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사조를 공부할 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함정은 특정 양식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믿는 것이다. 어떤 디자인 사조에 대해 하나의 독립된 글이나 영상을 보는 것은 일종의 한 순간을 담은 '스틸 이미지', 즉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 사진 속에는 찰나의 화려한 순간만이 존재할 뿐, 그 셔터를 누르기 전과 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사조를 공부하는 순간을 강에서 수영하는 것에 비유해 보자. 풍덩 그 속에 빠져 마음껏 헤엄쳐 다니는 것은 분명 즐겁고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 강물이 어디에서부터 흘러왔고,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수영하는 이는 결국 자신이 정해놓은 인식의 한계라는 작은 웅덩이 안에 갇히고 만다. 모든 디자인은 그 앞선 유래가 있고, 그것이 다음의 무엇에게 영향을 주며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기 때문이다.
셰이커 교도들의 생활 가구들이 보여주는 그 담백한 선과 구조 역시 이 거대한 강물의 흐름 속에 있다. 18세기 후반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정착한 이들은 각 지역의 풍토와 삶에 밀착해 자생적으로 발전한 가구, 즉 *버내큘러 퍼니쳐(Vernacular Furniture)의 제작 기술을 몸소 익힌 장인들이었다.
우리가 셰이커 가구의 고유한 특징이라 믿는 많은 요소는 사실 이 버내큘러 퍼니쳐라는 상류에서 이미 흐르고 있었던 것들을 셰이커의 신념으로 다시 한번 편집한 결과물이다.
래더 백 체어(Ladder-back Chair): 셰이커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이 의자는 본래 유럽 전역의 시골 마을에서 흔하게 만들어온 양식이었다. 셰이커들은 이 익숙한 버내큘러의 형식을 빌려와 자신들의 교리에 맞게 기둥을 가늘게 깎고 무게를 줄여 '정제'했을 뿐이다.
나무 손잡이(Plain Knob): 가구 전면에 달린 소박한 둥근 나무 손잡이 역시 셰이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역의 이름 없는 목수들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를 깎아 가장 경제적이고 정직하게 만들던 버내큘러의 방식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다만 셰이커들은 이를 디자인적 선택이 아닌, 화려한 금속 장식을 배제하려는 종교적 절제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듯 하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MCM(Mid-Century Modern) 가구 마케팅이 비난받아야 할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마케팅의 수단으로서 '셰이커 퍼니쳐'를 활용하는 방식은 영 마뜩지 않다. 수많은 모던 디자인의 거장들이 셰이커 가구의 선과 구조에서 영감을 얻었고, 그 결과물로 훌륭한 작품들을 남긴 것 자체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디자인의 선순환이라 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마케팅이 셰이커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그들은 영국의 퀘이커 교도들이 신앙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목숨을 걸고 공동체를 일구었던 처절한 역사나, 그 종교 실천적 차원에서 태어난 공예품들에 담긴 숭고한 맥락은 조명하지 않는다. 그저 ‘세련된 미니멀리즘의 원조’라는 근사한 이미지만을 가져다가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소모적인 소재로 써먹고 있을 뿐이다.
특정 디자이너나 사조를 우상화하여 유일무이한 오리진으로 포장하는 마케팅 기법은 디자인의 거대한 줄기를 입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방해한다. 셰이커를 아이돌처럼 숭상하는 시선은 그 이면에 존재했던 버내큘러 퍼니쳐라는 거대한 토양과, 그 안에서 묵묵히 축적되어 온 이름 없는 목수들의 지혜를 망각하게 만든다. 하늘 아래 새로운 디자인은 없다. 셰이커 역시 하늘에서 떨어진 창조주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정직한 유산을 자신들의 교리에 맞춰 재편집한 탁월한 선별가들에 가깝다.
중급 컬렉터의 안목은 '이것이 셰이커 스타일이다'라는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 디자인이 흐르는 거대한 강줄기를 읽어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셰이커 퍼니쳐는 유일무이한 오리진이 아니다. 오히려 각 지역의 버내큘러 가구가 가진 투박한 진심을 종교적 절제라는 체로 한 번 더 걸러낸 정수(精髓)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이 가구들에서 느끼는 시대를 초월한 세련미는, 새로운 것을 쫓는 욕망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 중 '가장 정직한 것'을 지키려 했던 저항의 결과물이다. 스틸 이미지 속에 갇히지 않고 디자인의 유래와 인과관계를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가구가 건네는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정리
공부의 태도: 특정 사조를 파편화된 '스틸 이미지'로 소비하지 말고, 전후 맥락이 이어지는 '강물'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재편집의 미학: 셰이커 퍼니쳐는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기존 버내큘러 가구의 요소들을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재편집한 결과물이다.
마케팅의 함정: 특정 사조를 아이돌화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디자인의 실제적인 인과관계를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