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길거리를 걸으면 심심치 않게 맡을 수 있는 게 대마 냄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한 냄새가 있다. 길거리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길 어딘가에서 피우기 때문이다. 통근 기차에서 이걸 돌돌 말고 있는 학생을 본 적도 있다.
네덜란드에 산다고 하면 (다수의 한국인에게) 제일 먼저 듣는 얘기 중 하나가 "나 대마 피워봤어." 또는 "너 해봤어?"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마가 합법인 나라에 가서 대마를 흡입할지라도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적발 시 처벌될 수 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에 의거하여 우리 국민의 대마 흡입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주네덜란드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도 우리 국민들에게 이를 경고하고 있다(대사관 공지). 그렇다한들 이게 관광 코스의 일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의 관광객이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고 암스테르담을 방문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네덜란드를 마약 합법국으로 알고 있다. 나도 네덜란드에서 대마만큼은 합법인 줄 알았다. 커피숍(Coffee shop)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가게들에서 대마가 들어간 다양한 제품을 판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커피숍은 우리가 생각하는 카페가 아니다.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곳은 cafe, coffee roasters, koffiebar 등으로 칭한다. 어차피 나랑 상관없으니까 별 생각 없이 지냈는데, 어느 날 한 유럽 국적의 지인이 엄격히 말하자면 대마 소비가 합법은 아니고 "grey area"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 궁금증이 생겨서 네덜란드에서 법적으로 어떻게 규제하는지 찾아보았다.
네덜란드는 '관용 정책(toleration policy)'을 실시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네덜란드에서 마약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In the Netherlands, selling drugs is illegal."). 마약을 소지하고 생산하는 것도 불법이다("It is against the law to possess, sell or produce drugs.").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는 커피숍으로 분류된 곳에서 연성마약(soft drugs)을 판매하는 것을 용인한다. 연성마약은 마리화나, 해시 등을 포함한다. 연성마약을 소량으로 판매하는 것은 여전히 범법행위(criminal offence)로 분류되지만, 커피숍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면 마약 판매로 기소는 되지 않는 것이다(네덜란드 정부 사이트 참고).
그중 중요한 요건을 몇 가지 꼽자면, 인당 하루에 5그램을 초과하는 양을 판매하면 안 되고, 네덜란드 법(Opium Act)에 규정된 강성마약(hard drugs: 헤로인, 코카인 등)을 판매하면 안 되며, 경성 마약도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의 성인(거주등록증 소유)에게만 판매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다. 네덜란드 거주민에 관한 규칙은 마약 관련 범죄와 소란을 방지하기 위해 2013년에 도입되었다. 커피숍에서는 알코올 음료도 판매하면 안 된다. 연성마약이라 할지라도 커피숍 밖에서 판매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고 기소 대상이 된다.
(위에 서술된 내용은 네덜란드 정부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
그러니까 네덜란드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성인이 커피숍 내에서 대마 제품 구매 및 흡연을 하는 행위는 용인된다고 할 수 있다. 거주등록증을 갖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이나 나 같은 직장인도 이 요건에 따르면 커피숍에 가서 대마초를 구매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외교부가 그럼에도 우리 국민은 국내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내(외교부 안전공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법적으로 마약을 연성마약과 강성마약으로 나눈다. 강성마약의 소지, 판매 또는 생산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 불법행위이다(네덜란드 정부 사이트 참고). 그렇다면 정부는 왜 연성마약 판매는 허용하는 것일까? 네덜란드 정부에 의하면, 연성마약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강성마약을 접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마약을 두 종류로 구별하고 커피숍에서의 대마 제품 판매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성마약은 위험성이 있는 물질은 맞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의 위험(unacceptable risk)이 있는 것이 아니고, 건강에 대한 위험성이 강성마약보다 훨씬 낮다는 데에서 강성마약과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본다. 헤로인, 코카인, 암페타민, LSD, 엑스터시 등의 강성마약은 건강에 대한 위험, 중독, 공공질서에 대한 영향 측면에서 연성마약보다 위험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강력하게 규제한다는 입장이다(네덜란드 정부 사이트 참고).
개인적으로도 소량의 연성마약을 소지하는 것이 관용정책에 의거하여 용인된다. 이 또한 원칙적으로는 불법("It is against the law to grow marijuana and cannabis plants.")이지만 용인해 주는 것이다. 5그램 이하 소량의 대마 제품 또는 5그루 이하의 대마초를 소지하는 것을 기소하지 않고 있다. 개인적 소비 목적으로 5그루 이하를 재배하다가 적발된 경우에는 경찰이 대마초(plant)만 압수하고, 그 이상을 재배하다 적발되면 기소한다(네덜란드 정부 사이트 참고).
집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계약서를 검토하다가 흥미로운 조항을 발견했다. 내용은 이러하다.
세입자는 렌트한 곳을 법에 위배되는 방법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세입자는 집에서 대마를 재배하거나 세 그루 이상의 식물을 키우면 안 된다. 기타 금지된 물질을 사용하거나 거래하면 안 되고, 매춘을 하면 안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집주인은 계약을 즉각적으로 종료시킬 수 있다.
이 내용에 의하면, 내가 살던 집에서는 대마를 재배하면 경찰에게 대마초만 압수당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바로 쫓겨날 수 있다. 위에 쓴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계약서에 왜 이런 내용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대마초 재배를 억제하기 위해서 경찰 당국이 주택협회, 에너지 공급 업체 등과 협력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마초를 집에서 재배하는 경우 쫓겨날 수 있다. 에너지 공급 업체는 전기를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에너지 사용 평가를 소급하여 추가로 실시할 수 있다.
관용 정책에 대해 네덜란드 내부에서도 꾸준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최근 '대마 관광객'의 커피숍 출입을 막는 조치에 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The Guardian 기사 참고). 이런 와중에 'Dutch coffee shop tourist tolerance map'을 검색하면 관광객이 방문할 수 있는 커피숍 지도를 찾을 수 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마약 중독자인 사라가 마약이 합법인 네덜란드 가겠다고 부모님께 떼쓰는 장면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네덜란드가 마약 합법국이라는 얘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네덜란드에서 마약 생산, 판매, 소지가 원칙적으로 불법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