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 '전념'
죽음은 삶의 길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삶의 깊이를 통제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 피트 데이비스, '전념' 중
요즘엔 정말 해보고 싶은 일, 해야 할 것 같은 일이 많습니다. 주식도 해야 할 것 같고, 부동산도 해야 할 것 같고, 코인도 해야 할 것 같고. 유튜브도 해야 할 것 같고. 이전엔 몰랐던 방법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루에도 수도 없이 접합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이미 직장을 가진 이들마저 ‘뭐하고 살지?’에 대해 고민하고,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누구는 주식 투자, 누구는 코인 투자. 또 누구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합니다.
문제는, 투자든 콘텐츠 제작이든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을 꾸준히 지속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인생을 바꿔보겠다던 다짐은 온데간데없고,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 지친 자신의 모습만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다 유튜브 영상에서 부동산 투자가 정답이라고 합니다. 솔깃해 책을 사고 임장을 다녀봅니다. 이렇게 우리는 매번 한 가지 일에 정착하지 못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미국의 시민활동가이자 ‘겟어웨이’라는 회사의 창립자인 피트 데이비스는 이렇듯 무언가 하나에 몰두하지 못하고 탐색만 하며 지쳐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한 해독제를 제안합니다. 그것은 바로 ‘전념’입니다.
피트 데이비스는 많은 현대인이 '무한 탐색 모드'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적성, 흥미에 맞지 않는 일을 하기 싫다는 두려움에 이 직장 저 직장을 옮겨 다니고, 나와 딱 맞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탐색의 문화가 주류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개인의 삶과 사회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다 보니 그 어떤 변화에도 적응하기 위해 '고체'보다는 '액체'가 되어, 어떤 사회의 틀이 주어지더라도 스며들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죠.
무한 탐색 모드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탐색은 우리가 진짜 자아를 찾도록 돕고, 단조로운 삶에 새로움을 불어넣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는 결정 장애를 유발합니다. 결정하지 못하니 몰입하지 못합니다. 하나에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공동체와 유대감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공통분모가 없으니까요. 인간은 타인, 공동체와의 유대를 통해 가치규범을 형성하는데, 그 기반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의 부재로 인해 인간은 아노미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무한 탐색모드’의 주류 문화 속에서 피트 데이비스는 ‘전념하기의 반문화’를 제안합니다. 선택지를 한 없이 열어놓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 내가 속한 공동체에 책임감을 가지고 전념하는 것이 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인기 있는 것, 수익성, 새로움을 좇는 삶이 아니라, 내 정체성, 명예,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 훨씬 행복하고 보람된 삶이라는 겁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위대한 이들이나 큰 성공과 부를 쟁취하는 사람들은 수익이나 새로움을 좇는 이들이 아닌, 돈도 잘 안되고 자칫 사소해 보이는 지루한 일들을 매일 반복하며 꾸준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온 사람들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불현듯 영웅처럼 나타나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친 것이 아닙니다. 긴 시간 동안 매일 저녁 각종 교회 공동체 회의에 참여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전념해 온 사람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처음부터 트리플 점프를 뛰며 CF스타였던 것이 아닙니다. 프로 리그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피겨 스케이팅은 전형적인 ‘돈 안 되는’ 종목입니다. 연습의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듯 정말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이들은 당장의 즐거움, 유익보다는 보다 큰 대의를 위해 하루하루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반복한 이들입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게 나와 맞는 일이 아니면 어쩌지?’라는 걱정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피트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상대란 없다. 지금 내가 가진 특성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대의,
장소, 공동체, 기술, 직업, (그리고 물론) 사람도 없다.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위대한 헌신에 거창한 청사진은 필요 없다. 청사진이 거창할수록 허점만 많고, 실망할 구석만 많고,
헌신하지 않을 이유만 많아진다.
우리는 우리 적성에 딱 맞는 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설령 그런 것 같은 일을 찾았다 하더라도,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이 일이 아닌가?’ 하고 다시 방황합니다. 그러나 피트 데이비스가 말하듯, 우리에게 완벽하게 딱 맞는 직업, 일, 사람은 없습니다. 완벽하게 맞는 일도 없으니, 처음부터 완벽한 성과, 위대한 업적을 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고, 내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유대감을 누리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피트 데이비스의 ‘전념’은 우리가 ‘무한 탐색모드’에 빠지는 이유, 그 기저에 있는 우리의 두려움, 그리고 ‘전념하기의 반문화’가 선사하는 가치와 자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점점 ‘일’과 ‘헌신’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해독제는, 중요한 가치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것,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 오래된 가치일지 모르겠습니다. 무한 탐색모드에 한참을 빠져있던 사람으로서,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계신 많은 분들께 이 책의 1독을 강력히 권합니다.
전념에 나오는 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전념하기의 첫걸음을 떼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어쩌면 이것이 전부다.
“일단 뛰어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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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MSwPRru3_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