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캐리어

독일로 유학을 간 딸이 교환학생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던 날

그날 카톡 배경사진에는 “D + 755”이라 떴다. 딸이 우리 집을 떠난 지 755일이나 되었다는 말이다. “이 숫자가 얼마나 커져야 우리 셋은 다시 모일 수 있을까”는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었다. 독일 대학이 3년 반 과정이고, 졸업 후에 바로 취업을 할 수도 있으니, 가족이 다시 만날 날은 계산이 되지 않았다.


인생의 재미는 반전에 있다. 3학년 1학기에 해야 하는 교환학생을 하러 한국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일은 계획도, 상상도 한 적도 없어서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드디어 D +755이 된 것이다. 새벽 6시 40분에 도착할 예정인 딸을 만날 생각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공항으로 달려갔다. 새벽 5시 40분인데도 인천국제공항에는 이미 마중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비행기의 출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에 딸이 탄 비행기 옆에 “연착”이라는 글자가 떴다. 대기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궁리를 하다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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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어느 여름날 독일행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엄마, 빠이.”라는 짧은 외마디만 던지고 서둘러 집을 나섰던 십 대 때 딸. 딸이 변해가는 모습을 줌으로 멀리서나마 보았고, 헤어진 지 6개월도 참지 못하고 나는 독일로 날아가서 기숙사에서 크리스마스, 딸의 생일, 연말연시를 함께 했다. 벌써 1년 반 전의 일이고, 이렇게 다시 함께 살 기회가 생기자 나는 살짝 긴장감을 느꼈다. 요즘 부척 청년 분위기를 풍기는 딸이 낯설다. 상당히 떨어진 공간적 거리, 서로 낮과 밤이 뒤바뀐 시간적 차이 등으로 우리 가족은 조금씩 정서적으로도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시계가 8시 4분을 넘겼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그때였다. 수화물을 찾았다는 딸의 톡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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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딸이 곧 저 게이트에 나타난다. 울면 어떡하지? 우는 걸 질색으로 여기는 딸과 툭하면 딸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는 나였다. 엄마를 잘 아는 딸은 마중을 나오겠다는 내게 “엄마가 우는 걸 보면 나도 울 수 있으니까, 엄마는 공항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우리 볼까?”라고 조심스레 제안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자마자 마치 눈물 버튼을 누른 듯이 코 끝이 찡해지는 걸 느꼈다. 벌써부터 나는 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딸이 나를 멋진 엄마라고 여겨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나를 어떤 엄마로 키울 수 있을까? 청년 자녀를 둔 엄마가 나는 처음이고, 청년이 된 딸도 딸에겐 처음이다. 드디어 딸이 나왔다. 줌에서 보던 얼굴과 다른 것 같다. 입고 있는 옷도 처음 보는 것들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찬찬히 살피며 “이 사람인가?”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딸의 두 눈과 내 눈이 만났다. “왔네!”라는 짧은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엄마도 왔었구나”라고 딸이 답했다. 다행히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내 눈을 살피는 듯하던 딸도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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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함께 김포 오피스텔로 갔다. 늦여름에 도착해서 한 겨울에 떠날 딸은 케리어 2개를 끌고 왔다. 겨울 옷 몇 벌과 신발 몇 켤레를 꺼내자 딸은 자신의 물건은 그게 전부라고 했다. 그리고 나자 큰 캐리어를 가득 채워온 가족들에게 줄 선물들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났다. 산타 아가씨 마냥 딸은 함박웃음을 보였다. 우리 둘은 이런 딸의 모습에 어이없어하면서 “우리 딸, 여전히 엉뚱하구나, 웰컴 홈!”이라며 한바탕 웃었다. 딸은 “사실 나 돈이 없었어. 그런데 가족들에게 선물은 꼭 하고 싶은 거야. 이번에 이렇게 한국에 잠깐 살러 오게 된 건 정말 기적 같아. 