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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영 Dec 13. 2023

유럽살이 중 공황장애임을 인지하게 된 두 가지 사건




사건 1. 납작 복숭아 알레르기인 줄 알고 엠뷸런스를 부른 일



어느 주말, 시장에서 사 온 납작 복숭아를 네덜란드에 있는 내 집에서 신나게 먹고 있었다. 시장에서는 과일을 싸게 살 수 있어서 1유로로 한 봉지 가득 사서 먹었다. 토요일에 몇 개를 먹었고, 일요일에 나머지를 다 처리했다. 이 날도 어김없이 한국 예능을 보며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점점 목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 알레르기인가 싶었다. 그렇다기엔 난 여태까지 복숭아를 잘만 먹어왔는데.. 없던 알레르기 반응도 나이 들면서 생긴다니 알레르기를 의심했다.



문제의 납작 복숭아



기도가 막혀서 숨을 못 쉬어 쓰러질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 기절을 하거나 쇼크가 오면 날 구해줄 사람은 없다. 큰 소리가 나지 않는 이상 바로 옆집 이웃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내 집은 긴 복도의 가장 끝에 위치해 있었다.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는데, 공포감을 증폭시킨 건 내가 이 집 안에서 쓰러져 죽어도 아무도 구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연락을 하고 있었어도 당장 한국에서 네덜란드 엠뷸런스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숨통이 조여오기 전에 엠뷸런스를 불렀다.



집에 온 응급구조사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만 체크했다. 내 상태에 대해 물어본 후, 산소포화도를 측정했고, 청진기를 등에 댔고, 육안으로 기도 상태를 확인했다. 약한 알레르기 반응인 것 같으니 괜찮다고 했다.


Do not eat peaches anymore.

라고 당부하였다. 응급구조사는 쇼크가 올 정도의 알레르기 반응은 음식을 먹자마자 바로 나타나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내가 겪은 건 쇼크가 오는 알레르기 반응이 아니라고 안심시켜 줬다. 당시 기본적인 증상을 봐주고 약을 처방해 줄 수 있는 홈닥터(general practitioner, GP) 등록이 안되어 있어서 구조사가 대신 전화로 어떤 의사를 통해서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나중에 약을 픽업하러 가라고 알려주었다.



시간이 지나 공황장애임을 자각한 후 복숭아 알레르기 사건을 되돌아보니 알레르기 반응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알레르기 반응이 경미하게 있었다고 해도 공황장애 증세와 같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도 난 그 맛있는 복숭아를 먹지 않는다..



응급구조사가 적고 간 "DO NOT EACH PEACHES."





사건 2. 오스트리아 여행 중 응급실에 간 일



증상을 가장 세게 겪은 건 여름휴가로 오스트리아를 갔을 때였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오셔서 함께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첫날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비행 스케줄이 아침 일찍 잡혀있어서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당시 네덜란드 Schiphol 공항 상태는 엉망이었다. 공항 직원이 부족하여 시큐리티를 통과하는 데까지 2-3시간 걸리던 때였다. 잠도 못 자고, 새벽 비행기에, 계속 기다리는 등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해서도 숙소에 바로 체크인하기 이른 시간이어서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체크인 후 쉬다가 저녁은 인도 음식점에서 테이크아웃해서 해결하기로 했다. 테이크아웃 한 커리와 볶음밥을 다 먹고 난 후, 갑자기 또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면서 숨 쉬기 힘들어졌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 공포감이 몰려와 오히려 증상이 악화되었다. 이건 또 커리 알레르기인가? 한국 카레, 일본 카레, 인도 커리를 한평생 잘만 먹어왔는데..



이번엔 숨쉬기 힘들다, 기도가 좁아진다 정도가 아니라 턱 밑까지 목을 꽈악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순간 '아 죽을 것 같아'는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죽음에 이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패닉이 왔다. 오스트리아 응급 번호도 모르는데.. 급하게 검색해도 제대로 된 번호가 나오지 않아 일단 119를 막 눌러 전화해 봤다. 전화해 보니 경찰 쪽이었고 전화 너머의 담당자는 여기는 병원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내가 너무 급하니 응급 번호나 병원을 좀 알려달라고 하니까 친절하게 가장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부모님이랑 다 같이 택시를 타고 오스트리아 시내의 응급실로 달려갔다. 여행 첫날부터 부모님 모시고 응급실이라니.. 도착한 순서에 따른 번호표를 받았을 때는 이미 증상이 다 사라진 후였지만 응급실까지 갔으니 의사를 만나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대기 의자에 앉아 엄마랑 기다리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엉엉 소리 내서 울었던 것 같다.



대기는 1시간 이상이었지만 의사는 정말 꼼꼼히 봐줬다. 내가 기도가 좁아진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초소형 카메라가 달린 장비까지 넣어보곤 아주 말짱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비로소 안심하게 되었다. 내 기도 멀쩡하구나..ㅎㅎ



이 경험으로 인해 처음으로 공황장애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난 공황장애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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