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제주댁 이야기 | #제주살이 #제주한달살기 #제주두달살기
제주가 너무 좋아 더 있고 싶다고 매일같이 말하고 바랐던 마음이 통한것일까. 아브라카다브라! 희망과 꿈이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마법의 주문이라도 걸린걸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섬 생활의 끝이 보인다며 아쉬워 발을 동동 구르던 나에게 제주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딱! 30일 더 생겼다. 십 여일이 채 남지 않았던 제주살이 달력 뒤에 한 장이 더 붙어 하루아침에 ‘제주 두 달 살이’가 되어있었다.
섬에서의 시간은 육지와 다르게 흘러가는 건가? 착각이 들만큼 이 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갔다. 제주로 오기 전에는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아니었다. 한 달은 턱없이 부족했다. 아마 세 달이던 일 년이던, 얼마의 시간이 있었어도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을테지만. 30일이면 모든 코스를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제주 올레길도 그 날의 몸 상태에 따라 날씨에 따라 일정을 변경하다 보니 26개 코스 중 12개, 절반도 채 걷지 못했다. 한 달이면 제주의 웬만한 관광지는 다 돌아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그마저도 생각 같지 않았다. 서울에 산다고 매일 한강을 가지 않고 63빌딩을 보러 가지 않듯이. 막상 제주에 살아보니 사람 많은 관광지에는 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바쁜 도시와는 정반대의 고즈넉한 동네와 한적한 해변에서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욱이 우리는 올레길을 걷고 있으니. 제주 곳곳의 해변과 수많은 오름들, 관광으로는 가볼 일이 없는 동네의 구석구석까지 보게 되어 굳이 따로 관광지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랬던 나인데. 돌아갈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껴져서일까. 제주살이 3주 차가 되면서부터 못 가본 장소들이나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이 왜 그렇게 생각나고 아쉽기만 한지.
육지로 돌아갈 준비를 슬슬 해야하는 시기.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제주에 더 있을 수 있는 방법을 매일 같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따로 또 같이. 몇 일의 속앓이와 또 다른 몇일의 논의 끝에, 그렇게 입에 달고 살던 두 달의 제주 살이는 정말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이렇게 쉴 수 있는 때가 또 언제 오겠냐 하며 과감하게 한 달의 휴가를 더 받은 그와 제주·올레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찍을 수 있겠다며 잔뜩 흥이 오른 나. 갑작스럽게 결정된 제주 두 달 살이에 신나면서도 한동안은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벙벙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흥분했던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고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곳에 30일을 더 머물기로 결정한 이상, 마냥 기뻐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실적인 것들을 하나씩 살피고 해결해야 했다. 한 달 동안 비워둔 육지집도 한번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나의 존재 유무와는 상관없이 따박따박 우체통에 꽂혀있을 관리비·공과금 고지서들은 어쩌지? 확인하고 말일까지 내야할텐데. 섬에 올 때는 차가운 공기에 온 몸을 꽁꽁 싸매야 했지만 한 달 새에 부쩍 더워진 날씨 때문에 이제는 얇은 옷도 필요한 걸. 참, 제주에서 지낼 집도 새로 구해야지! 이 밖에 소소한 것들까지. 하루 이틀이 아닌 한 달의 시간이다보니, 해야 할 일들이 꽤나 많았다.
일단 가장 중요한 숙소부터 해결하자. 원래 지내던 곳은 퇴실 날짜가 거의 임박한 상황. 다음 달 다른 손님들의 예약 건이 있어 우리가 머물던 방은 연장할 수 없었다. 정든 동네와 익숙해진 환경 무엇보다 친절한 사장님·사모님과 작별해야 함이 아쉬웠지만, 또 다른 한 달을 지낼 숙소를 물색해야만 했다. 지금 있는 곳은 제주시니까 이번엔 서귀포로 가볼까? 섬의 또 다른 지역에서 새롭게 한 달을 지내보는 것도 좋을 듯 했다. 남아있는 올레길 코스가 대부분 서귀포에 있었고 한 달 동안 지내며 우리가 자주 들리던 장소들(성산일출봉과 근처 단골카페, 서귀포 이마트 등)과도 가까웠기에. 적은 예산에 부합하면서도 제주스러운 동네에 나의 갬성에 맞는, 깨끗한 집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포털사이트와 SNS, 숙소 어플을 샅샅이 찾아보면서 동시에 정보를 얻어보겠노라며 제주 한 달 살기를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며칠 밤낮을 부지런히 손품 팔면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공과금·관리비 고지서들,옷가지들을 챙기는 일 그리고 서울 집은 어떻하지? 일단 우리가 제주에서 육지로 이동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물색해보았다. 제주에서 보내는 시간을 하루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곧 있을 연휴기간 때문에 치솟을 비행기 값을 아껴보겠다는 생각으로. 집이나 관리비 고지서는 주변 지인에게 부탁해볼까? 옷은 그냥 여기서 구입해서 입는 건 어때? 이런 저런 방법들을 고민해봤지만 모든 일들을 가장 쉽고 빠르게, 깔끔하고 정확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한 번은 육지에 가야한다는 결론에 다달았다. 한 달을 더 제주에 살아야 하기에 허리띠를 단디 조여야하는 상황.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항공권은 여행객들이 선호하지 않는 요일과 시간대만 잘 고른다면 꽤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아끼기 위해 한 달만에 그와 떨어져 나 혼자 육지에 다녀오기로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살던 집, 다른 곳도 아닌 우리 집에 가는 건데. 괜스레 낯선 기분이 드는 것만 같고 한편으로 불안한 기분마저 드는 건 왜 일까. 원래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타지에 혼자 살고 있었으면서, 그와 떨어져 혼자 하루 지내는 것에 외로움, 쓸쓸함 따위의 감정들이 밀려오는 건 또 왜인지. 어찌되었건, 제주 두 달 살이를 위한 큰 준비는 끝이 보이고 있었다.
제주에 더 있을 수 있다니. 그것도 한 달이나.
이게 진짜 꿈이야 생시야.
<한 달이라도 좋아요 미스 제주댁> 은 브런치에서 글·사진으로, 유튜브에서영상으로 제작됩니다. 영상이 궁금하시다면 놀러오세요 :-> https://youtu.be/i7iXoxWKBx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