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팀 회의에서 동료가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나 요즘 ChatGPT로 카피 뽑고 있어. 진짜 편하더라." 맞는 말입니다. AI 도구는 분명 편합니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편하다'는 것과 '잘 쓴다'는 것은 같은 말일까요?
AI 도구를 써본 마케터는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업에서 유의미한 시간을 절약하거나, 광고 성과를 끌어올리는 데 AI를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마케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AI를 '신기한 장난감'처럼 써보다가 일상으로 돌아오곤 하죠. 오늘은 퍼포먼스 마케터의 실무 관점에서, AI 도구를 실질적으로 '부리는' 방법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많은 마케터들이 생성형 AI에게 이런 식으로 묻습니다. "3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한 스킨케어 광고 카피 5개 써줘." 그러면 AI는 그럴싸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문장들을 뽑아냅니다. '피부가 달라지는 순간'이라든가, '나를 위한 특별한 케어'라든가. 내 브랜드와 아무 상관없는 평균적인 언어들이죠.
AI가 멍청한 게 아닙니다. 맥락이 없으면 AI도 일반론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퍼포먼스 마케터가 AI에게 줘야 할 맥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브랜드 톤앤매너 : 우리 브랜드는 어떤 언어를 씁니까? 친근한가요, 전문적인가요? 이미 잘 된 카피가 있다면 예시로 넣어주세요.
2) 타겟의 페인포인트 : '30대 여성'이 아니라 '출근 전 세안 후 피부가 당기는 느낌에 피로감을 느끼는 30대 직장인 여성'처럼 구체적으로 묘사해주세요.
3) 광고의 목적 : 인지용입니까, 전환용입니까? 어떤 플랫폼에 올라갑니까? 메타 피드 광고와 구글 검색 광고는 필요한 언어가 완전히 다릅니다.
맥락이 풍부할수록 AI의 답변은 범용에서 맞춤으로 바뀝니다. AI를 잘 쓰는 마케터는 프롬프트를 잘 쓰는 마케터입니다.
퍼포먼스 마케터의 일상은 생각보다 루틴한 업무가 꽤 많습니다. 광고 소재 A/B 테스트 결과 정리, 주간 성과 보고서 초안 작성, 경쟁사 광고 모니터링 요약, 키워드 리스트 정리 등등 이런 작업들은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정리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런 반복 업무야말로 AI에게 맡기기에 최적인 영역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1) 성과 보고서 초안 자동화 : GA4나 메타 광고 관리자에서 지난주 데이터와 이번주 데이터를 복사해 붙여넣고, "이번주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번 주 성과 요약 보고서를 작성해줘. 전주 대비 변동사항을 중심으로"라고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초안이 만들어집니다. 물론 수치 해석과 결론은 마케터가 다듬어야 하지만, 빈 문서를 채우는 시간만큼은 아낄 수 있습니다.
2) 소재용 카피 변형(베리에이션) : 잘 되는 광고 카피를 입력하고 "이 문장의 핵심 메시지를 유지하면서 다른 표현 방식으로 8가지 변형된 시안을 만들어줘. 글자수는 20바이트 이내로 제한해줘."라고 요청해보세요. 크리에이티브 테스트를 위한 소재 베리에이션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3) 키워드 클러스터링 : 광고 세팅 시, 네이버 검색 광고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키워드 도구’를 활용하여 추출한 키워드 목록을 생성형 AI에 붙여 넣고 "해당 키워드를 주제별로 분류하고, 구매 전환율이 높은 순서로 정리해줘"라고 해보세요. 검색 광고의 구조 설계에 드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핵심은 AI에게 판단을 맡기는 게 아니라, '정리'와 '초안 작성'을 맡기는 것입니다. 판단은 여전히 마케터의 몫입니다. 하지만 판단하기 위한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만큼은 AI가 대신할 수 있습니다.
퍼포먼스 마케터에게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일 중 하나가 데이터 해석입니다. 숫자는 있는데 '그래서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 앞에서 막히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이럴 때 AI를 보조 분석가처럼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AI는 숫자의 비즈니스적 맥락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최종 해석은 마케터가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설 목록'을 뽑아내는 용도로는 매우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이번 주 CTR은 전주 대비 0.3%p 하락했고, CPM은 200원이 상승했어. 전환율은 동일한데 ROAS는 50%p 하락했어. 이런 패턴이 나타날 수 있는 원인 가설을 5가지 이상 제시해줘."
AI는 ‘소재 피로도 누적’, ‘경쟁 강도 상승’, ‘오디언스 포화’, ‘시즌 요인’, ‘랜딩페이지 이슈’ 등 가능한 가설을 나열해줍니다. 이걸 보면서 마케터는 '우리 상황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건 뭐지?'를 빠르게 좁혀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 같은 상황에서 혼자 가설을 고민하는 것과, AI가 뽑아준 가설 목록을 검토하는 것은 소요 시간이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업무의 퀄리티는 유지하면서 소요 시간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AI가 마케터를 대체한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립니다. 저는 이에 대해 절반만 동의합니다. AI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처리하는 마케터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의 맥락을 이해하고, 데이터의 이면을 읽고, 타겟의 마음을 파악해 전략을 설계하는 마케터는 오히려 AI 덕분에 더 강해집니다. AI 도구를 잘 쓰는 마케터는 단순히 '편리함'을 얻는 게 아닙니다. 반복 업무에서 해방된 시간을 전략적 사고에 투자할 수 있게 됩니다.
생성형 AI가 시장에 나온 지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AI 도구를 '신기하게 구경'하는 마케터와, 조용히 반나절치 일을 AI에게 넘기고 전략을 다듬는 마케터 사이의 격차는 조금씩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 되고 싶으신가요?
Article by 비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