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큰 금쪽이 관찰일지

by 코알라

말끝마다 ‘씨’를 붙이는 것이 우리 집 큰 금쪽이, 바로 내 남편의 말버릇이다. 직접 들어보면 꽤 중독성이 있는 말투다. 예를 들면 “저리 가 이 씨~” 하면서 끝을 살짝 올리는데 가끔 따라 하면 재미있기는 하다. 하지만 유난히 그 ‘씨’가 거슬리는 날이 있는데 그게 바로 지난주 토요일이었다. 우리는 이케아에 들렸다가 시댁에서 하룻밤 자고 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케아 가는 길 차 안에서 금쪽이가 “블라블라 씨”를 10번 정도 반복했다. 자꾸 들으니 즐거웠던 내 기분이 불쾌해졌다. 그리고 뒷좌석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듣고 따라서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때 이번 글쓰기 동아리 숙제의 주제가 떠올랐다. 주제는 '주변사람 관찰하기'.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그를 관찰함으로써 이 불쾌한 상황을 극복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금쪽이가 언제 얼마나 ‘씨’라는 표현을 쓰는지 관찰해 봤다. 관찰구간은 장소에 따라 4개로 나누었고, 기간은 토요일 오후 3시~ 다음 날 저녁까지다.



제1구간은 이케아에서 시댁까지 가는 길 위다.
주행 중 공기압이 낮아져 10번,
공기압 해결 후 신호 걸려 1번,
커피 없는 텀블러 마시다가 1번,
지나가는 모닝 신형 못생겨서 1번,
너무 천천히 가는 차 보고 2번,
침 뱉는 아저씨 보고 2번.


제2구간은 시댁에서의 시간이다.
차 트렁크에서 물건 찾다가 1번,
아버님한테 설명해 주다가 1번,
내가 차가운 손으로 자기 목 만져서 1번,
차 키를 안 들고 나와서 앱으로 문을 열려고 했는데 비밀번호 잊어버려서 3번,
전기장판에 앉으면 전기 오른다고 얘기했더니 아버님이 놀려서 2번,
강화도 얘기하다가 1번,
밥 먹으면서 3번,
고스톱 치면서 15번까지 세다가 포기.


제3구간은 시댁에서 집에 올 때까지의 시간이다.
잠 못 잤다고 얘기하면서 5번,
고속도로 교통상황 확인하며 2번,
가구배치 얘기하며 1번,
앞차가 끼어들어 7번.


제4구간은 집에서 그가 잠들기 전까지인데 침대를 옮기고, 폴더 매트를 갖다 버리고, 가구를 조립했으므로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씨’를 들어야 했다.


금쪽이의 ‘씨’는 대체로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본인의 기대가 현실과 다른 경우에 분노나 좌절감 표출로 ‘씨’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 관찰하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바로 시부모님이 그와 똑같은 말투라는 것이다. 셋이 주거니 받거니 “안 먹어 이 씨~”, “왜 안 먹어 이 씨~”, “먹어 이 씨~” 하며 다정하게 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금쪽이의 ‘씨’는 단순한 분노 표출 이전에 원가족의 친밀한 소통 방법이었다. 이를 깨닫지 못했다면 금쪽이를 분노조절장애로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번기회에 금쪽이의 꼴 보기 싫은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아빠의 말투를 배워 나이가 사십이 되어서도 그런 말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아이들이 자라주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그 모습으로 살고 있어야겠다는 자기 성찰과 함께 이번 글을 마무리해야겠다.