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수집잡화점 피터님이 마련해 준 송년파티에서
참석자 한 명 한 명의 스토리가 엮이면서 2022년의 문은 가만 가만히 닫히고 있었다.
서울 모처에서 열린 송년 파티는 금요일 7시라는 황금 시간대에 정확하게 펼쳐졌다. 이 시간 이 곳에 있으려고 선택한 분들이 자기 소개를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모두의 소개에 빠져 있었고, 소개가 끝나자, 파티도 끝났다. 계획보다 훨씬 시간이 초과되었다는 파티 호스트 피터님! 이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속초에서 오신 분, 멀리 부산에서 오신 분,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하다가 이 곳만 챙겨 오신 분, 난생 처음 커리어 체인지를 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분 등 한 분 한 분의 스토리는 잔잔한 감동으로 공간을 채웠다.
파티 디자이너 피터님은 "갖고 싶은 것 3가지," "되고 싶은 것 3가지," "하고 싶은 것 3가지"를 적는 활동으로 시작했고, 다들 글쓰는 재미에 빠져 있는 그 순간에, "그 중에서 4가지만 고르세요"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주문을 했다. 아니, 이 소중한 9개 중에서 무얼 고르고 무얼 버리라는거지! 이럴 수가! 흔한 활동일 수 있는 이 작업에 어느 새 빠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혼자서 마스크 안에서 깔깔대고 있었다. 여기 저기에서 탄성이 들렸다. 호오~~ 다들 나랑 비슷한 심정이군. 먼저 내가 적은 9개는 이러했다.
하고 싶은거
- TEDx에서 연설하고 픔: 2023년
- 영월 가고픔: 2023년 1월
- 호텔에서 베스 터브하고픔: 2022년 12월
갖고 싶은거
- 스위스행 왕복 티켓: 2023년
- 미국행 왕복 티켓: 2023년
- 크루즈 여행 티켓: 2024년
되고 싶은거
- TEDx에 나간 사람: 2023년
- 박사 마무리 하고 싶다: 2023년 | 2002년 | 2022년
- 운동하는 사람: 2023년
이 중에서 5개를 내려 두고, 4개를 건져 들고 자기 소개를 했다. 내가 고른 최종 4개의 카드는 이러했다.
- TEDx에서 연설하고 픔: 2023년
(TEDx에 나간 사람: 2023년, 두 개가 같다니! 쪽집개인걸!)
- 박사 마무리 하고 싶다: 2023년 & 2002년 ~ 2022년
- 스위스행 왕복 티켓: 2023년
- 미국행 왕복 티켓: 2023년
내가 나에게 놀랐다. "어머, 너 이랬니? 너의 속셈(?)을 알겠구나. 그러자, 뭐."라고 나는 나와 대화하고 있었다.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적기 위해 깊이 내 내면으로 들어가 보았다. 거기엔 나에 대한 꺠달음이 있었다. "넌 하고 싶은거는 다 해 보고 살았구나. 난 그닥 갖고 싶은 것도 없구나. 다행이다. 소확행의 라이프 스타일을 동경했는데, 뭐, 벌써 그렇게 살고 있군. 성공한 인생이야."라며 자화자찬을 마음 속으로 하고 있었다. 주어진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훅"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파티가 너무 즐거웠다.
갖고 싶은 것이 그닥 없는데...."아! 그래. 그건 꼭!"이라는 아이템이 떠올랐다.
그렇게 적는다고 누가 공짜로 줄까 싶은데, 나는 스위스행 왕복 티켓을 신나서 적고 있었다. Bonnie와 Renee를 만나고 싶다. 내 인생에 큰 터닝 포인트를 준 나의 멘토들. 그녀들을 내년엔 꼭 진짜로 만나고 싶다. 9월에 만나고 싶다. 우리들의 상징인 스카프를 스위스 바람에 휘날리면서 셋이서 만나고 싶다. 꼭!
꿈틀거림은 "충~~~~분했고," 이제 탈피의 계절이다.
