난 지금까지도 잘 살아왔고, 지금도 잘 살고 있어.

잘 해내고 있고 잘해 나갈 거야."


오늘도 내일도 잘 살아갈 걸 알지만 잠든 아이를 보니 불끈 의지를 다시금 불태워보게 된다.

아자아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