이번 일은 계획한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고마웠던 분들한테 꼭 인사하고 싶었어.”라며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를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결혼한 사촌 오빠 부부에게는 독일식 유머가 적힌 맥주 컵 받침과 마그넷을 선물하면서, 와인은 돈이 없어 못 사 왔지만, 선물하고 싶은 와인을 본 따서 만든 와인병 모양의 마그넷을 가져왔다고 했다. 손녀를 너무 보고 싶어 하는 할머니에게는 독일 명품 브랜드를 사드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그 브랜드에서 나온 양말로 두 켤레를 사 왔다고 했다. 늘 베풀어 주는 막내 고모 부부에게는 오랫동안 눈독 들여온 최고급 치즈 세트를 장만해 왔다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딸의 수다는 친척들의 숫자만큼 끝이 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장 적합한 물건을 고르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생활비에서 조금씩 떼어서 선물 살 돈을 오랜 시간 모은 것이 역력했고, 이 선물들을 고르려고 발품을 팔며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녔을 딸의 모습이 우리 눈에 그려졌다. “독일 생활이 이제 고작 2년 되었는데, 언제 이렇게 많이 배웠니? 너 보따리 장사 같아, 괴짜 보부상.”이라고 말하며, 눈물 대신 농담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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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딸은 우리 쪽으로 큰 가방을 쑥 내밀었다. “자, 나머지는 전부 엄빠 선물!”이라고 말하며 의기양양해했다. 다양한 종류의 비스킷, 사탕, 젤리, 초콜릿 등등이 가득 채워져서 딸의 케리어는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폭소가 터졌다. “진짜 엉뚱하다. 너 더 심해졌구나.” 딸은 “내가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라 돈은 모두 엄빠 거잖아. 최대한 아껴서 살았어. 선물을 마련할 때도 돈은 작지만 의미는 최대한 살리고 싶었어. 그래서 사실 머리를 많이 썼어. 어떤 선물이 엄빠에게 가장 의미가 있을까 많이 생각했어. 그러다가 처음 독일 도착했을 때가 떠오르더라. 아빠가 짐 정리를 다 해 주고, 한국으로 떠나면서 책상 서랍 두 칸을 한국 과자로 가득 채워 줬어. 독일 생활이 힘들 때마다 한국 과자를 하나씩 꺼내 먹었어. 친구들에게 도움 받은 게 커서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을 때도 서랍에 간직해 둔 한국 과자를 하나씩 풀었지. 정말 아껴서 먹었어. 1년 반 전에 엄마가 내 기숙사에서 살다가 떠날 때도 내가 이 브랜드의 초콜릿을 좋아한다니까, 세일하던 것들을 종류별로 다 사서 서랍을 또 채워 주었어. 그 추억이 딱 떠올랐고, 이번엔 내가 엄빠에게 그 경험을 되돌려 주고 싶었어.” 침묵이 흘렀다. 행복했다. 딸은 “이 젤리는 한정판으로 나온 제품이라 우리 셋이 같이 있을 때 함께 먹어보고 싶었어. 이건 인도 친구가 고향 갔다 오면서 사다 준 건데 엄빠랑 같이 먹으려고 아껴둔 거야. 인도 과자는 우리 셋 다 처음이잖아.” 끝없이 펼쳐지는 딸의 재잘거림. 그리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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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있는 동안 딸이 하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엄마는 무서운 엄마야. 아빠는 내 밥인데”라고 초등학생이던 딸이 자주 말했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난 아닌데.”라고 난 늘 반박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고, 나는 인정했다. 집에서는 딸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격려하면서, 밖에서는 딸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신경이 쓰였다. 모임에 갔다 오는 날이면 딸은 “엄마, 나 오늘 잘했어?”라고 묻곤 했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운게 자연스러운데 내가 내 입장만 고집한 듯했다. 다행히도 기회가 왔다. “엄마가 바뀌었어요”라는 버전으로 가족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 딸에게 못 해줬던 일들이 앞다투어 떠올랐다. 보드게임하기, 도시락 싸서 소풍 가기, 화투치기, 윷놀이, 궁궐 가기, 지방 축제 돌기, 먹방 투어 등등 등등. 딸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지 물어봐야겠다.




D+913이 된 오늘에서야 이 글을 브런치에 담습니다. 지난 5개월 동안 하루하루 손꼽아 가며 즐겼습니다. 사흘 뒤 다시 출국하는 딸을 옆에서 지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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