TEDx를 오랫 동안 꿈꿨었다. 2년 전엔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에게 TEDx 스피커 트레이닝도 내가 주었던 기억이 오랫만에 떠올랐다. 이젠 나가야 할 때 같다. 또....... 박사학위...... 학문적 갈증이 있어서 시작했던 일은 아니었다. 결혼 후 임신이 잘 되지 않아서 신경을 다른 곳에 쓰고자 시작했던 박사 과정이었다. 내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아뿔사. 박사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로 임신이 여전히 되지 않아서 아주 힘들어 했었던 내 모습이 있었다. 공부를 슬렁 슬렁하고, 휴학도 고려할 즈음 임신이 되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기가 태어나고, 복덩이인지 아기가 100일을 맞이할 즈음 꿈에도 그리던 승진을 했다. 그리고, 출장으로 집과 직장을 떠나 있는 시간이 아주 많아졌지만, 난 참 잘 버텼었다. 퇴근길에 전철역에서 아티클 한 편을 읽는걸 습관으로 만들었고, 새벽 3-4시까지 보고서를 쓰고, 유축기를 출장 캐리어에 넣어서 전국을 뛰어 다녔었다. 엎치락 뒤치락 하다보니 코스웍은 마쳤고,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바야흐로 논문을 쓰기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박사 논문을 쓰면 아마 아이가 저학년을 마칠 시간 쯤 완성이 되겠다는 계산에 이르자, 박사 논문에 대한 흥미가 갑자기 뚝 떨어졌다. 내게 주어진 2장의 기회카드가 보였다. 하나는 초등생 엄마로서의 기회였고, 다른 하나는 박사학위를 가진 엄마로서의 기회였다. 어느 쪽 기회 카드를 선택할 지는 명확했다. 얼마나 되고 싶었던 엄마인데. 그렇게 나는 박사학위를 미련 없이 내려 놓았다. "충~분히" 즐거운 박사 코스 과정이었다. 그리고 2022년 가을, 나는 대학 캠퍼스가 직장이 된 나를 보면서, 마무리를 못 하고 내려 놓았던 학위에 대한 미련이 스멀 스멀 올라왔다. "어쩔려고?"라는 마음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학교 교학과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재입학"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뛸 듯이 기뻐하며 안도하는 나를 보았다. 전화기 너머 학교 교직원 선생님은 "아, 2002년에 첫 입학하셨고, 20년이 지났네요.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인생에 딱 한 번 재입학을 할 수 있어요." 흐악~~ 재!입!학! 가즈아. 2002년에 첫 입학, 2022년에 재입학을 꿈꾸는구나. 인생...참..... 그래, 2023년에는 박사 마무리 하자.
그녀는 떠날 준비를 맹렬히 하고 있다, 보내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내 박사과정과 얼키고 설키고 한 아기였던 짱이가 드디어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 아이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모습은 정말 눈물겹다. 우리 주변에는 그 흔한 유학을 간 사람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유학원을 통해 간 경우라서 우리와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정말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듯 짱이는 대학가는 길을 수 놓고 있다. 그 길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모습을 봐야할 때는 정말 엄마로서 가슴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만약, 유학원을 통한다면? 내 아이는 조금이라도 수월할 수 있을텐데. 비용이 어마 어마할 거라 엄두를 못 낸다. 무료로 제공하는 유학원을 가 보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오히려 짱이가 미국 대학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었다. 입시 원서를 작성하면서, 부딪히고, 깨지고, 얼른 추스리고 일어나면서, 다시 준비물들을 챙기고, 또 두드리고, 겨우 한 걸음 나가고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이 아이는 내년 이맘때 즈음에는 미국에서 혼자 삶을 꾸려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난 이런 그녀를 무척 자랑스러운 눈길로 볼 것이지만 또 몹시 그리워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같이 가서 새로운 터전에서 정착 준비를 도와 주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을 듯 하다. 내년 6월과 7월에 맡아야 할 업무들이 절정을 이를 것이고, 8월도 업무의 연장선이 될 것 같다. 짱이가 7월에 집을 떠나고, 8월에 새로운 둥지에서 정착하고 있으면, 나는 9월 즈음 이 아이의 공간으로 날아가고 싶다. 그래서 내가 갖고 싶은 것으로 미국행 왕복 티켓을 적었나 보다.
2023년, 나의 해가 될 것 같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는 내일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말을 나는 경험수집잡화점에서 보낸 2022년의 일상에서 문득 문득 깨닫는다. 컴퓨터 폴더 중에서 "2022년 DY 트레이닝"가 있다. 이 폴더에는 내가 받은 교육들에 관련한 자료들을 매달 기록하고 있다. 폴더 제목들이다.
- 15분 책 읽기
- 인스타
- 카카오뷰 운영하는 방법
- 게더타운 사용법
- 특강: 무기가 되는 스토리
- 키네마스터로 영상편집
-15분 필사
- 경수점 수료증 모음 폴더
좋은 글귀들을 쓰면서 하루를 열고, 나와 비슷한 삶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인스타, 카카오뷰를 운영하고, 온라인 러닝 놀이터를 구상하며 게더타운을 배우고, 똥손 가진 사람의 욕심으로 키네마스터도 배우고, 밤에는 책에서 영감을 받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날들로 채워진 나의 2022년이었다.
나의 소중한 15분 짜리 모자이크 조각들!
15분 남짓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이기에 내 맘에 쏙 들게 보냈고, 재미 삼아 하면서 이 시간들을 쌓고 쌓였더니, 어느덧 2022년을 근사하게 채웠다. 그리고 이 지난 시간들을 축하하는 경수점 연말 파티에서 나는 우연히 2023년이 보낸 선물들!을 만났다. 설레기에 "충~~~~~~분하다."
** 뽀인트: 경수점 연말 파티를 참석한 사람과 아닌 사람은 "충~~~~~분한"이란 단어로 구분가능하다.
* Top Picture: S. Hermann / F. Richter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