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빈티지 마켓이나 앤틱 숍에서 마주하는 가구 중 가장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구분이 모호한 영역이 바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영국 가구다. 이 시기는 대영제국의 전성기이자 디자인 사조의 격변기였다. 특히 빅토리아(Victorian)와 에드워디안(Edwardian) 시대는 현대 디자인이 태동하기 직전, 고전적 미감이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꽃피운 지점이다.
1837년부터 1901년까지 이어진 빅토리아 시대의 가구는 계층에 따라 확연히 다른 두 얼굴을 하고 있었다.
먼저 부유한 귀족이나 신흥 중산층이 향유했던 하이 스타일(High Style) 가구는 과시와 절충으로 요약된다. 고딕, 로코코, 신고전주의 등 과거의 화려한 양식들을 한데 섞어 더욱 크고 웅장하게 재현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묵직한 마호가니와 월넛 소재, 정교한 조각 장식은 당시 상류층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기 위해 선택한 디자인적 권위였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장식성은 훗날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가 "본질을 잃은 가식"이라며 강력하게 저항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반면, 같은 시대 일반 민중들이 사용했던 컨트리 퍼니쳐(Country Furniture)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이들은 하이 스타일의 장식적 사조에 일부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언제나 '장식'보다는 '쓰임'이 우선이었다. 값비싼 수입 목재 대신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오크나 파인(Pine) 등을 사용했고, 화려한 조각 대신 튼튼한 구조와 소박한 비례에 집중했다. 우리가 오늘날 빈티지 가구에서 느끼는 정직하고 따뜻한 미감은 바로 이 컨트리 퍼니쳐의 실용적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7세의 통치기(1901~1910)는 짧지만 매우 복합적인 사조가 얽힌 시기였다.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리젠시 리바이벌(Regency Revival)이다. 빅토리아 하이 스타일의 중압감에 피로를 느낀 컬렉터들은 19세기 초반의 우아하고 가벼웠던 리젠시 스타일(신고전주의의 일종)을 다시 소환했다. 에드워디안 가구가 선이 가늘어지고 형태가 간결해진 배경에는 이러한 과거의 세련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와 동시에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아르누보(Art Nouveau)의 유행이 겹치며 독특한 미감을 형성했다. 식물의 유기적인 곡선을 가구에 도입한 아르누보는 전통적인 대칭 구조를 깨뜨리며 파격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에드워디안 가구에서 흔히 보이는 섬세한 인레이(Inlay) 장식이나 부드러운 곡선미는 바로 이 리젠시의 절제미와 아르누보의 유동적 미학이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다. 이는 하이 스타일의 권위주의가 서서히 힘을 잃고, 더 세분된 취향과 현대적 미감으로 이행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가 가진 계보도를 보면, 존 러스킨의 사상이 이 시기의 산업화와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러스킨과 모리스에게 빅토리아 하이 스타일의 가구들은 타도해야 할 구습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는 민초들의 정직한 노동이 담긴 컨트리 퍼니쳐의 본질, 그리고 아르누보가 시도했던 '새로운 예술'의 태동과도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중급 컬렉터에게 빅토리아와 에드워디안 가구를 구분하는 것은 단순히 장식의 유무를 따지는 일이 아니다. 그 가구가 누구를 위해, 어떤 태도로 만들어졌는지를 읽어내는 일이다.
상류층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한 웅장한 하이 스타일인지, 아니면 평범한 삶을 묵묵히 받쳐주기 위해 견고하게 제작된 컨트리 퍼니쳐인지 구분해 보자. 더 나아가 에드워디안 가구에서 리젠시의 고전적 우아함과 아르누보의 혁신적 선이 어떻게 만났는지를 발견하는 것은 컬렉터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이 시기의 가구를 제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왜 바우하우스가 모든 장식을 걷어내고 민중을 위한 실용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완성할 수 있다.
정리
빅토리아 하이 스타일: 산업혁명의 부를 바탕으로 과거 양식을 화려하게 재해석한 과시적 사조였다.
빅토리아 컨트리 퍼니쳐: 하이 스타일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장식보다 쓰임과 견고함을 우선시한 실용적 가구였다.
에드워디안 시대: 리젠시 스타일의 리바이벌과 아르누보의 유행이 교차하며, 빅토리아의 무게감에서 벗어나 더 밝고 섬세한 미감을 추구했다.
역사적 맥락: 이 시기의 권위적 문법과 소재의 남용은 러스킨과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이 저항했던 핵심 대상이었다.
다음 회차 예고
5. 잉글리쉬 컨트리 퍼니쳐 - 빈티지 가구 디자인 사조의 이해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