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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by 김라강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인건가요.

입술 안쪽에서 가사가 맴돈다.

당신이 스쳐지나간 자리가 공허하다. 마지막으로 걸었던 전화는 소리샘으로 연결해주는 여자였다.

그여자가 인도해주는 곳은 당신을 비롯해 아무도 없는 대나무숲일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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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루들, 무리 지어졌다가 흩어졌다가, 이 무리의 인원이 저 무리와 합쳐지는 속에서 공통의 적은 내부의 결속을 (당분간은) 보장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되었다.


당신과 내가 같은 것을 싫어해서 좋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지구를 안타까워했고 인류를 원망했다.

플라스틱을 피했고 썩어가는 것들로 만든 물건을 찾곤했다.

서로 알고있는 지식들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하면 다음 여름은 조금이라도 덜 더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우리의 노력이 너무 미미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취향의 동일함과 가치관의 교집합은 기분이 좋았다. 사람에게 위로받는 느낌은 이런것일까 생각했다.

밤새 이야기를 한 그 날 하나가 남아서 다행이다. 나는 그걸 자꾸 곱씹는다. 야금야금 질겅거리다보면

이제는 당신의 얼굴과 목소리가 잘 생각이 안난다는걸 깨닫는다.

당신이 만들어준 것들 좀 아껴쓸걸. 하나는 남겨놓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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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의도로, 나의 자연스러움으로 분리된 사이에서

전화기 앞이 아니라 키보드 앞에서. 소리샘은 글샘이 되는 것인지.


글자를 던진다.

파문이 인다.

일렁임은 당신에게 닿지 않기를, 평화를 깨뜨리지 않기를.


당신이 나를 견딘 나날들이 얼마만큼 버거웠을지 스스로 반추해보고 싶을 뿐인데도

가끔 힌트를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그러면 과연 힌트일지 원망일지 모르는 말을 던지고

떠날 뒷모습에 대고 조그맣게 말하고싶다.


당신의 이야기가 좋았다고, 들려준 음악의 선율을 목구멍에서 굴려보곤 한다고.

좋았다던 상점에 가끔 가서 아주 꼭 필요한 물건만을 산 뒤 빠르게 나오고

과식을 한 날에는 보이차를 우린다고. 당신이 해줬던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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