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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제교류 TAN TAN RoDee Jan 24. 2020

이혼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지?

시시콜콜 묻고 싶어 하는 질문들에 그냥 휘둘릴 수는 없다

사진: Gerd Altmann from Pixabay 

4학년이던 아이가 동네 친구네 집에서 저녁까지 얻어먹고 오는 날이 잦아졌다고 한다. 저녁 7시쯤 귀가하면 어물쩍 씻고 자면서 아빠와 마주할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나름 터득한 듯했다고 했다. 5학년이 되자 주말에도 아이는 동네를 방황하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였다고 한다. 아이가 딱히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냥 아빠는 고함을 지르고,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면서 지적을 했고, "어이구..... 너는 그래서 문제야"라는 말을 계속 말했다고 한다. 6학년이 되자 사춘기가 차자 온 아이는 아빠가 거친 말투에 눈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하고 얼굴은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숙이고 다녔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이 아이 엄마를 학교로 불렀다. 직장맘이던 후배는 마음을 졸여가며 학교로 달려갔다. 


"어머니, 아이와 이야기를 해 봤더니, 아빠와 지내는 게 무척 힘들다고 하네요. 알고 계셨어요?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넌 왜 그렇게 앉아 있냐? 왜 밥은 그렇게 먹냐? 너는 인사를 왜 그렇게 밖에 못하냐? 대답을 똑바로 해야 할게 아니냐" 


남편은 아이가 현관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계속 혼을 내었다. 아이는 고개를 떨구었고, 의욕을 잃었고,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후배는 남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무엇을 잘못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라고 남편에게 부탁하고, 짜증내고, 둘 사이에 서 있었다. 아이가 두드러지게 무엇을 잘 못한 게 없기 때문에 후배는 아이의 행동을 고쳐줄 수도 없었다고 했다. 아빠에게 형이 계속 지적을 받는 동안 어린 동생은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고 한다. 후배는 남편에게 차분히 대화를 해 보자고 365일을 매일 같이 요청했지만, 남편은 변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사진: Myriam Zilles

아빠에게서 매일 같이 언어폭력을 당하면서도 아빠와 함께 사는 것이 아이에게 나을까? 아니면, 이혼한 가정의 아이라는 편견을 받게 될 수 있지만 아빠 없이 사는 게 더 나을까? 후배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시부모님을 찾아가서 담담히 말했다고 한다. 


"저는 제 아들을 살려야겠습니다. 저렇게 둘이 계속 부딪히다가는 제 아들이 크게 다칠 것 같습니다. 두 분은 두 분의 아들을 설득해 주세요"라고 말을 힘들게 꺼냈다고 한다. 

"그래도 네가 조금만 더 참아 봐라. 네가 더 잘해 봐라"라고 시부모님들은 대답하고.....  

"이 상태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이 된다면, 두 분의 손주가 아주 안 좋은 상황에 이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라는 두려움을 듣고서, 합의 이혼이 이루어졌다. 


이혼녀가 된 후배는 중소기업의 대표라는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아무의 도움도 못 받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청소년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런 급작스런 변화를 지내면서, 아이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게 눈에 띄게 보였고, 아이의 눈을 드디어 마주 하게 되었고, 아이가 친구들을 비로소 집으로 데려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중 3이 된 아들을 보면서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표정이 저렇게 밝아졌나요?"라고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 후배의 두 아들들은 집 밖을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야 비로소 집이 가장 편한 곳이 되었다. 아이들은 


"엄마, 진작 이렇게 우리끼리 살걸 그랬어요. 어떻게 그렇게 지냈나 싶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강하다


명절이 다가왔고, 후배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서 설날을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친정 친척들을 두루 만나게 될 후배는 몇 년째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했다. "넌 왜 혼자 왔니? 같이 오지 그랬어. 요즘 아이들 아빠는 어떻게 지내?" 등 자신의 변화를 아는 듯 모르는 듯한 질문들을 받을 때면 "저 이혼했어요. 이제 몇 년 되었어요. 잘 살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고 했다. 하지만, 친정 엄마는 "난 친척들이 내 딸에 대해서 이러쿵 저렇쿵 함부로 말해대는 것 못 본다. 몇 시간 볼 일 아니니까, 그냥 지나가자"라고 완강히 주장하신다고 했다. 후배는 이런 상황이 무척 힘들다고 했다. 이혼했다는 걸 딱히 떠벌리고 다니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숨기고 싶지도 않은데 몹시 어색한 상황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꼬치꼬치 캐묻는 질문에 대답을 안 하자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고, 하자니 필요 이상으로 많은 개인 신상 정보를 드러내야 할 것 같아서 늘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사진: Sherlyn Hawley

나: "이혼"이라는 단어로 대답을 시작하지 마세요. 오랫동안 참고 살았잖아요.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어요. 왜였죠? 

후배:......... 


나: 아이들이었어요. 이 세상에는 "이혼녀"라고 불리는 것이 두려워서 괴로워도 참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걸 알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후배:.........


나: 그런 질문에 대답해야겠다고 느낄 땐 "아이들을 너무 괴롭혀서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 "아무리 그만하라고 해도 아이들을 계속 언어폭력으로 대하는데 정말 이러다가는 무슨 일이 생기겠다는 두려움이 생기더라"라고 말해 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고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다"라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주세요. 

후배:......... 


나: 아니, 왜 다른 사람의 개인 상황까지 사람들은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궁금해할까요? 속 마음이 대체 뭐죠? 

후배:........ 


나: 차별적인 시선이에요. 뭔가 또 무책임한 말들을 할 가십거리를 찾는 거예요. 아이들하고만 산다고 뭐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그러는 거겠어요? 아니에요. 왜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에 파고들고 싶은 걸까요? 

후배:....... 


나: 다른 사람들이 바운더리를 무턱대고 침범할 때 그냥 그들이 원하는 대로 휘둘리지 마세요. 지나치게 바운더리를 침해했으니, 내 바운더리 내에서는 내가 들려주고 싶은 식으로 대답을 하면 되어요. 전 지금까지 그 단어(이혼)는 쓰지 않았어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이야기를 지어낼 거예요. 자기 일도 아니면서 말이에요.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의 고통스러웠던 실화들,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었던 자신에 대한 자긍심, 엄마로서 내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 낸다는 책임감을 들려주세요. 


후배: 지금 하신 말씀, 너무 도움이 되어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저만 이런 고민으로 힘든 거 아닐 거예요. 아주 많을 거예요. 

사진: madsmith33 from Pixabay
그녀만큼 조용하게 주변을 챙기는 사람을 나는 아직 못 만났다.
그녀의 아들들 만큼 많이 먹어대는 청소년들도 아직 못 들어봤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그녀는 늘 주변에 선물한다.
그녀처럼 아이들처럼 까르르 웃는 어른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아주 아주 힘이 들어서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서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 "통화할 수 있어요?"라고 톡으로 SOS를 치면 언제든지 지혜와 경험으로 도움의 손을 뻗어 주는 멘토 중 한 명이 그녀이다. 혼자서 아이들을 지키는 그녀들에게 이제는 내가, 우리가 손을 뻗어 주어야 한다.     


#이혼녀 #이혼 #한부모 #용기 #두려움 #가정 #자녀 


* Top Picture: Alex Stracha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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