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필독서, '최악을 극복하는 힘' 서평
한 하버드 대학원생이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시작 단계인 논문의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단 3개월. 매일 16시간이 넘게 논문을 쓰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왈칵! 키보드에 토하고 만다. 특별히 속이 불편한 것도,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니었다. 당황했지만 그녀는 이내 토사물을 닦아내고, 다시 논문 쓰기에 열중한다.
그녀는 항상 이렇게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며, 밀어붙이는 삶을 살아왔다. 냉전 시대 군인 자녀로 태어나 어릴 적 10번 넘게 이사를 다니면서도, 알코올 의존자였던 보호자의 폭력을 당하면서도, 지인,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적 학대, 스토킹, 폭행, 강간을 당하면서도, 장교로 복무하던 중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성희롱 신고를 받은 사령부가 되려 보복을 했을 때도 그녀는 참고, 견디며, 밀어붙였다.
스트레스의 크기만큼 그녀는 더 노력하고 더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에 몰두했다. 그 결과 예일대, 하버드대, MIT에서 학위를 취득했고,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종신 재직권을 얻을 정도로 큰 사회적 성취를 이뤘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녀는 'GRIT'의 전형이다. 2016년 출시된 앤절라 더크워스의 저서 'GRIT'에서는,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은 '실패, 역경, 슬럼프를 견뎌내고 끝까지 도전하는 열정적 끈기'라고 말했고, 이 끈기를 'GRIT'이라 정의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25주 연속 1위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GRIT'은, 현대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하버드 대학원생 그녀는 이 GRIT을 완벽하게 체득한 사람이다. 가히 최악이라 부를만한 역경, 실패, 슬럼프를 견디고 종신 교수직에 오르지 않았나!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많은 것을 이룬 그녀 앞에는 이제 꽃길만이 놓여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녀가 받았던 스트레스, 트라우마는 내면에서부터 그녀를 좀먹고 있었다. 만성 호흡기 질환, 축농증, 천식, 각혈, 불면증, 편두통이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시신경 염증으로 인해 시력을 잃을 뻔하기도 하였고, 실제로 3주간 시력을 잃었다. 그 이후에도 전신 염증, 면역 기능 손상에 시달렸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그녀가 이룬 사회적 성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괴로울 질병을 두 손으로 세기 힘들 만큼 갖게 된 그녀의 상황은 가히 '최악'이라 부를만하다. 그럼, 지금 그녀는 어떻게 됐을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최악의 상황을 잘 극복한 듯하다. 그녀의 저서의 제목이 '최악을 극복하는 힘'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스탠리, 조지타운대학교의 교수이다.
그녀가 찾은 '최악을 극복하는 힘'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인내의 창'이란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의 크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이 인내의 창의 크기는 다르다. 인내의 창 안에서 특정 사건을 겪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고, 인내의 창을 벗어나는 일을 겪으면 몸이 지나친 스트레스 각성을 경험하며 스트레스가 독처럼 몸에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인내의 창의 크기가 모두 다르기에,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사람마다 겪는 내상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내의 창의 크기는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선천적 기질의 영향도 존재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살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이다. 여러 종류의 사건들이 우리의 인내의 창을 좁히는 데 기여한다. 저자가 밝히는 인내의 창을 좁히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1. 아동기의 역경&발달 트라우마
2. 성인기 쇼크 트라우마
3. 일상생활에서의 만성 스트레스, 관계 트라우마
아동기를 포함한 발달 과정, 심지어 성숙한 이후에 겪는 충격적인 사건들, 일상적인 스트레스가 모두 인내의 창을 좁히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사건들도, 사실 우리 기억과 몸에 꾸준히 쌓여 인내의 창틀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니 성장하면서 역경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커서 충격적인 일 안 겪어보는 사람이 있나? 그럼 우리 모두 인내의 창이 엄청 좁아야 되는 거 아니야?"
맞다. 단, 회복은 없이 계속 사건을 경험하기만 한다면 그렇다. 스트레스, 트라우마를 겪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겪은 후 회복의 과정을 겪지 않는 것이 문제다.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겪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사회의 불확실성, 복잡성, 변동성, 모호성은 '상징적 위협'이라 지금 당장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치명적 결정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상징적 위협은 여전히 우리에게서 구석기시대의 투쟁-도피 반응을 활성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때 동원한 스트레스 각성을 사용할 직접적인 배출구나 마침내 '진정될 수 있는' 명백한 종결점이 없는 상태에 놓인다. 우리가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설계된 - 그래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동원하는 스트레스 요인은 우리가 '생소하고',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라고 인식하는 것들이고 이 세 형용사야말로 현대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특징인 것이다.
- '최악을 극복하는 힘' 중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특히 코로나 19와 4차 산업혁명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불가피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다행인 점은, 스트레스를 받고 나서도 올바른 회복의 과정을 거친다면 인내의 창이 좁아지지 않게 유지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내의 창을 넓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회복의 과정이 하루 이틀 사이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 헬스를 해야 하듯이, 인내의 창을 키우기 위해서도 마음도 운동이 필요하다. 이 운동의 과정을 저자는 MMFT(Mindfulness-based Mind Fitness Training)라고 부른다. 의역하면 '마음 챙김 기반 마음 훈련'정도 되겠다. 꾸준한 MMFT를 통해서만 우리가 인내의 창을 넓히고,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
(내용이 너무 많아 MMFT의 세부적인 내용을 글에서 다루진 못했습니다. 대표적인 MMFT 기법들을 간략하게 다룬 영상을 첨부하는 것으로 기법 설명을 대신합니다. 영상 6:00부터 MMFT 기법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엘리자베스 스탠리의 '최악을 극복하는 힘'은 솔직히 말해 어렵다. 주석을 제외한 책의 분량만 600페이지가 넘고, 내용도 가볍지 않다. 내용이 어려운 탓인지 번역이 다소 길어지거나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어 술술 읽히지도 않는다. 성공을 다룬 책도 아니고, 돈을 버는 법을 다룬 책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수많은 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정의, 스트레스를 보는 관점, 다루는 법을 송두리째 흔드는 책이다. 하루하루 겪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식이 바뀐다는 것은 곧 나의 일상, 나아가 인생이 바뀐다는 뜻이다.
'최악을 극복하는 힘'에서는 저자가 제시하는 '인내의 창'에 관한 과학적, 철학적 근거들부터,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까지 폭넓게 제시한다. 과학적인 내용들은 다소 난이도가 있지만, 훈련 방법들은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며 적용 분야가 굉장히 폭넓다. 단순히 스트레스를 더 잘 다루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깊이 있고 훌륭한 책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 근무 및 자산 가격 폭등 현상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스트레스가 큰 상황이다. 이 스트레스는 잠시 견디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기억에, 몸에 축적되고 있다. 부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시대가 주는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부터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책에서 제시된 '지혜'와 '용기'에 대한 정의가 너무 인상 깊어 이를 나누고 글을 마치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지혜와 용기가 깃들기를.
* 그 어떤 협찬이나 유료 광고 없이 직접 구매 후 솔직하게 올리는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